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가 총리의 13일이 文대통령의 1238일과 같다

조선비즈
  • 손덕호 기자
    입력 2020.09.29 11:21 | 수정 2020.09.29 16:31

    9월 24일 오후 2시, 청와대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오전 11시부터 20분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신임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한일 관계 발전 방안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재임 기간 한일관계는 악화일로였고, 그 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어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첫 전화 회담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을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의 이 발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미 일본 언론에서 전화 회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대체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아닌, 스가 총리가 직접 총리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에게 옛 한반도 노동자(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시작으로,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인 양국 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하는 등 주요 통화 내용을 직접 전달했다. 스가 총리는 통화가 끝난 14분 뒤 기자들과 만나 회견을 했고, NHK는 정오가 약간 지난 무렵 이 장면과 함께 영상이 붙어 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청와대 발표 약 두 시간 전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일본 정치를 바라보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일본 정치는 한국보다 후진적'이라는 것이다. 이번 신임 총리 선출 과정도 국민적 지지도와 관계 없이 자민당 내 파벌간 담합으로 정해진 것을 보면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의 모든 면에서 그렇지는 않다.

    먼저 국가 수반인 총리의 움직임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통화도 청와대는 "오전 11시부터 20분간"이라고 밝혔으나, 일본 언론들은 "오전 10시58분부터 11시18분까지"라고 썼다. 총리관저 1층 로비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는 출입기자들이 분 단위로 정리한 9월24일 스가 총리의 18개 일정 중 하나이므로, 청와대보다 일본 언론 기록이 더 정확할 것이다.

    또 일본 총리는 언론과 매우 자주 만난다. 스가 총리는 16일 취임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 17일, 20일, 23일, 24일, 25일 등 28일 현재까지 취임 13일간 기자회견을 6번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후 3년 4개월 동안 브리핑룸에서 기자들을 만난 것이 6번이다. 가장 최근은 지난 5월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이었다. 스가 총리의 13일이, 문 대통령의 3년4개월, 1238일과 같은 셈이다. 물론 일본 총리는 관저 출입시마다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을 접촉하는 반면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조인 청와대는 기자들과 만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NHK홈페이지에 공개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9월24일 일정. 오전 10시58분부터 11시18분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했다고 적혀 있다. 그 전 일정을 보면 스가 총리가 오전 9시38분부터 5분간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 담당장관과 독대했고, 이후 9시44분부터 18분간 니시무라 장관과 내각부의 야마자키 시게타카(山崎重孝) 사무차관, 다와 히로시(田和宏) 심의관, 하야시 유키히로(林幸宏) 정책총괄관, 가고미야 노부오(籠宮信雄) 정책총괄관과 만났다고 구체적으로 공개돼 있다.
    문 대통령도 '대통령이 기자들과 너무 적게 만난다'는 비판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기자협회보 인터뷰에서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가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 직접 브리핑과 기자회견 개최 등 언론과 접촉을 더 늘려갈 의향은 없나'라는 질문에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에 방점을 두고 SNS 메시지, 국민과의 대화, 간담회, 현장방문 등 더 많은 국민들을 직접 만나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한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왔다"고 했다. 이어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과거와 달리 SNS 등 전달 방법이 다양해지고 기회가 많아졌다"면서 "무엇보다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아닌, 국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SNS에 더 방점을 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疏通)'은 "뜻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격해 사살하고 불 태운 사실이 알려진 다음날, 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이 사건은 물론 북한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념사를 올린 페이스북 글엔 주로 비판하는 내용의 3000여개 댓글이 달렸지만, 문 대통령의 답변은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육성은 사건 발생 6일만인 2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나왔다.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지만 소통은 없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없어 "그것은 말이죠"라거나 "여기까지 하지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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