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다고 집값 잡힐까”… 절차 무시가 일상화된 부동산 정책

조선비즈
  • 유병훈 기자
    입력 2020.10.08 16:00

    여당 국회의원이 유휴 국유재산에 행정절차를 생략하고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정이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입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필요해서 존재하는 법까지 고쳐 없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8·4대책에서 주택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과천 정부청사 건물 맞은편 운동장과 공원 유휴부지/연합뉴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지난 6일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유휴 행정재산이 용도 폐지 절차를 거쳐 일반재산으로 전환된 경우에만 공공주택 공급이 가능하도록 한 현행 법 규정을, 유휴 행정재산을 포함한 각 중앙관서의 국유재산에도 공공주택 공급이 가능토록 고쳤다.

    행정재산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직접 이용되는 국유재산을 의미한다. 일반재산은 경제적 가치 실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용되는 국유재산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유재산이기만 하면 그곳에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장 의원실 측은 노후 우체국을 공공주택으로 복합 개발하는 국토부의 8·4대책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일각에서는 4000여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과천 정부청사 부지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장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 후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국토교통부, 당 정책위원회와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행정재산과 일반재산을 나눈 제도의 취지를 몰각한 채 주택 정책에만 함몰된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전문인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행정재산은 국가와 공동체의 재산이기 때문에 특정 목적에 사용할 경우 나타날 이해관계·분쟁을 막기 위해 용도 폐지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라며 "공공주택이라도 소유자·시행자 지정에 따라 소유 관계나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개정법안은 이에 대한 심도깊은 고려 없이 공공주택 건설이라는 목적에 쫓겨 절차를 규정한 제도의 취지를 경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은 그동안 부동산 정책을 내면서 절차나 기존 규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를 반복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한 주택임대차보호 3법은 민주당이 지난 7월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가 채 구성되지도 않은 상태로 강행 표결했다. 국회법상 법안소위를 건너뛰는 것은 가능하지만, 법안소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합의하는 불문율에 정면으로 반(反)한 것이었다.

    정부 역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절차 규정을 반복해 어기고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실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8·4대책까지 모두 23차례 나온 부동산 대책 중 13번의 대책에 절차상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시장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책이 주거기본법상 주거 정책의 최종·최고 심의 역할을 하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아예 열지 않고 발표된 것이다.

    주정심은 국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각 부처 차관급 관료와 주택 관련 민간 전문가가 참여해 중요한 주택 정책을 최종 심의 하는 기구다. 주거기본법에는 국토부 장관이 지정·승인해야 하는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른 택지개발지구의 지정·변경·해제와 주거복지 등 주거정책 및 주택의 건설·공급·거래에 관한 중요한 정책으로서 국토부 장관이 심의에 부치는 사항 등에 대해 주정심을 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실은 지난 6~7월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수요억제책 7·10대책과 대규모 공급 계획인 8·4대책도 주정심을 건너뛰었다고 밝혔다. 여당인 민주당의 소병훈 의원조차 지난 2016년 이후 5년간 25번 열린 주정심 회의 중 대면 회의는 단 두 차례뿐이고 나머지 23번은 서면 회의였다고 지적했다. 전체 25명의 위원 중 정부 측 당연직 위원이 14명으로 과반을 넘어 자율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그나마 들러리 역할도 못 한 채 주요 부동산 정책 결정에서 ‘패싱’된 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야당 관계자는 "부동산 문제가 정권 차원의 변수가 되다 보니 180석의 힘을 믿고 과정이나 절차 없이 일단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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