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재료값 급등… 긴 장마·잦은 태풍에 작황 나빠진 탓
"당분간 가격 상승세"… 시판 포장김치도 품절
50대 주부 문모(58)씨는 최근 김장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았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문씨는 "추석 전 배추와 무값이 너무 비싸 사지 못했는데 명절이 지난 뒤에도 가격이 그대로다"면서 "올해 김장은 포기하고 시판 김치를 사 먹는 게 훨씬 경제적일 것 같다"고 했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본격 김장철이 시작된 가운데 배추, 무를 비롯한 주요 김장 재료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5일) 기준 배추(상품)의 평균 도매가는 10㎏에 2만6020원, 평균 소매가는 1포기에 1만1657원을 기록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9일(도매 2만7620원·1포기 1만1883원) 가격과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날 가격(도매 1만9500원·소매 7630원)에 비해서는 각각 33.4%, 52.8% 올랐고, 평년 가격(도매 1만3187원·소매 5494원) 대비로도 97.3, 112.2% 비싸졌다.
다른 김장 주재료인 무(상품)도 같은 날 20㎏ 평균 도매가가 2만7660원으로 전년(2만900원) 32.3%, 평년(1만7397원)보다 59.0% 올랐다. 소매가 역시 1개 평균 가격이 3944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2461원)과 평년(2334원)보다 각각 60.3%, 69.0% 높았다. 이밖에 붉은고추, 마늘, 대파, 양파, 생강, 고춧가루 등도 모두 평년 가격보다 비싼 값이 거래되고 있다.
김장 채소값이 급등한 것은 날씨 영향이 크다. 지난 여름 배추 주요 산지에 비가 자주 내린 데다가 54일에 달하는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에 잦은 태풍까지 덮치면서 작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는 10월 농업관측 보고서에서 "가을 배추는 잦은 비로 정식(모종 심기)을 포기하면서 재배 면적이 전달 조사 대비 3%포인트(p) 줄었고, 기상 악화로 생육 불균형과 뿌리혹병 등 병해가 증가하며 생산 단수도 평년 대비 6.6%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김장 재료값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0월 고랭지배추 출하량은 평년 대비 13.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고랭지배추 평균 도매 가격은 10㎏ 당 1만4000원으로 전년(1만2930원) 대비 8.3%, 평년 가격(6706원) 대비 2배 넘게 비쌀 것으로 전망된다. 무, 고추, 양파, 파 등 가격도 평년 대비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김장포기족)’도 늘어날 태세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추석을 앞두고 진행한 소비자패널조사에서 평소 명절용 김치를 담그는 소비자의 48%가 이번 추석에는 ‘김장 양을 줄이겠다’고 답했고, 이 중 83%가 ‘비싼 배춧값’을 이유로 꼽았다.
업계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포장김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을 드러낸다. 업체들은 이미 지난 8월 하순부터 포기김치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 여름철 성수기 포장김치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공급 물량이 딸린 탓이다.
‘종가집 김치’로 국내 김치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점유율 46%)은 현재 자사 온라인 쇼핑몰 정원e샵에서 포기김치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열무김치와 총각김치 등 일부 무김치도 일시 품절됐다. 종가집 김치의 맞춤형 김치 서비스인 ‘나만의 김치’도 지난달 중순부터 판매를 중단했다. 업계 2위 기업인 CJ제일제당도 비슷한 상황이다. ‘비비고 김치’를 판매하는 자사몰 CJ더마켓에서도 포기김치 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대상 관계자는 "오프라인에서는 어느 정도 물량을 판매 중"이라며 "재료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물량의 정상화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도 "김치 재료 수급에 최대한 힘쓰고 있지만 예측이 쉽지 않다"며 "가을 배추가 풀리는 10월말 11월 초쯤 수급이 수월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