유럽 곳곳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2일(현지 시각) "‘디지털 유로’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최한 화상 연례 총회에서 "코로나19는 우리가 일하고 거래하고 지불하는 방식을 포함해 우리 삶에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라가르드의 이번 발언이 CBDC 도입을 앞당기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앞서 ECB는 디지털 유로 발행에 대한 공개 논의를 시작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늦어도 내년 중반께 디지털 유로를 발행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ECB의 생각이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이미 지난 5월 CBDC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고 이탈리아은행협회 역시 6월 "유럽중앙은행(ECB)이 디지털 유로 실험을 한다면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앞장 섰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ECB 본부.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비롯한 ECB의 고위 관계자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디지털 유로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을 늘리는 추세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지폐를 가지고 다니곤 했다"며 "현금이 왕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디지털 결제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초기인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전자상거래가 폭증했다"며 "디지털 결제는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디지털 결제 신뢰도 역시 이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코인텔레그래프를 포함한 블록체인 전문 매체에 따르면 이달 초 ECB는 공식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유로 발행에 대한 공개논의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ECB는 앞서 디지털유로가 소매시장에 미칠 영향, 디지털유로가 유럽 경제정책 체계(유로시스템)와 어떤 방식으로 연계될 지 여부에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공개논의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학계와 금융권 의견을 청취하고 내부 테스트를 포함한 공개논의 기간을 약 6개월로 예상한다. 내년 중반 경에 공개논의가 끝나면 디지털유로 발행 여부가 더 뚜렷해진다는 의미다.

ECB는 보고서에서 "디지털유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시민들이 안전한 형태로 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유로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2일 독일 법무법인인 보크 리갈(Bock Legal)을 통해 유럽 특허청에 '디지털 유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상표 등록 신청 역시 끝냈다.

유럽이 글로벌 주요 통화 가운데 하나인 유로화(EUR)를 디지털화하면 앞으로 ECB는 유로 발행량 조절, 통화흐름 추적을 손바닥 보듯 쉽고 투명하게 할 수 있다. 더 이상 현금을 인출해 금고에 넣어둘 수 없기 때문에 돈을 찍어내면 실제로 소비와 투자를 유발하기도 용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하면서 글로벌 경제환경이 급속하게 비대면·디지털화 되고, 그 여파로 디지털화폐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디지털유로가 세계 각국과 민간 기업의 행보에 대응해 유럽을 하나로 뭉치게끔 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수아 빌레 드 갈루 프랑스은행(BDF) 총재는 "유럽이 첫번째 CBDC를 발행해 다른 지역을 견제하려면 유럽중앙은행이 신속히 움직일 필요가 있다"며 유럽중앙은행 차원에서 디지털유로를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국제문제 싱크탱크 아틀란틱카운실은 미국 정부에게 CBDC 발행을 제안하는 보고서에서 "유럽의 CBDC 발행 동기는 지역 간 결제시스템 통합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