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의 왈家왈不] 영끌의 나라에서 사는 법

조선비즈
  • 전태훤 기자
    입력 2020.09.15 08:03

    온 나라가 언제부턴가 영혼 타령이다. 뭐만 했다 하면 영혼이 갖다 붙는다. 심령술이 유행했던 19세기 중반의 유럽도 아니고, 그것도 인공지능(AI)이 이미 현실이 돼 가는 21세기 한반도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영끌) 공모주 청약을 하고, 영끌이라도 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집을 살 수 없는 나라. 그리고 집값을 잡겠다고 집권 3년 만에 스물세 차례에 걸친 ‘영끌 대책’을 내고도 추가 대책을 예고하는 정부. 나라도 국민도 저마다 영혼까지 끌어다 쓰고 있으니, ‘털리지 않고 남아 있는 영혼이 얼마나 될까’라는 자조 섞인 물음이 나온다 한들 그리 어색할 것도 없다.

    투기억제 대책이 나올 때마다 더 오르는 집값과 흔들리는 실물경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증시를 보면, 실수요와 투자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가진 것 다 끌어다 베팅을 거는 ‘영끌러’들이 차고 넘치는 듯하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영끌의 나라가 됐을까?

    빡빡한 현실의 삶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몰린 2030 젊은 세대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학개미’와 ‘영끌러'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된다.

    바늘구멍 같다는 취업난을 뚫고 직장을 잡아도 계약직이냐 정규직이냐,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남부럽다고 하는 대기업 정규직이라도 정년이며 노후는 장담할 수 없다. 매달 급여에서 떼가는 국민연금조차 고갈될 거란 얘기도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온 터 아닌가.

    월급만으로는 노후가 불투명하니 벌이라도 있을 때 있는 돈 없는 돈 할 것 없이 모두 끌어다 동학개미로 나서 보기도 하지만 이들은 그저 주식 시장을 떠받쳐줄 뿐이지, 본인 주머니에서 재미를 보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집 걱정 없이 살아보겠다고 내 집 마련도 알아보지만 이게 어디 쉽나. 1년에 몇백만원 오르는 연봉으로는 자고 나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오르는 집값을 따라갈 수 없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든지, 사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들에겐 오늘 집값이 가장 싼 날인 거다. 주택담보대출 문턱까지 높아졌으니 신용대출을 한도까지 끌어쓰고 돌반지를 팔고 보험이며 예금까지 해약하며 영끌에 나설 수밖에.

    그래픽=송윤혜
    아파트 신규 분양으로 눈을 돌려 봐도 이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다. 정부 분양가 통제로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값에 공급되다 보니 새 아파트는 언감생심 로또다.

    올 상반기 서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99.3대1로 100대 1에 가깝다.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 지역도 37대 1이 넘는다. 이러다 보니 웬만한 서울 분양 현장도 당첨 최저 가점이 60점대 중반을 넘어선다. 30대 끝자락인 만 39세 세대주의 4인 가구가 모을 수 있는 최대 가점이 57점인 현실에선 서울 청약 당첨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기다렸다가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분양을 받으면 되는데, 30대의 영끌 주택 구매가 안타깝다"고 한다. 현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들이 이렇게라도 집 장만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이라도 하는 건지.

    스무 차례도 훨씬 넘는 영끌 대책을 쥐어 짜내느라 영혼까지 털린 걸까. 집값이 더 오를 거란 확신을 심어주고 이들의 조바심을 부추긴 책임은 어디에다 물어야 하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 3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 보름에 한 번꼴로 쏟아낸 부동산 대책이야말로 이 나라 영끌의 표본이자 책임이 아닐까 싶다. 영혼까지 끌어다 내놓은 대책이 집값이라도 잡았으면 좋으련만, 되레 서울 비강남권과 수도권 집값까지 들쑤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세입자를 보호하겠다고 내놓은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개정은 오히려 전세 매물이 줄고 전셋값이 올라 세입자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대책들이 세심한 고민 없이 성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내 집을 사고도 이전 집 주인과 세입자 간 임대차 계약 자동 갱신으로 새 주인이 입주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부야말로 다주택 적폐 청산을 통한 집값 잡기와 임차인 보호에 조바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주택 정책의 주무 장관은 30대 영끌 주택 구매를 보고 안타깝게 느낀다고 했다. 이 나라 백성이라고 느끼는 게 없겠나. 뭘 해도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정부의 영끌 대책을 보고 있기가 안타깝고 민망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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