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왜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를 "얼빠졌다"고 비난했을까

조선비즈
  • 손덕호 기자
    입력 2020.09.16 11:40

    조세재정연구원, 전국 사업체 자료 활용해
    "지역화폐, 유의미한 지역 경제활성화 효과 없다" 분석
    이재명 "얼빠졌다" "혈세 낭비한다" "엄중 문책해야"
    지역화폐 이용해 '기본소득' 정책 추진해 와
    대선 앞두고 '기본 시리즈' 훼손 우려하는 듯

    이재명 경기지사가 15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해 "얼빠졌다"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 효과는 없고 손실·비용만 발생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이 보고서를 비판하기 위해 페이스북 글을 6시간동안 3개 썼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핵심 정책"이라면서 "정부 정책을 폄훼한 정부연구기관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주장해 온 '기본소득'의 근거를 훼손할 수 있는 주장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0일 '2020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가 온라인 방식으로 개막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 정책의 전국화를 모색하기 위해 제안한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회' 출범식이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영상회의 방식으로 개최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지역화폐는 일종의 보호무역…사회전체 후생 감소"

    조세재정연구원이 펴낸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송경호·이환웅 부연구위원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사업체 전수조사자료를 활용하고 3500만개 데이터를 분석해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실증 분석했다.

    그 결과 "지역화폐 발행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형마트와 경쟁·대체 관계에 있는 동네마트, 식료품점에서만 지역 화폐로 매출 증가 효과가 나타나고, 기타 업종은 유의미한 매출 증가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또 "소비자 지출이 지역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서도 "일종의 보호무역처럼, 인접 지역의 경제적 피해를 일으켜 오히려 사회 전체 후생은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결과 모든 지역에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전체 지역 사회 후생이 지역화폐를 발생하지 않을 때보다 줄게 된다"고 분석했다.

    지자체들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서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액면가보다 싸게 판매하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지역화폐인 상품권 1만원권을 900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정부가 차액을 보조하는 데에만 올해 9000억원이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며 "9000억원 보조금 중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제적 순손실은 46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고 했다. 상품권 인쇄비·금융수수료 등 부대비용은 올해 1800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지역화폐 상품권을 동네 마트 등에서 사용하지 않고 업자에게 팔아 차액을 얻는 '현금깡'을 단속하는 비용도 든다.

    조세재정연구원에 작성한 지역화폐 관련 보고서 결론 부분.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 캡처
    ◇"지역화폐, 최고의 국민체감 경제정책"

    이 보고서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 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15일 오후 올린 '근거 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지사는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살리고 국민 연대감을 제고하는 최고의 국민체감 경제정책"이라고 했다. 이어 "현금 아닌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복지지출은 복지혜택에 더해 소상공인 매출증대와 생산유발이라는 다중효과를 낸다"며 "이번 정부재난지원금도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그 효과가 배가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했다. 정부연구기관이 "아까운 국민혈세를 낭비한다"고도 했다.

    이 지사는 이날 밤 올린 다른 글에선 "지역화폐가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인 2018년이전 지역화폐 상황을 가지고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핵심 정책의 하나인 지역화폐를 비난하는 국책연구기관이나, 이들에 의지하는 경제관료의 고집스런 태도가 참으로 걱정"이라고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연구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 한 시간 뒤 이 지사는 '지역화폐 폄훼한 조세재정연구원 발표가 얼빠진 이유 5가지'라는 글을 또 올렸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자 주요정책인 지역화폐를 정면 부인했다 △연구 내용은 문재인 정부가 지역화폐를 본격 시행하기 전인 2010~2018년 사이 지역화폐에 대한 것이다 △2년 전까지의 연구결과를 지금 뜬금 없이 내놓았다 △온 국민이 효용을 체감하는데 아무 소용 없는 예산낭비라고 폄훼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경기연구원 연구결과와 상반된다 등이 이유다.

    2016년 4월 20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성남동 주민센터에서 2분기 청년배당을 신청하는 청년을 격려하고 있다. /성남시 제공
    ◇'지역화폐+기본소득'인 '청년배당'으로 인지도 높여

    이 지사가 조세재정연구원을 비판하며 든 이유는 '지역화폐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이 지사가 주장하고 있는 '기본소득'의 근거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반박이 나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기본 시리즈'를 주요 정책으로 제안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을 할 때부터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던 구호다. 성남시는 2016년부터 부분적 기본소득 정책인 '청년배당'을 실시했다. 성남시에 거주하는 만24세 청년들에게 분기별로 25만원씩 연간 100만원을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정치권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으나, 이 지사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이 지사는 최근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방식이 아닌 전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정부와 맞서기도 했다. 선별 지급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는 글을 써 논란을 일으켰다.

    2017년 2월 20일 청년배당 체험행사에 나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시장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그 뒤 이 지사는 지난 9일 추석을 앞두고 경기도민에게 1000억원의 도비를 투입해 '경기도식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지역화폐를 충전하면 10%의 인센티브를 주는데, 오는 18일부터는 소비금액 20만원 한정으로 15%에 해당하는 3만원의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 지사는 "이번 조치로 3만원 인센티브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강제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역화폐는 효과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지사는 "기재부 협의로 과제를 선정해 연구하는 조세재정연구원이 얼빠진 연구결과를 이 시기에 제출했는지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썼다. 조세재정연구원을 넘어, 기획재정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국회 기재위에서 "재난지원금은 전국민이 아닌 어려운 계층을 선택해 지급해야 하며, 기본소득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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