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 미스터리... 문구 하나로 대혼란

입력 2020.09.24 15:22 | 수정 2020.09.24 15:48

정부, 부동산 거래에 블록체인 활용 추진
거래 플랫폼이 아닌, 공적장부 시스템인듯

"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 등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

지난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자료에 담긴 문구가 논란이다. 정부는 지능형(AI) 정부 구축을 추진하면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블록체인 사업에 133억원을 내년에 투입하기로 했다. 사업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부동산 중개사협회는 정부가 네이버 부동산처럼 비대면 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하며 "중개사 없는 부동산거래시스템 구축에 결사 반대한다는 뜻을 담아 시위 등 조직적인 행동을 통해 공인중개사 생존권을 사수하겠다"며 반발했다.

'중개사 생존권 사수' 1인시위하는 박용현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중개사협회
◇정부 "부동산거래 아닌 공적장부 시스템, 오해"

논란이 확산되자 기재부는 지난 23일 설명자료를 통해 "블록체인 시범사업의 공모형 과제의 예시로 실증사업 추진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구체적인 사업 과제와 추진방식은 공모과정을 통해 추후 확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크게 ▲블록체인 활용 부동산거래의 의미 ▲‘중개인 없는’이라는 표현이 예산안에 들어간 배경 등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부동산 거래’라는 용어는 지난 7월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범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뉴딜’ 보도자료에 처음 등장한다. 자료에는 "지능형(AI) 정부의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다. 복지급여 중복수급 관리, 부동산 거래, 온라인 투표 등 국민체감도가 높은 분야의 블록체인 시범‧확산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명시됐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한 부동산 거래가 어떤 것을 의미인지는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가 예시로 든 블록체인 부동산거래는 중개인의 업무를 대신하는 거래 플랫폼이 아닌, 이른바 ‘부동산 공적장부(공부)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지난 7월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 보도자료에 ‘부동산 거래’가 표기돼있다. (아래)지난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로 표기돼있다. /기재부·과기정통부
앞서 2018년 12월 과기정통부와 국토교통부가 추진한 ‘블록체인 부동산 거래 시범사업’이 전신이다. 부처와 법원, 금융기관에 오가는 부동산 관련 정보를 전자문서 형태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제주도에서 시범사업도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 매매·대출을 하는 경우 등기소나, 국세청, 은행 등에 종이로 된 부동산 증명서를 제출해왔다. 2017년 기준 약 190만건 정도의 부동산 증명서가 발급(열람)됐고, 비용도 약 1292억원이 사용됐다. 또 이 과정에서 종이로 된 증명서는 위·변조에 쉽게 노출돼 각종 부동산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해왔다.

부동산 공적장부 시스템이 적용될 경우, 종이증명서가 아닌 전자문서 형식의 부동산 정보를 관련기관으로 제공할 수 있어, 실시간으로 부동산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자 하는 경우 부동산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하지 않아도 은행담당자가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부동산 정보(토지대장)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19개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실증 사업에 예산 신청을 한 것은 맞다"며 "다만 부동산 거래나 중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의 보안 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공적장부 시스템 등의 사업을 확대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중개사가 없는’이라는 말에서 오해가 생긴 것같다"고 했다.

과기정통부와 국토부가 2018년 발표한 ‘블록체인 부동산 거래 시범사업’ 설명 이미지 /과기정통부
◇‘중개인 없는’이란 말에 폭발… 중개인협회 "다시 확인하겠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기재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중개인이 없는 부동산 거래’라는 문구가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기존 디지털 뉴딜 자료에는 없던 ‘중개인이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일반 사람이 읽는다면 정부가 부동산 거래 플랫폼을 만들거나 중개인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 소관 ‘블록체인 시범사업’의 공모형 과제의 예시일 뿐"이라면서 "실증 사업을 추진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과제를 쉽게 설명하기 예시였다는 것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이지만, 중개인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부동산 중개수수료 조정과 부동산거래분석원 설립 등을 놓고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23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중개인이 필요 없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부동산중개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개인 없는’이란 표현을 보고 놀랐는데, 기재부나 과기정통부, 국토부 어디에 확인을 해도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시스템이 정확히 무엇인지) 내부적으로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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