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선택이 강요되는 나라

조선비즈
  • 전태훤 선임기자
    입력 2020.10.10 06:07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요트 구매 미국 여행을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해외여행 취소와 연기를 권고하는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가운데 일어난 주무 부처 장관 배우자의 ‘돌출’ 행동인지라 강 장관과 그의 남편을 향한 시선이 분명 곱지는 않지만, 이 교수의 해외여행이 부적절한 선택이었는가를 두고서는 보는 이에 따라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해외여행은 물론 추석 고향 방문까지도 자제해 달라는 정부 권고를 따른 국민들 눈높이엔 해외에서 요트를 사서 여행하겠다며 출국한 이 교수의 처신이 부적절함을 넘어 고위공직자 가족의 특권의식이 주는 위화감과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공직자도 아니고 일반 개인으로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사생활이고 자신의 삶을 누리기 위한 선택이란 반박의 목소리도 꽤 들린다. 현직 장관의 배우자로서 그의 선택이 시의적절하지 않은 점은 있지만, 법을 어기거나 코로나 방역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사생활을 위한 개인의 선택을 두고 대놓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혹시 많은 이들이 강 장관과 이 교수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내는 이유가 ‘장관의 남편’이란 것 외에, 일반 서민·중산층은 엄두 내기 힘든 요트를 굳이 이런 시기에 해외까지 나가 사겠다는 처사가 국민 감정을 더 세게 건드려서는 아닐까? 요트값이 얼마인지를 떠나 요트가 일반인들에겐 호화 레저의 상징으로 각인돼 있으니 말이다.

    그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만일 그런 이유라면 비난은 그만해도 좋겠다. 자가 의무 격리 등 코로나 방역 기준만 지킨다면 해외 여행도 요트 구매도 가능한 여기는 대한민국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도 정작 주택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선택이 강요된다. 1주택자 프레임에 갇혀 일단 집이 여럿이면 이유 불문하고 투기의 굴레가 씌워지고 온갖 규제로 옭아매이기 때문이다.

    주택 정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며 권유로 포장된 으름장을 놓는 나라다. 주택 구입 과정과 납세에 문제가 없어도 두 채 이상이면 일단 투기세력의 한 축이 되고, 집을 팔든 사든 갖고 있든 세금 폭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20여차례의 대책도 꾸준히 다주택자를 괴롭히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국토부 장관은 "집이 많이 가진 사람들은 좀 불편해진다"며 대놓고 다주택자들을 닦아세우고, 경제부총리는 "정부 고위 공직자는 다주택을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공개석상에서 말을 한다.

    언제부턴가 1주택 보유가 모범 공직자의 기준이고 고위 공무원 승진에도 영향을 주는 괴이한 나라가 됐다. 청와대 고위직이나 국무위원 임명에서도 전에 없던 다주택자 여부가 어느새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변수가 돼버렸다.

    부동산 투기가 사라져야 한다는데 천만번을 동의하고도 남지만, 모든 국민이 집이 한 채씩인 이상(理想) 국가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1주택에 대한 강박관념과 다주택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1주택은 선, 다주택은 악’ ‘1주택은 실수요, 다주택은 투기세력’이라는 낡은 선악구도의 프레임을 깼으면 한다.

    이 정부가 다주택자를 부동산 시장의 적폐로 보는 시각과 규제는 정말 그들이 투기세력이라 그런 것인가? 그렇다는 근거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은 정치적 확신 때문은 아닌지.

    집이 있든 없든, 싼 집이든 비싼 집이든, 한 채든 여러 채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택을 소유하고 선택하는데 규제의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 시장자유주의 국가다.

    지금 우리에겐 누려야 할 그런 선택의 자유가 강요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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