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희망 버려야 살 길 생겨, 코로나 2~3년 더...생활 태도 바꿔라"

입력 2020.09.12 07:00 | 수정 2020.09.13 20:19

K방역 주역, 이재갑 교수의 일침
백신 나와도 종식 안돼… 2~3년 걸려 계절성 유행으로
방역은 선제적으로, 2.5단계 유지해야 추석 전 잡힐 것
K방역은 임기응변... 드라이브 스루도 4시간 만에
‘정은경 리더십’은 책임의 기적... 투명하게, 안 꼬이게
내년엔 괜찮아질까? 버티지 말고, 삶의 방식 바꿔야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감염병 전문가로 민간과 공공 영역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다./사진=장련성 기자
9월의 늦은 오후, 태풍을 앞둔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발령된 도심은 정적이 가득했다. 마스크 쓴 눈동자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감염병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는 2주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공의는 파업 중이었고, 그는 아침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회진을 돌고 환자들의 소변줄과 콧줄을 갈아 끼웠다.

보름이 넘도록 당직을 하는 이유는,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고령의 코로나 확진자 때문이었다. 에크모(외부 산소 순환 장치)와 인공호흡기 등의 처치를 받으며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 감염내과 전문의는 2교대로 보초를 섰다.

"우한을 방문하고 폐렴 증세가 있는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질본)에서 이재갑 교수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건 지난 1월 7일이었다.

이후 민간팀과 정부팀 공조의 중심에 서서 본격적인 코로나19 협공 작전이 시작됐다. 지난 2월 대구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도 그는, 50일째 바깥 잠을 잤다. 낮에는 대구, 밤에는 서울 병원을 오가며 바이러스 현장의 긴급 의료를 진두지휘했다.

현장의 위기 상황을 감염학회 단톡방에 올려 드라이브 스루와 선별진료소라는 해결책을 끌어냈고, 코로나 경증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를 추진해 중환자의 대규모 사망도 막아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폭넓은 감염병 현장 지휘 경험을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 사스부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에볼라(서아프리카까지 날아갔다), 그해 5월 메르스를 거쳐 2020년 코로나19까지 감염병 발생 현장, 수습과 대처 과정에서 ‘이재갑’이라는 전문가는 경험의 깊이를 더해갔다.

8개월이 넘는 코로나 전시 상황에 전공의 파업까지 겹쳐 파김치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이재갑은 피곤한 기색 없이 쌩쌩했다. 푸른 마스크 위, 안경알 너머 눈동자는 맑고 또렷했다.

"환자 때문에 살고 있다는 걸 새록새록 느껴요. 환자하고 더 가까이 호흡하니, 좋지요. 그게 의사니까요."

그는 최근 코로나19에 관한 가장 정밀한 백서이자, 바이러스가 침투한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는 책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를 펴냈다.

의료를 사회 선교라고 생각하는 이재갑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는 230명 정도로 매우 부족하다./사진=장련성 기자
-전공의 파업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코로나 최전선을 지키는 희생적인 의료진으로 존경받다, 순식간에 ‘전교 1등 의사'로 조롱이 퍼지면서 사회적 갈등도 커졌습니다.

"양쪽이 다 욕먹었죠. 정부도 의사들도. 공공의료 확충 아젠다, 이해하죠. 그런데 그 얘기를 이 와중에 정부는 꼭 꺼내야 했을까? 의사들은 이 와중에 꼭 파업을 해야 했을까? 굳이 지금? 이 중요한 2차 대유행 시기에요!"

-잠복해 있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입니다. 2차 대유행, 예측하셨습니까?

"장마철이 길어질 때 기분이 안 좋았어요. 비가 오면 일단 사람들이 카페, 식당 등 실내로 들어가요. 장마가 끝나는 주에 사랑제일교회 확진자가 100명 대로 늘었고, 연이어 광화문 집회가 있었죠. 게다가 8월 중순은 교회 여름 수련회 시즌이거든요. 장마 끝, 연휴 시작, 집회, 수련회가 맞물리면 ‘크게 터지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매스컴에 나와서 계속 경고했던 거죠? 감염병 전문가의 촉으로?

