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간 부동산 통계 안 본다더니… 자화자찬할 땐 꺼냈다

입력 2020.09.24 16:00

부동산 시장 안정 강조할 땐 KB부동산 통계도 활용

정부 주요 인사들이 ‘정책 판단에 활용하기엔 공신력이 떨어진다’고 했던 KB 부동산 통계를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강조하고 싶을 때는 가져다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정책 판단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부동산 통계는 한국감정원 통계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통계만을 입맛대로 취사선택해 시장 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부동산 시장 안정세가 시작됐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KB 부동산 통계를 사용한 사람은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 23일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주목할 점은 주택 시장 가격에 선행하는 매매 심리의 진정 흐름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KB 부동산 통계를 꺼내들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기재부
홍 부총리는 이날 "감정원의 수급동향지수는 102.9로 균형치인 100에 점차 근접하고 있으며 KB의 매수우위지수는 92.1로 2주째 매도우위 상황"이라고 말했다. KB 부동산 통계에서 찾은 긍정적 신호를 끌어다 정부 정책 효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를 시작하기 전 홍 부총리가 하는 모두발언은 정부의 시장 진단과 정책 방향성을 보여준다. 지난 8월 5일 처음으로 시작된 부동산시장 관계장관 회의는 매주 또는 격주에 한번 꼴로 기재부, 국토교통부,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변동폭 큰 통계는 상승세 둔화 강조 때만

7차까지 이어진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확인해본 결과, KB부동산 통계를 구체적인 수치까지 담아 인용한 시점은 제6차 회의다. 당시 7월 첫째주 대비 8월 다섯째주 매매심리지수가 감정원(111.5→104.9)보다 KB부동산(154.5→101.5)의 통계 자료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한 내용이 홍 부총리의 모두발언에 포함됐다.

처음으로 KB부동산 통계가 홍 부총리 모두발언에 등장한 것은 지난달 26일 제4차 회의인데, 이때는 서울 부동산 매매 시장의 상승폭 둔화를 언급하는 보조 근거로만 살짝 언급됐다. 홍 부총리는 먼저 "매매시장은 서울지역의 낮은 상승세가 지속되고, 전세 시장은 아직 상승률을 보이지만 상승폭이 축소되고 있다"면서 감정원 통계를 구체적인 수치를 담아 제시했다. 이어 그는 "KB은행 기준으로도 지난주부터 서울의 매매·전세가격 모두 상승 폭이 둔화세로 전환"했다며 KB부동산 통계를 공식적으로 거론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담지 않았다.

처음 통계를 활용해 부동산 시장 진단을 시작한 시점은 제3차 회의(8월 19일)인데, 이때는 한국감정원 통계만을 활용했다. 당시 ‘전세시장 불안’과 ‘상승세 둔화’를 언급하면서 홍 부총리는 "매매시장의 수급상황을 나타내는 감정원의 서울아파트의 매매수급지수가 8월 들어 하락(수요 우위 약화)하기 시작하는 등 매수세도 다소 약화됐다"며 "전세시장은 2017년 1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하락 후 상승 국면이며, 올해 6월 이후 상승폭이 확대되는 등 불안 요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당시 주간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8월 둘째주(8월 10일 기준) 아파트 가격은 서울은 전주 대비 0.41%, 경기는 0.26%씩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서울은 0.02%, 경기는 0.15%씩 올랐다. KB부동산 통계가 상승폭이 더 컸던 것이다. 전세가 상승률도 KB부동산 통계가 감정원 통계보다 상승폭이 컸다. 같은 기간 서울 전세가 변동률은 감정원 0.14%, KB부동산 0.41%였다.

제5차 회의에서는 "서울 아파트는 7월 첫째주 0.11%에서 8월 넷째주(8월 24일 기준) 0.01%로 상승세가 사실상 멈춘 모습"이라고 진단하며 감정원 통계만을 꺼내들었다. KB부동산 기준 8월 넷째주 서울 아파트 상승률은 0.43%이었다. 감정원 통계 대비 상승폭이 훨씬 컸던 8월 넷째주(8월 24일 기준) KB 통계는 홍 부총리 모두발언에 포함되지 않았다.

◇홍남기·김현미 "정책 목적으로 안 쓴다", 김용범 "과대평가된 지표"

이는 ‘KB 통계를 신뢰하기 어려워 정책 목적으로는 쓰지 않는다’는 전반적인 정부 기조와는 대치되는 통계 취사 선택으로 해석된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정부로서는 KB 주택가격동향은 참조가 되겠지만 그걸 토대로 부동산 정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택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김현미 장관도 지난달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정부는 KB국민은행 통계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KB국민은행 통계는 진폭이 더 커서 (안 쓴다)"라고 답변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도 이달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감정원 통계를 정책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KB부동산 통계의 과도한 변동성을 지적했다. 그는 "김 차관은 "감정원은 전국의 주택을 가장 잘 대표하도록 표본을 선정하고 이 표본의 가격을 매주 산정해 주택가격 상승률을 계산한다"면서 "행여 과대평가된 지표를 바탕으로 부동산시장 정책을 수립한다면 필요 이상의 과잉 규제로 오히려 부작용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고 썼다.

김 차관은 "감정원은 전국의 주택을 가장 잘 대표하도록 표본을 선정하고 이 표본의 가격을 매주 산정해 주택가격 상승률을 계산한다. 반면 KB의 목적은 은행권에서 활용할 주택담보대출의 적정한 담보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라면서 "호가 반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KB통계는 상승기에 감정원 통계보다 상승폭이 더 높게 나타나고, 하락기에는 하방 경직성이 있어 하락폭이 낮아 감정원 통계보다 더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감정원 통계를 정책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고위 관료가 정책 효과를 입증하는 데에 유리한 통계만을 골라 홍보에 활용하는 것은 시장 판단에 대한 왜곡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여러 통계를 종합해 정책 효과를 봐야 하는데 좋을 때만 유리한 통계로 홍보하는 건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