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시아나항공은 내년에 팔릴까

입력 2020.09.19 06:00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하는 행운을 얻는다. IMF 외환위기 속에 정부가 진행한 빅딜의 결과였다. 하지만 행운도 잠시, 현대전자는 부도 위기를 맞는다. 반도체 불황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에 참여해 북한에 1억 달러를 송금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급증했다. 결국, 현대전자는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다.

채권단은 처음 하이닉스반도체(현대전자)를 회생시킬 자신이 없어 해외매각을 추진한다.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인수 후보로 나섰지만 매각은 무산된다. 대안이 없어진 채권단은 하이닉스 정상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채권은행인 외환은행 부행장 출신 우의제 사장은 채권단을 설득해 반도체 기술개발과 양산 투자에 나서, 회사를 조기에 흑자로 전환했다. 우 사장에 이어 사령탑을 맡은 김종갑 사장(현 한전 사장)은 외부 권력기관의 수많은 인사청탁을 차단하고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스카우트해 기술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채권단은 정상기업으로 탈바꿈한 하이닉스를 SK그룹에 매각해 1조 원이 넘는 차익을 얻었다.

하이닉스는 기업 구조조정의 최고 성공사례로 꼽힌다. 기간산업에 속한 중요 기업이 경영실패로 부실해졌을 때 채권단이 맡아 일정 기간 꾸준히 투자해 정상기업으로 회생시킨 다음 매각해 기업을 살리고 투자금과 차익을 회수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다.

하지만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이닉스처럼 회생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대부분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무시하고 차입금 회수에만 매달려 조기 매각을 추진하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위기를 초래했다. 최악의 구조조정 실패사례는 한진해운이었다.

한진해운은 세계 7위 컨테이너선 회사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업계 경쟁이 심해져 적자에 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산업은행은 2016년 한진해운을 한진그룹에서 분리해 직접 운영키로 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부실기업 구조조정 작업이었다.

그런데 산업은행과 당시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금융위원회는 돌연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아갔고 법원은 파산을 결정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품을 운반하는 최대 해운사를 갑자기 침몰시킨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선박을 현대상선(현 HMM)이 인수해 수출입 물량을 실어나르면 될 것으로 쉽게 판단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컨테이너선들은 선박금융을 제공했던 해외 금융기관이 가져가 머스크, MSC 등 글로벌 해운사에 넘겼다. 결국 한진해운이 차지했던 컨테이너 물동량은 대부분 해외 선사로 넘어갔다.

정권이 바뀐 후 정부는 HMM 등 해운업계 정상화를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하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돈을 다 쓴다 해도 HMM이 과거 한진해운 규모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해운업계의 긴 겨울이 끝나고 컨테이너선 운임이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만약 정부가 한진해운을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회생 작업을 진행했다면 더 적은 비용으로 세계 7위 해운회사와 현대상선을 모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9개월 만에 무산됐다. 코로나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여객기 운항이 중단되고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급증한 것이 원인이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아시아나는 물론 현산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만약 채권단이 항공산업 정상화가 연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게 된 지난 4~5월쯤 매각 중단을 선언하고, 아시아나가 정상화한 후에 매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현산은 계속해서 아시아나의 인수 후보로 남았을 것이고, 이행보증금 2500억 원을 둘러싼 법적 다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막판까지 현산에 아시아나 인수를 요구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산업은행이 아시아나를 매각하는 목적이 회사를 정상화할 새 주인을 찾는데 있지 않고, 부실기업을 떠넘기는 데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기간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며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이들 중엔 치열한 글로벌 경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위기를 맞는 기업이 나온다. 채권단이 그 기업들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아시아나 매각이 무산된 후 채권단에선 벌써 내년에 매각을 재개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항공 운항이 언제 정상화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채권단이 재매각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것으로 판단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매각보다 정상화가 먼저다. 코로나 팬데믹이 해소되고 아시아나항공이 다시 날아오른 후에 재매각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 그래야 채권단도 제값을 받을 수 있고, 경제를 떠받치는 기간산업도 경쟁력을 회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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