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냉전에 생존 기로에 선 화웨이… 韓 반도체 위기⋅스마트폰은 기회

입력 2020.09.15 13:00

5가지 문답으로 풀어본 미국發 화웨이 추가 제재 발효
미국, 화웨이 전 세계서 1·2등하는 스마트폰·통신장비 사업 정조준
화웨이로 가는 모든 반도체 공급 막았다, ‘재고로 버티기’ 최대 1년
삼성전자 스마트폰 통신장비 반사이익, SK하이닉스 대체 공급처 찾아야
화웨이, 최악의 시나리오 시 파산 또는 알짜 자회사 하이실리콘 매각 전망도

한국 시각으로 15일 오후 1시부터 미국발 화웨이 추가 제재가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 기술·장비를 이용해 미국과 제3국에서 생산된 모든 종류의 반도체는 미국 정부의 승인 없이 화웨이와 계열사로 판매하는 길이 차단됐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직접 영향권에 들어섰다. 화웨이를 생존시험대에 올린 미⋅중 기술 냉전의 소용돌이에 한국 경제도 휘말려들어가는 형국이다.

왜 화웨이가 미국에 밉보인 것인지, 이번 제재로 화웨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국내 업체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등을 다섯 가지 문답으로 정리했다.

① 왜 화웨이는 미국의 타깃이 됐나?

직원 수 19만명, 8588억위안(약 149조원·2019년 기준)의 연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화웨이가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화웨이로 가는 모든 반도체 공급이 막힌 탓이다. 반도체가 없으면 스마트폰도, 통신장비도 만들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화웨이가 각각 전 세계 2위, 1위(2019년 기준)를 하고 있는 핵심 사업이다. 전체 매출의 89%가 여기에서 나온다. 스마트폰의 경우 올 2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전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픽=이민경
화웨이의 절체절명 위기에는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일어섬) 야심인 ‘중국 제조 2025’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로봇·항공기 등 첨단 산업에서 세계 패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보조금 지급, 해외 파트너들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등으로 공정경쟁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 기술 굴기의 가장 전면에 서 있는 화웨이의 부상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2018년 말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딸이자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은행 사기 등 13개 미국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 구금되면서 화웨이·중국과 미국의 긴장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화웨이를 향한 미국발 제재는 그로부터 약 반년 만인 2019년 5월 처음으로 시작된다. 미국은 우선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실효성이 작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에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시스템반도체 회사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이용해 칩을 생산, 화웨이로 가는 길은 여전히 뚫려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올해 5월 발표한 2차 제재를 통해 미국 밖이더라도 미국 기술을 사용해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 화웨이에 납품할 때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수위를 높였다.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전문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만들어 대만 TSMC를 통해 생산해오던 칩 수급까지 막히게 됐다.

미국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높아진 미국민의 중국 비선호를 지지율로 연결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 나갔다. 이것이 지난 8월 ‘화웨이가 설계한’이라는 문구를 빼버린 화웨이 3차 제재안이다. 이것이 이날 발효된 것이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등이 만든 메모리반도체 범용제품이 모두 제재범위에 들어가게 됐다.

② 화웨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

화웨이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폰 사업은 당장 내년부터 크게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GF증권은 지난해 2억4000만대였던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이 올해 1억9500만대로 약간 줄다가 내년 5000만대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화웨이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와 오포, 비보, 샤오미, 애플 등이 각각 2000만~3000만대의 점유율을 나눠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28%로 1위를 지키고 있는 통신장비 시장 입지도 흔들릴 것이란 관측이다. 화웨이 장비 배제 움직임이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 등 핵심 시장에서 나타나면서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일본 NEC 등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화웨이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AP연합뉴스
그렇다면 화웨이는 재고로 버티기만 할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2일 발간된 최신 호에서 궁지에 몰린 화웨이가 택할 수 있는 세 갈래 길을 전망했다. 첫번째 길은 화웨이 고객사들로 하여금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국 제재는 사전승인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두번째 길은 미국 기술을 포함하지 않는 공급망 내에서 자체적으로 칩을 만드는 것이다. 통신·기술연구소인 뉴스트리트 리서치는 화웨이가 쌓아놓은 재고 등을 감안했을 때 화웨이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최대 1년이라고 봤다. 그 이후부터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체 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화웨이가 만든 칩을 생산해줄 중국 현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MIC마저 거래제한기업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마지막 길은 파산하거나, 사업 일부를 매각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시나리오를 언급하면서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말 기준 화웨이 현금보유량이 3710억위안(약 64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1년 반 정도의 운영비는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발 제재가 계속될 경우 화웨이가 핵심 자회사인 하이실리콘 매각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했다.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와 함께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어차피 화웨이 칩을 만들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화웨이에서 벗어나면 달라진다. 첨단 반도체 설계기술로 중국 내 다른 기업을 위한 칩 설계가 가능해지고, 이렇게 되면 화웨이에도 수익원이 생길 수 있다.

③ 화웨이와 거래해온 한국 업체들, 어떻게 되는 건가?

화웨이에 반도체를 납품하면서도 스마트폰, 통신장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번 제재가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화웨이 매출 비중은 3% 정도다. 하지만 화웨이를 고객사로만 두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처지는 좀 다르다. 화웨이 매출 비중도 11%가 넘는다. 이것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메모리업계 톱3인 미국 마이크론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로 수요가 제한되는 가운데 제조업체들이 2017~2018년 진행한 설비투자 결과로 반도체 생산량은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하는 등 공급과잉 상태"라면서 "화웨이라는 커다란 고객이 사라질 경우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이고, 그간 화웨이가 재고비축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반도체를 구매해왔다면, 피부로 느껴지는 충격은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화웨이발 충격은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업계마저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제재 대상으로 올린 것은 반도체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되는 디스플레이 역시 픽셀을 컨트롤하는 장치인 디스플레이 구동칩(비메모리의 일종)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는 화웨이 매출 비중이 큰 편이 아니어서 타격이 덜 하겠지만, 당장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거래처 발굴이 쉽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사전승인을 해줄지 제재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④ 美 사전승인 받을 가능성은 없나?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 등은 미 상무부에 화웨이 수출에 관한 특별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미국 마이크론도 화웨이 수출 허가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수출 허가를 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허가를 내준다면 ‘화웨이 고사 전략’이 무력화되는 탓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판매 허가를 내준다면 화웨이 제재안이 무의미해지는 만큼, 허가가 나올 가능성은 미미하다"며 "허가 신청이 미국 정부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희박한 가능성에도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요청한 배경에는 ‘중국 눈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화웨이 외 중국 기업들과 거래도 활발하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제재에도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는 ‘제스처’를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⑤ 미국 대선 지나면 화웨이 제재 완화될 가능성 있지 않나?

대선을 앞두고 화웨이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일각에선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중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 있고 이에 따라 화웨이 제재에 대한 칼날도 무뎌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2011년 부통령 재직 당시 중국을 찾아 "중국의 번영은 미국의 이익"이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바이든을 친중 인사로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중(對中) 강경책을 수용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의 대중국관이 바뀌어, 누가 당선되도 미국의 대중 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선 이후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전략 변화는 나타날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하면 더 공격적인 기술기업 압박이,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중국의 원차이나(One China) 정책, 인권문제에 좀 더 강한 견제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차이나 정책은 홍콩은 물론, 대만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대외정책이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압박 정도가 덜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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