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속력만 달라졌을 뿐 방향은 같아…세분화된 소비자 정확히 포착해야”

입력 2020.10.09 06:10

[이코노미조선]
<Interview> 황희영 오픈서베이 대표가 말하는 기업의 포스트 코로나 대응 전략

대세 변화 좇기보다
‘내 고객은 왜’ 달라졌나
틈새 변화서 기회 찾아야

황희영. 포항공대 학·석사, 전 모니터 컨설팅 그룹, 한국 피자헛, 맥킨지 앤 컴퍼니 / 오픈서베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전에 없던 생소한 변화를 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측한 데이터는 변화의 방향은 같지만 속력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조선’은 9월 17일 황희영 오픈서베이 대표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황 대표는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를 만난 이유는 그가 매월 40만 부의 설문 데이터를 분석하는 회사를 이끌며 소비자의 내심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20년 차 리서처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의식주 전반에 걸친 변화가 소비자 세그먼트(segment)별로 매우 분화되어 가고 있다"며 "전체적인 변화의 방향이나 속도보다는 어떤 소비자에게 어떤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 대표와 일문일답.

오픈서베이는 어떤 회사인가.
"설문 데이터 수집 및 플랫폼 회사다. 설문은 ‘묻고 답하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행위다. 20개 정도의 객관식 문답 설문조사부터, 기업의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설문은 전문적인 영역까지 제공한다. 예를 들어 노트북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중앙처리장치(CPU), 주기억장치(RAM), 그래픽카드, 하드디스크와 같은 사양부터 무게, 배터리 지속 시간, 기기 크기, 디자인 등 수십 가지 속성을 어떻게 조합해야 소비자가 선호할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혹은 노트북을 새로 구매하는 과정에 대한 주관식 답변을 통해 객관식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자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전문적인 기업형 설문조사 수요에 대응하고 다양한 분석 툴까지 제공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솔루션이다."

요즘은 많은 기업이 그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비자 행동을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굳이 설문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무용론도 제기되는데.
"유튜브나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알고리즘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해당 콘텐츠를 클릭하고 시청했는지까지 알 수 있을까. 행동 데이터의 한계는 소비자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했는지는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하기도 어렵다. 설문조사는 그 ‘무엇’에 콘텍스트(context·맥락)를 입혀주는 역할을 한다.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본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고객사 중 50~60대 중년층에 대한 온라인 마케팅을 활발하게 진행하던 보청기 회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청기는 보통 80대 이상 초고령층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다. 심리적 허들을 낮추기 위해 젊은 여성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고, A/B 테스트를 통해 유입률이 괜찮다는 검증도 했다. 하지만 정작 매출이 안 나와서 면담 설문을 해보니 ‘청각 저하가 있는’ 50~60대에게서 ‘젊은 여성이 쓰는 보청기라고 하니까 장애인이 사용하는 제품 같아 광고 클릭이 꺼려졌다’는 대답이 나왔다."

최근 변화가 많은 뷰티 업계 사례는 없나.
"최근 여성 뷰티 시장은 소비자 맞춤 제품에 대한 니즈가 높다. '에뛰드'는 이런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오픈서베이와 함께 '국민 BM 챌린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263일간 제품 테스트와 설문을 통해, 신제품의 콘셉트부터 제품명, 패키지 디자인 등 제품 개발 전반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발림성 만족도가 높은 '피지쏙' 라인이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소비자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
"뷰티 업계 역시 그렇다. 코로나19로 색조 화장품 매출은 줄고, 기초 화장품 매출은 늘고 있는데, 사실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트렌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화장은 꾸밈 노동'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코로나19 동안 마스크 착용으로 피부 고민이 늘며 가속화되었을 뿐이다. 이점이 이전부터 기초 화장품을 강화해온 기업들에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라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미 시장에는 기초 화장품 트렌드가 시작되고 있었고, 이에 빨리 대응한 기업이 수혜를 봤다.

최근 주목받는 가정간편식(HMR)도 마찬가지다. 2016년부터 소비자 식생활에 대한 추이를 기록해오고 있는데, HMR 소비는 계속 늘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16년 7월부터 19년 12월까지 HMR 비중이 3%포인트 증가했던 것이, 코로나19 후 몇 달 만에 3%포인트가 더 올랐다.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 세그먼트에 따라 HMR 비중이 늘어난 정도가 제각각이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
"HMR 비중이 가장 늘어난 것은 중·고등학생 이상 자녀가 있는 가정과 미취학 자녀가 있는 가정이었다. 전자는 ‘더이상 조리 노동을 하기 귀찮아서’, 후자는 ‘육아만으로도 벅차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반면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가 있는 가정은 내식(요리)이 확 늘었다. ‘육아가 예전처럼 힘들지 않고,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요리가 적합해서’라는 이유였다.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는 가정은 배달 서비스 이용률이 대폭 늘었다. 의외로 내식이 크게 늘어난 세그먼트는 1인 가구다. 이들은 요리를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재미있는 활동으로 인식하더라. ‘HMR이 늘었다’라는 뭉뚱그려 조망하는 큰 변화만 보면 이런 세세한 변화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 기업은 쇠퇴하고,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 같은 온라인 채널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큰 맥락에서 보면 맞는 얘기지만, 기존 플레이어에도 새로운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매출도 안 나오고 성장도 더뎌 유통 기업의 오랜 골칫덩이였던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코로나19 이후 대폭 성장했다. 편의점보다는 싸면서 대형마트보단 가깝고 덜 붐비는, 어중간한 점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됐다. 기존에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선호하던 50~60대가 이커머스(e-commerce)로 대거 유입되고 있는데, 이들이 고스란히 쿠팡·네이버 쇼핑으로 가지는 않는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홈쇼핑이나 옥션 같은 오래된 오픈마켓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똑같은 비대면이라도, 연령·지역·성별·직업에 따라 그 양상이 제각각이다. 매스 마켓(mass market)이 아니라 니치 마켓(niche market)이 뜬다는 것도 벌써 수년 전부터 나온 얘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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