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 자리에 앉아 밥 먹고, 나연 생일 파티하러 카페 가요

입력 2020.10.05 06:10

[이코노미조선]
<르포> "OO팬이면 꼭 가야" 팬덤 성지 탐방기

현대경제연구원은 ‘팬덤 경제’를 2020년 소비 트렌드를 이끌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최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소식은 팬덤 경제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였다. 팬덤이 등장하는 곳엔 어김없이 돈이 돌고, 그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움직이는 중견기업’ 아이돌 그룹과 팬덤의 경제 효과를 분석하는 학계 연구가 넘쳐나는 건 당연하다. ‘이코노미조선’이 팬덤 경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는 것도 당연하다. [편집자 주]

BTS 덕에 매출 2배 뛴 식당
생일 카페로 코로나19 견뎌
스타가 입은 옷은 완판 행진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연습생 시절 자주 찾은 서울 논현동의 ‘유정식당’. 가게 내부 벽과 천장이 BTS 사진과 기념품으로 도배돼 있다. / 김지욱 인턴기자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 18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유정식당’을 찾았다.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전 사용하던 연습실 바로 위층에 있어 멤버들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식당, 그래서 BTS 팬클럽 ‘아미(ARMY)’ 가입자라면 꼭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성지(聖地)’로 통한다. 팬덤 경제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나선 길, 첫 방문지로서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현재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는 장소여서일까. 사전 조사 당시 "전화 예약은 기본이고 줄을 한참 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팬덤의 세계는 만만치 않구나.’ 원활한 취재를 위해 식사 시간을 피해서 갔다. 도착했을 때 점포 앞에 대기자가 서 있어 놀랐는데, 알고 보니 BTS 멤버 뷔가 즐겨 앉던 의자에 앉기 위해 해당 좌석이 빌 때까지 기다리는 팬이었다.

점심 손님이 대부분 빠져나간 식당은 저녁 장사를 준비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BTS 팬들이 가져다 놓은 BTS 관련 컵과 액자·입간판 등이 가게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어느 곳을 쳐다봐도 7명의 글로벌 스타가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 콘택트’를 해줬다. BTS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가끔 매니저들이 음식을 포장해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30여 년 동안 만난 많은 아이돌 그룹 가운데 BTS처럼 열심히 연습하는 가수를 본 적이 없다. 손자처럼 느껴져 밥을 많이 해줬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가 (BTS에게) 고맙다." 식당 주인인 장영근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BTS가 일본의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유정식당을 소개한 후 이 식당은 국내 팬뿐 아니라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BTS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유정식당 매출은 두 배 이상 올랐다. 장씨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종종 BTS 이름으로 모금행사를 하고, 방문객에게는 무료로 BTS 굿즈(기념품)를 나눠준다"라고 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카페 ‘이브닝블루’는 팬들이 인기 아이돌의 ‘생일 카페’를 열어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갓세븐(GOT7) 멤버 진영의 생일 카페가 열렸다. / 김지욱 인턴기자
밥을 먹고 나오니 커피 생각이 났다. 유정식당 근처에 있는 카페 ‘이브닝블루’로 발길을 옮겼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갓세븐(GOT7)의 멤버 진영의 ‘생일 카페’가 열렸던 곳이다. 생일 카페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에 맞춰 카페 일부 또는 전체를 해당 연예인과 연관된 소품으로 꾸미고 축하 메시지 등을 붙여놓는 이벤트다. 팬들끼리 이벤트를 열어 서로의 애장품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가 국내 팬덤 사이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브닝블루의 사장 손모씨는 "개업 후 약 2년 동안 80여 명의 아이돌 생일 카페를 열었다"라며 "직접 만든 마카롱을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건데, 아이돌 얼굴을 새긴 마카롱을 출시한 뒤부터 팬덤 사이에서 생일 카페 명소로 유명해졌다"라고 했다. 손씨는 "생일 카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두세 달치 예약이 꽉 차는 경우도 있다"라며 "팬덤의 정성에 힘을 보탤 수 있고 또 그들 덕분에 매출도 늘어 보람을 느낀다"라고 했다.

손씨 말처럼 전국의 많은 카페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아이돌 생일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날만 해도 서울 시내 곳곳의 카페에서 우주소녀 수빈, 트와이스 나연 등의 생일 카페가 열렸다. 이브닝블루에서 만난 문석빈씨는 "트와이스 생일 카페로 처음 이곳에 방문했다가 마카롱 맛에 반해 단골이 됐다"라고 했다.

BTS 멤버 RM이 지상파 방송에 입고 나와 화제를 모은 하늘색 카디건이 자라 매장에 비치돼 있다. / 김지욱 인턴기자
◇팬덤 특수 노리는 유통 업계

평범했던 백반집과 커피숍을 관광 명소로 만들어버리는 팬덤의 강력한 시장 영향력은 수많은 유통 기업이 앞다퉈 아이돌 스타와 광고·협찬 계약을 하는 이유다. 팬덤 특수는 완벽하게 검증된 매출 극대화 전략이다. 인기 연예인의 ‘공항 패션’이 보도된 뒤 장착 아이템이 동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한 유통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런 연결고리는 있었으나 ‘아미’ 같은 글로벌 팬덤이 등장한 이후 팬덤 마케팅의 효과가 훨씬 더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아미에 버금가는 팬덤 ‘블링크(Blink)’를 보유한 블랙핑크의 경우 멤버 네 명 모두 해외 명품 브랜드의 앰배서더(Ambassador·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니는 샤넬, 로제는 생로랑, 리사는 셀린·불가리, 지수는 디오르와 손을 잡았다. 충성심 강한 글로벌 팬덤의 존재는 기업들이 블랙핑크를 브랜드의 ‘얼굴’로 선정한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SNS)만 놓고 보면 블링크의 열정이 아미를 능가할 정도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블랙핑크 네 명의 팔로어가 총 1억3049만 명(9월 22일 기준)에 이른다. 블랙핑크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4830만 명으로, 저스틴 비버(5700만 명)와 DJ 마시멜로(4850만 명)에 이어 전 세계 아티스트 가운데 3위다. 블랙핑크의 노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이 유튜브에서 불과 32시간 만에 1억 뷰를 돌파한 원동력이자 멤버들이 몸에 걸치는 거의 모든 의류와 액세서리가 순식간에 동나는 비결이다.

국내 유통 기업의 팬덤 특수 사례도 많다. VT코스메틱은 BTS를 모델로 기용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 회사는 2017년 ‘VT X BTS 콜라겐 팩트’ ‘VT X BTS 점보 칫솔 키트’ 등 BTS 이름을 붙인 제품을 출시했는데, 시장에 내놓자마자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같은 해 메디힐도 BTS 마스크팩 4종이 담긴 특별판을 선보였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유정식당과 이브닝블루 취재를 마친 후 강남역 인근에 있는 SPA 브랜드(상품을 기획 제조 유통하는 소매점) ‘자라(ZARA)’ 매장에 방문했다가 아이돌의 유통 업계 영향력을 실감했다. 최근 BTS 멤버 RM이 지상파 방송사 9시 뉴스에 입고 나가 품절 사태를 빚은 카디건이 재입고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전날 들어왔다는 카디건은 하루 만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태였다. 지점에는 작은 사이즈 세 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자라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박모씨는 "해당 방송 이후 일명 ‘방탄 카디건’을 찾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라며 "인기 아이돌의 브랜드 파워를 톡톡히 실감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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