"촉이라기보다는 너무 예측되는 상황이었어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니까요!"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에 기록을 보니, 5월 연휴 이태원 집단 감염도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낮추자 바로 터졌어요.

"정세균 총리가 5월 초 연휴 시작하면서 중대본(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방역 단계를 낮추겠다고 했어요. 경제와 민심을 고려했지만, 전문가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아니나 다를까, 5월 6일부터 바로 이태원을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죠. 전국에서 이태원 관련자 6만 5천 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어요."

-불과 3개월 전이었죠. 5월 연휴 이태원, 8월 연휴 광화문이 데깔꼬마니처럼 겹치는데요. 왜 인간은 뻔히 예상되는 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요?

"경고에 반응하는 3가지 유형이 있어요. 첫째, 다 경험한 후 ‘힘들구나'를 깨닫는다. 둘째,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한다. 셋째, 다 예상하고 겪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 본성이 뼈저리게 다 몸으로 느껴야 받아들여요. 메르스 이후 다행히 방역 체계를 정비해서 초기 대응을 잘했지만, 1차 유행 끝나면서 느슨해졌죠. 이미 7월부터 이스라엘, 홍콩 등이 2차 대유행을 겪는 걸 다 봤는데도..., 안타깝게 한 달 늦은 2차 유행을 못 막았어요."

-2차 유행의 전파 주체는 사랑제일교회라고 보십니까?

"감염 프레셔는 지역사회에서 높아지고 있었어요. 무증상감염자가 8월까지 응축돼 있다가 약한 고리에서 터진 거죠. 1차 유행에서는 신천지, 2차 유행에서는 사랑제일교회로. 바이러스의 전파 특징은 일관돼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가 취약한 곳에서 빵 터져요.

다만 신천지 집단 발병은 모르고 당했지만, 사랑제일교회는 알고 당했다는 게 안타까워요. 4~5월에 집단 모임 단속하는 공무원들 밀쳐내는 모습 보고, 저는 대충 예측이 됐어요. 정부는 종교 탄압으로 정치적 역풍을 맞을까 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와중에, 교회는 한술 더 떠서 반정부 전선에 부흥과 순교까지 들먹이며 집회를 밀어붙였어요. 감염병 전문가 눈으로 볼 때 100% 알면서 당했습니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 현장. 대형 교회가 중산층 네트워크로 안전한 반면,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는 약한 젊은이와 소외된 고령자 층을 파고들어 결집시켰다. 가장 취약한 곳에서 바이러스가 터졌다. 아직도 집회 참자가 리스트는 확보되지 않았고 깜깜이 감염이 20%다./사진=장련성 기자
-이번에 3단계 거리 두기를 발동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강하게 주장하셨어요. 정부에서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래야 해요. 고연령 발병이 늘어나면 위험합니다. 어르신들이 150명씩 진단 나오는 데 60대 이상이 30%였어요. 일부는 중증으로 가요. 노인 환자가 200~300명 2주 이상 넘어가면 의료 체계가 과부하가 걸립니다. 지금도 중증 환자 150명이 넘었고, 에크모, 인공호흡기 치료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치료 인력과 병상 부족으로 병원마다 초비상이에요.

일단 3단계 발동해서 불부터 끄라고 신호를 보내는 거죠. 100명 이하로 확진자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전문가는 상황을 아니까 사태의 위중함을 계속 말해야 해요. 한 타이밍 늦어졌지만, 그래도 2.5단계를 선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어요."

추석에 ‘이동 제한’까지 가지 않으려면, 확진자가 두 자릿수로 떨어질 때까지 2.5단계 유지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여전히 경로가 불분명한 무증상 감염자가 20%다.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갑니다.

"(깊은 한숨을 쉬며)알죠. 하지만 과감하게 조치하고 빨리 끝내는 게 경제에 더 도움이 돼요. 서구에서는 ‘락다운’, 이동제한령까지 갔어요. 그만큼 위험합니다. 전문가가 3단계를 강조하면 정부는 고심하며 방법을 찾아요. 카페 출입을 부분 제한하는 2.5단계를 만들어내는 식이죠. 이태원 발병 때도 2단계로 올리지 않고 고위험시설을 선제적으로 조정했고요."

