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들이 앞다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겉으로는 이미 해외에서 기업의 ESG 성과가 투자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은 만큼 관련 경재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같은 전략을 쏟아내는 이면에는 ‘탈(脫)석탄’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눈치보기가 숨어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지주(055550)는 지난 6일 하반기 이사회 워크숍을 열고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룹이 하는 모든 활동의 탄소배출 총량을 ‘0’에 수렴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한금융은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 대해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감축 목표를 설정할 계획"이라며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 분야 투자 대출을 확대해 탄소배출 총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이번 제로 카본 드라이브가 최근 금융권에서 이어지고 있는 ‘탈(脫)석탄’ 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KB금융(105560)이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석탄 관련 사업에 투자와 대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 계열사의 탄소 배출량을 2017년 대비 25% 줄이고, 현재 20조원 규모인 ESG 관련 상품 판매와 대출을 5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금융지주사들은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세계 ESG 투자규모는 지난 2018년 기준 30조6830억달러(약 3경5534조원)로 2012년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의 국부펀드와 연기금은 물론 글로벌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도 ESG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를 유치하는 데 ESG 경영 성과가 핵심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지주들이 ‘친환경’ 경영을 두고 때아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번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줄곧 강조해온 ‘탈원전·탈석탄’ 정책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그린뉴딜’을 밀어붙이면서 금융지주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그린뉴딜은 환경 친화적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신한금융 등 민간 금융기업 임원을 불러 "금융권이 녹색 투자를 확대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지주사들이 친환경 경영비전과 관련 조직을 신설·정비한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더한다. 신한금융은 2018년 ‘에코 트랜스포메이션 20·20’을 선포하고 2030년까지 녹색 산업에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부터는 올해부터 그룹 최고전략·지속가능책임자(Chief Strategy·Sustainability Officer) 및 그룹별 CSO를 선임하고 ESG 전략과 이행 방향을 논의하는 ‘그룹 지속가능경영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KB금융도 올해 ESG추진위원회를 신설하고 ‘KB그린웨이 2030’을 발표했다. 하나금융지주(086790)와 우리금융지주도 각각 지난해 담당 임원을 선임하고 관련 위원회를 신설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까지도 석탄 관련 투자에 열심이었던 금융지주들이 갑자기 탈석탄을 외치고 관련 조직을 다듬는 것은 정부 기조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기조에 맞춰 급히 마련된 전략이다보니 선언적 수준에 불과한 조치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지주들이 공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여신 심사’가 대표적이다. 탄소나 오염물질 등을 배출해 환경을 저해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대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ESG 채권 발행 규모 등은 정량적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지만, 친환경 여신 심사 등은 아직 초기단계인데다 표준화된 방법이 없어 어느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