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뉴스레터] 옥토버페스트 맥주, 10월이 아닌 3월 맥주라고?

조선비즈
  • 윤한샘 한국맥주문화협회장
    입력 2020.09.15 17:05 | 수정 2020.09.16 13:55

    가을이 되면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그 많은 축제 중 맥주 축제는 특별하다.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멋진 조명이 있는 텐트 아래서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는 경험은 다른 축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전 세계 맥주 축제 중 단연 으뜸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다. 매년 9월 말에서 10월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이 맥주 축제는 6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700만 리터 이상의 맥주를 마시는 세계 최대 축제 중 하나다. 옥토버페스트하면 맥주, 맥주 하면 옥토버페스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사실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축제가 아니었다. 올해로 210주년인 이 축제는 왕가의 결혼식에서 유래되었다.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이 뮌헨에서 열렸다. 루트비히 1세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해서 결혼을 기념하는 자리에 경마 대회를 열었고 이 장소가 바로 현재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다. 현지인들은 이를 줄여 비센(Wisen)이라고도 한다.

    루트비히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언 1세 왕은 아들의 결혼식을 기념하며 뮌헨의 네 지역에서 공짜 맥주와 음식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후 옥토버페스트는 경마를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를 여는 축제로 발전했고 1819년에는 매년 열리는 축제로 바뀌었다. 상인들은 점차 축제에서 맥주를 팔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맥주는 축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 행사는 여전히 귀족들을 위한 자리였고 맥주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1823년 옥토버페스트 경마 축제 (출처 : 위키피디아)
    19세기는 바이에른 공국이 힘을 축적하고 왕국으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1805년 왕국이 된 바이에른은 나폴레옹 전쟁과 신성로마제국의 몰락 속에서 남부 독일을 대표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해 간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렸던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과 신성로마제국 몰락을 지나 1848년 혁명, 보불전쟁과 통일 독일 제국까지 독일 역사에서 스펙타클한 역사적 분기점과 마주한다.

    지금은 옥토버페스트를 단순한 맥주 축제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축제는 바이에른의 민족 정체성과 단결을 위해 이용되곤 했다. 독일 혁명이 실패로 끝난 1850년,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에는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바바리안 여신상이 세워지고 비텔스바흐 가문을 상징하는 퍼레이드도 매년 진행하게 된다.

    새로운 남독일 중심 국가를 꿈꾸는 바이에른에게 옥토버페스트는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을 심어주기 좋은 장치였다. 테레지엔비제에 서 있는 거대한 바바리인 여신상 그리고 주위에 나부끼는 바이에른 국기를 보고 있는 백성들의 웅장한 마음을 상상해보라.

    1850년 독일 혁명이 2년 만에 실패로 끝나자 바이에른은 남독일 지역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독자적인 국가의 꿈을 꾼다. 북독일의 강자 프로이센은 독일 제국에 함께 할 것을 제안 했지만 바이에른은 이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결국 1870년 보불전쟁에서 비스마르크를 도와 다음 해인 1871년 독일 통일 제국의 한 축이 된다.

    옥토버페스트 퍼레이드 (출처 : 윤한샘)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옥토버페스트 맥주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 우리는 독일을 오래 전부터 맥주 선진국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독일 맥주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맥주는 영국 맥주였고 가장 선진적인 양조기술과 품질을 자랑했다.

    바이에른 슈파텐(Spaten)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를 비롯한 몇몇 맥주 혁신가들의 노력으로 19세기 후반 라거가 점차 시장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독일이 맥주 양조의 선봉에 선다. 특히 독일 통일을 위해 맥주는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식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1516년 바이에른에서 제정된 맥주 순수령이 독일의 상징이 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바이에른은 이 맥주 순수령을 제국법으로 격상 시키기를 원했고 비스마르크 또한 이 제안을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독일 민족 정체성을 심기 위한 다양한 신화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맥주 순수령은 훌륭한 기제였다. 물론 맥주는 오래 전부터 게르만족들의 음료였지만 '독일 맥주'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건, 19세기부터라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야 옥토버페스트 맥주 스타일이 굳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세기는 독일 맥주, 특히 바이에른 맥주들이 크게 성장한 시기다.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의 슈파텐, 그의 형제인 요제프 제들마이어의 프란치스카너를 비롯해 벨틴스, 라데베르거 등 독일을 대표하는 라거 맥주 브랜드들이 이 때 발전했다.