-민간 전문가와 정부가 손발이 잘 맞아 보입니다.

"메르스의 교훈이 커요. 그때는 방역 당국의 권위가 떨어져 민간 전문가가 현장을 좌지우지했어요. 보건복지부가 자체 반성을 많이 했죠. 민간과 공기관의 균형을 맞추고, 경제와 방역의 균형을 이뤄가는 게 정부 역할이에요. 그 과정에서 민주적 거버넌스(governance 공공과 시민의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가 유지되면 방역에 방향성과 신뢰가 생겨요. 방역 주체들도 준비가 돼 있으면 자신감이 붙고요."

“각 나라는 그 국민이 감당할만한 수준의 방역 체계를 갖습니다.”/사진=장련성 기자
-2003년 사스 때부터 감염병의 최전선에 있었지요?

"사스 때는 전공의 4년 차였어요. 국가 사스 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승철 교수님 밑에서 사스 국제 심포지엄을 도왔습니다. 스승인 김우주 교수님이 신종감염병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하셨던 2009년, 신종 플루 때부터 실무를 맡으면서 귀한 경험을 했어요. 감염병 전문가가 국가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하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배웠죠."

2015년 1월 에볼라 파이터로 긴급 구호 현장에 다녀온 뒤, 바로 그해 5월 메르스가 터졌다. 그는 신종감염 대응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감염병 데이터와 대처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간에 바이러스, 방역, 의료진과 국민의 반응 등이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과거엔 감염병 하면 식중독이나 A형 간염 정도였어요. 교과서대로 원인균 찾고 소독하고 발생자 조사한 후에 ‘어떤 음식만 조심하세요' 하면 끝이었죠. 식중독은 오염원이 분명하지만, 호흡기 감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어요. 전파 방법도 사망률도 다 다르죠. 메르스는 사망률이 높고 전파율은 낮아요. 코로나는 전파는 잘 되고 치명률은 낮죠. 경직된 사고로는 안 되겠구나. 그걸 메르스 때 겪고 깨달았어요.

코로나19는 미지의 바이러스예요. 모를 땐 신중해야 해요. 쉽사리 종식된다고 말하지 않아요. 별거 아니라고도 안 해요. 왜? 한 두 달 지나면 틀릴 수 있으니까. 조심스럽지만 능동적으로 대처해요. ‘신중한 능동성’이죠. 방역 당국도 민간 전문가도 섣불리 예측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도록 훈련이 됐어요."

-그래도 1차 유행 때 미국과 유럽이 그렇게 순식간에 카오스 상태에 빠질 줄 몰랐습니다.

"선진국들은 한국이 대처하는 걸 보고 더 놀랐죠. 2차 유행 왔을 때 ‘결국 얘네들도 똑같겠지' 했다가 내심 더 놀라고 있어요. 휴가철 맞아서 독일 영국 등 유럽은 2~3천 명씩 확진자 나오는데, 우리는 100명대에서 꺾이고 수습되고 있잖아요. 서구에선 지역 확진자가 600명 나오면 안심하고 학교 보내는데, 우리는 전국 300명만 넘어도 등교를 중단해요. 각국 전문가들도 ‘한국은 역시, 다르다, 민감하다!'고들 하죠."

-그런데도 K방역의 실체를 임기응변이라고 해서 놀랐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미소 지으며)정말 임기응변이었어요. 메르스 끝나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드라이브 스루, 생활치료센터 계획한 게 아니에요. 예상 못 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또 열심히 꺼요(웃음). 민간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위기를 통과했습니다. K 방역의 실체는 임기응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국민의 역동성이에요. 진단 키트나 드라이브 스루 같은 솔루션을 내도록 끌어낸 국민적 역동성이요."

민간 전문가의 제안을 정부는 처음엔 꺼렸다. "생활치료센터도 결단을 못 내리더라고요. ‘법적 체계가 없다, 거기서 죽으면 누가 책임지나'. 그러다 중증 환자들이 집에서 죽는 상황을 맞으면서… 더 미룰 수 없었죠. 견제와 연대 속에 최적의 솔루션이 나왔어요."

