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권추심 대행?… 통신비 지원, 통신사 미납요금 보전 효과

입력 2020.09.16 11:00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 정책이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요금연체와 미납사례를 보전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정부가 통신사의 미납요금에 대한 ‘채권 추심’을 대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한 4차 추경안에는 ‘비대면(언택트) 활동 뒷받침을 위한 통신비 지원’ 사업이 포함됐다. 만 13세 이상의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 1인당 1회에 한해 통신요금 2만원을 주는 방안으로 9389억8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8차 비상경제회의에서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2만원 통신비 지원' 관련, "코로나로 인해 자유로운 대면 접촉과 경제 활동이 어려운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납·연체료 보전 효과… 국회·시민단체 ‘재검토’ 요구

16일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9월 통신비를 기준으로 연체 여부와 관련없이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방식은 통신사가 요금을 우선 감면하면 정부가 사후 정산해주는 식이다. 지원 대상은 법인폰과 외국인을 제외한 4640만명으로,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6963만명)의 67% 수준이다.

문제는 9월 통신비를 미납한 이용자에 대한 지원이다. 보통 통신사는 이용자가 2개월 연속 통신비를 미납할 경우 발신 정지를 한 뒤, 이후 수신까지 정지를 시킨다. 미납이 장기화 될 경우 직권 해지도 가능하다. 3개월 이상 연체될 경우, 휴대폰 기기값은 서울보증보험으로 통신비는 신용정보사로 추심이 이관된다. 이에 통신사는 일정한 비용을 투입해 채권을 회수 하게 된다.

자료=국회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 캡처
하지만 정부가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미납 가능성이 있는 통신비의 일정 손실액을 보전해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를 들어 A가입자가 5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사용하는데, 정부로부터 통신비 2만원을 지원받으면 9월 요금은 3만5000원이 된다. 하지만 A씨가 9월분 요금을 미납해 채권 추심에 넘어갈 경우, 통신사의 채권 손실율은 100%(5만5000원)에서 63.6%(3만5000원)으로 낮아진다.

통신사 한 고위 임원은 "요금 연체액과 연체율, 채권 추심율 등은 각 통신사마다 보안사항이고 통신사 입장에서는 미납에 따른 부실 채권에 대한 헤지(위험회피) 역할이 가능할 수 있다"며 "2만원이 미납료의 일부분이라 규모가 크진 않지만, 어느정도 매출결손에 대해 보전이 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러한 문제로 이미 국회나 시민단체들은 통신비 2만원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예결위 의원실에 제출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직접적으로 정부의 재정이 통신사에 귀속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요금연체·미납액과 같은 매출 결손분을 감소시키는 등 통신사 매출액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지난해 각 통신사는 총 624만명에 8247억원을 감면해, 이미 저소득층에 대한 선별적 통신비 감면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통신사 매장에 걸린 현수막의 모습 /연합뉴스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역시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며 국회를 향해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경실련은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통신지원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으로 통신비를 미납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는 것이 아니라 미납으로 인한 통신사의 손실만 메워주게 된다"며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YTN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통신비 2만원 지급 방침에 대해 58.2%가 ‘잘못한 일’, 37.8%가 ‘잘한 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리얼미터 설문조사 보고서 캡처
◇주파수 할당 앞둔 통신사 "정부가 돈이나 제대로 줄지 모르겠다"

SK텔레콤(017670), KT(030200), LG유플러스(032640)등 통신 3사는 사회적 이슈가된 사안인 만큼,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9월 통신비는 이용자로부터 어차피 납부받는 요금이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 추가적인 혜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자칫 특혜를 받았다는 명분을 정부와 여당, 시민단체에 내주면서 ‘기본요금 인하’ 요구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경실련도 앞서 성명에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통신3사가 미납자에게 요금 감면과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때"라고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도 기본료 인하와 함께, 데이터 요금 인하, 와이파이 전국망 설치 등의 공약을 내걸며 통신사를 압박해오고 있다.

통신사들은 이통사가 먼저 지급한 금액만큼 정부가 추후 보전해줄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한번에 9000억원을 투입해 일괄로 금액을 지불한 만큼, 대형구매의 형식으로 비용을 깎아 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요금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세제혜택으로 갈음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총선공약 발표회에서 전국 와이파이 무료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DB
현재 통신3사는 내년 주파수 사용 기간이 종료되면서, 대가산정 방식을 정부와 협의 중인 상태다. 통신업계에서 ‘주파수는 곧 경쟁력’인 만큼 통신사가 정부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시기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전 금액과 실제 지출금액에 차이가 생길 경우, 당장 경영진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해, 기업의 책임감에 대해선 동의한다. 다만 주파수 재할당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부가 공공와이파이 확대 등을 담은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고, 이번엔 통신비 지원까지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라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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