    학커-프쇼 맥주 마차 (출처 : 윤한샘)
    원래 옥토버페스트에서 주로 팔던 맥주는 어두운 색을 띄는 라거인 둔켈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1871년 ‘우어 메르첸’(Ur-Märzen)이라는 맥주가 등장하고 이듬해 둔켈을 제치고 이 맥주가 축제 맥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메르첸의 메르츠(März)은 독일어로 3월이라는 의미다. 이 맥주의 이름은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여름에 마실 맥주를 만든 3월에서 기인한다. 여름이 지난 후 사람들은 새로운 맥주를 만들기 위해 10월에 남아있는 맥주를 모여서 마셨는데, 맥주 축제의 기원을 이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하지만 현대적인 메르첸은 이런 설과 궤를 달리 한다. 우리가 지금 메르첸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은 1871년 프란치스카너(Franziskaner)의 가브리엘 폰 제들마이어가 출시한 라거 맥주다. 가브리엘 폰 제들마이어는 프란치스카너를 성장시킨 요제프 제들마이어의 아들로, 비엔나 라거의 창시자인 안톤 드레허에게 양조 기술을 교육 받았다.

    옥토버페스트 빅텐트(출처 : 윤한샘)
    안톤 드레허는 뮌헨 헬레스(Munich Helles)를 만든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의 친구로 라거 맥주의 선구자로 꼽힌다. 가브리엘 폰 제들마이어는 안톤 드레허에게 배운 비엔나 라거를 뮌헨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고 이 맥주를 '우어 메르첸'(Ur-Märzen)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그리고 이 맥주는 출시 다음 해인 1872년, 축제에서 주인공이 된다. 1892년에는 지금처럼 1리터 잔인 마스(mass)에 맥주를 담아 팔기 시작했다.

    메르첸은 그 자체로 마시기 편한 맥주지만 축제 맥주로 적용하기엔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축제 맥주의 암묵적인 룰은 다음과 같다.

    '부담없이 여러 잔 마시게 할 것'
    '사람들의 기분을 금방 좋게 만들 것'

    메르첸은 짙은 갈색과 5~5.5% 정도의 알코올을 갖는 라거로 카라멜과 토스트 향, 옅은 단맛과 중간 이상의 바디감이 매력적인 맥주다. 쓴맛이 적어 마시기 편하고 다양한 음식에 어울리지만 축제 맥주가 되기 위해 두 가지가 살짝 변형되었다.

    우선 단맛을 낮춰 여러 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게 했으며 알코올 도수를 0.3~0.5% 정도 높여 사람들을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특징이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 맥주라 불리는 스타일로 굳어지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 색이 조금 더 밝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출처 : 윤한샘)
    뮌헨의 6개 양조장만이 옥토버페스트에 맥주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슈파텐(Spaten), 파울라너(Paulaner),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학커-프쇼(Hacker-Pschorr),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그리고 뢰벤브로이(Löwenbräu)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병과 캔으로 파는 옥토버페스트 맥주의 라벨에 '메르첸'이 병기되는 이유도 이 두 맥주가 본질적으로 같은 맥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 맥주인 옥토버페스트 맥주가 3월 맥주인 메르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옥토버페스트 맥주 (출처 : edreams.com)
    20세기 들어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축제가 됐지만 이 곳에서 다양한 맥주는 찾아볼 수는 없다. 17개의 텐트에서 파는 맥주는 모두 '옥토버페스트 맥주' 단일 스타일이다. 만약 다양한 맥주를 원한다면 옥토버페스트는 답이 아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옥토버페스트가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 취하기 위한 축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맥주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사실 독일과 뮌헨의 문화와 함께 사람들이 언어, 인종, 국가를 초월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친구로 소통하는 문화가 이 축제의 핵심이다. 맥주는 단지 거들 뿐.

    안타깝게도 2020년 옥토버페스트는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었다. 아마 올해는 전 세계 모든 맥주 축제가 동시에 사라진 유일한 해가 될 지 모른다. 맥주 축제는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곳이 아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 맥주와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공간이다. 맥주로 소통하는 기회가 사라진 건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내년의 맥주 축제를 위해서 지금은 잠시 숨을 죽여야 한다. 옥토버페스트도 콜레라 같은 전염병과 세계대전으로 몇 차례 멈춘 적이 있지 않은가.

    아쉽지만 온라인을 통해 작은 맥주 축제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 서로 떨어져 있지만 손에 맥주 한잔을 들고 힘들었던 올 해를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축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힘, 소통과 위로를 나누는 경험이 더 진하게 남을 지 모른다. 그리고 건배하며 크게 외쳐보자.

    그동안 잘 버티셨습니다. 힘들지만 서로 다시 모일 그 날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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