세계인이 감탄한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사진=장련성 기자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 아이디어를 끌어낸 사람도 이재갑 교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날이 2월 20일이었어요. 당시 대구 현장을 오갔는데, 정말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 확진자는 쏟아지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은 폐쇄되고, 진단 가능한 보건소도 부족했죠. 시장을 만나 학교 운동장에 천막이라도 치고 선별진료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해도 ‘시민이 불안해해서 안 된다’는 거예요.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때 제가 위원장으로 있는 신종감염병 태스크포스 단톡방에 올렸어요.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러 의견이 오가는 와중에, 제가 2018년에 생물테러 대응 연구를 했을 때, 드라이브 스루로 시민들에게 백신을 나눠주는 방법을 고민했었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인천 의료원 김진용 과장이 그 일을 상기시키며 4시간 만에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밑그림을 그렸죠. 2월 23일 경북대학교병원 권기태 전문의가 바로 받아서 세계 최초 드라이브 선별 진료소가 탄생했어요."

-집단 지성에서 실천까지 엄청난 스피드군요!

"다 위기감 때문이었어요. 저는 대구에서 그 심각성을 체감했어요. 일단 검사 시스템부터 빨리 갖추지 않으면 의료 마비가 올 게 뻔했어요. 김진용 과장은 메르스와 코로나 1번 환자를 진료한 경험으로, 또 그 시급함을 이해했고요. 위기감이 결합한 거죠."

위기로 뭉친 민간의 현장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정치인과 관료는 늘 한발 늦거나 처리 과정이 복잡했다. 이재갑은 그의 저서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에서 관료 사회의 위계화 된 방역 체계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관료주의 행정이 ‘질본’의 권고를 무시하면 결국 국민에게 큰 피해가 갈 거라 경고하면서.

-질본이 ‘질병관리청’으로 입법 예고 됐을 때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침을 가했어요. 설계와 방향이 구체적이라, 그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사실 방역 체계의 위계는 어쩔 수 없어요.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위로 올라갈수록 최종 의사결정자가 비전문가가 되는 구조에요. 질본 본부장에서 복지부장관, 국무총리로. 그런데 질본의 인사권과 예산권은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으니 종속적이죠. 게다가 장관은 복지전문가고. 그간 복지부는 행시 관료들의 인사 적체 문제를, 관행처럼 질본으로 내려보내 해결했죠.

앞으로 감염병과 싸움은 더 길고 복잡해져요. 질병관리청 산하에 감염병연구소 두고 인사권, 예산권 독립시켜야 K 방역이 제대로 기능을 해요. 의료 출신 관료가 행시 출신에 밀리는 구조도 개선해야 하고요. 지금 파워 게임을 할 때가 아니잖아요."

의사 출신인 정은경 본부장이 코로나 시국을 이끄는 건, 대한민국의 축복이라고 했다.

기회가 되면 국가의 의료행정가로 헌신할 생각도 갖고 있다는 이재갑 교수./사진=장련성 기자
-현장에서 본 정은경 리더십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분이 2011년 만성질환센터장 할 때부터 뵀어요. 청와대에서 처음 본부장 제의받았을 때, 제게 고민을 말씀하셨어요.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고. 그때 놀랐습니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본부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죠. 그리고 최선을 다해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상황이 안 좋아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항상 평온해요. 보건복지부에서 부탁을 받아도, 부서 간 서열이나 자존심을 안 따지고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한다'예요.

무엇보다 국민들은 정 본부장의 투명성을, 전문가들은 그분의 전문성을 높이 사요. 3번 확진자 관련 브리핑 때도 "저희가 내막을 파악하는 데 착오가 있었다"고 바로 인정했어요. 다들 면피하려고 하는데, 이분은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확히 얘기하세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이런 투명성이 신뢰의 핵심이예요. 언론 응대도 디테일에서 전체까지 큰 그림을 보니, 앞뒤 말이 엉키는 법이 없죠."

책임감과 전문성,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이재갑 교수도 만만치 않다고 했더니, ‘자신은 닿을 수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슬기로운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병 시대가 도래했는데, 감염내과 의사는 한참 부족한 거로 알고 있어요. 상황이 어떤가요?

"276번까지 의사 면허가 나와 있어요(웃음). 의료 현장에서는 230명 좀 넘게 활동하고 있고요. 돈벌이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감염내과 선택하면 ‘너희 집 돈 많냐?’고들 물어요(웃음)."

-감염내과 의사가 된 건 소명의식 때문인가요?

"제가 크리스천이에요. 해외 선교 나가려고 전공을 감염 쪽으로 했어요. 오지엔 열대병이 많으니까. 2004년엔 카자흐스탄에서 2년 반동안 국제협력의사로 일했어요. 의료는 제게 큰 의미에서 선교고, 필드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환자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코로나19에 관한 가장 사려 깊은 기술을 담은 책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사진=장련성 기자
-에볼라 바이러스 때도 시에라리온에 자원해서 간 거죠?

"그랬어요. 감염내과 의사는 환자를 직접 봐야 해요. 현장을 알아야죠. 그때 충격이 컸어요. 한창 나이의 아이도 청년도 2~3일 만에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걸 봤어요. 서아프리카 경제가 피폐하잖아요. 에볼라가 접촉 감염이라 안 만나면 되는데, 격리 시설이 없어 설사하고 피 흘리고 만 명이 넘게 죽었어요."

환자가 무방비 상태로 죽는 게 어떤 건지 그때 뼈저리게 겪었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 질병이 덮치니 숨도 못 쉬고 쓰러지더라고. 우리도 취약한 상황에서 전염병을 맞으면 저 소용돌이를 겪을 거라고. 준비하지 않은 국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고.

에볼라에 이어 메르스까지 처절한 현장에 깊게 개입한 경험으로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첫째, 반드시 현장을 확인할 것, 둘째 집단 지성을 발휘할 것.

"우리는 2월에 먼저 희생을 치른 대구 경북 시민들께 감사해야해요. 앞선 집단 감염을 겪었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진 것 같은 더 큰 재난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어요. 그때 긴급 시스템이 나왔고 K방역의 기틀이 잡혔죠. 안타까운 건 이후에도 계속 ‘준비해라. 1만 병상과 2만 생활치료센터 확보해달라.’ 외쳤는데, 2차 유행 때 여전히 준비가 안 돼서 휘청거렸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령된 상황의 거리 식당./사진=장련성 기자
-앞으로 2차 유행의 감염 추이는 어떻게 봅니까?

"100명 대로 숫자가 잦아드는 게 안정적 신호예요. 100명대 미만으로 떨어지면 2차 유행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잔불 정리만 하면 돼요."

-최근에는 스웨덴 집단 면역 실험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됐습니다. 복지 부담 때문에 노인 사망을 방관했다는 의혹도 사지만, 어쨌든 확진자가 줄어드는 거로 보고됐는데요.

"스웨덴은 학교는 열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강하게 했어요. 록다운을 안 하고 버텼는데 현재까지 인구 천 만 명에 6천 명이 죽었어요. 우리가 그 모델로 가면 3만 명이 죽는다는 계산이 나와요. 스웨덴은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 못 오게 해요. 우리는 감기만 걸려도 A B C 약 처방 받고 의료 서비스를 누리죠. 우리 국민께 ‘아파도 집에 있으세요' 하면 받아들일까요? 방역도 그 나라가 선택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요?

"우리는 일단 잘해야 해요. 확진자 진단도 빨리, 유행 잡는 것도 빨리. 지금 사망자 수가 300명이 넘었어요. 만약 다른 나라처럼 1만 명 사망했다면 정부는 못 버티고 탄핵 됐을지도 몰라요. 대만과 뉴질랜드가 방역 잘했다고 하는데, 거긴 섬나라인 데다 자급자족률이 높아요. 뉴질랜드는 확진자 나오면, 마을 기준으로 락다운을 해버리죠.

반면 대구 경북 때를 생각해 보세요. 집 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봉쇄령 내리고, 틀어막지 않았어요. 그러고도 힘을 합쳐 솔루션을 찾았죠. 그 나라가 감당 가능한 방역을 그 나라가 선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K방역을 수출한다, 그러면 어불성설이라고 봐요.

최근 유엔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진단(Test), 역학조사(Trace), 치료(Treatment) 부문’에서 미국, 독일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1등이에요. 그중에서도 역학조사 부문은 모든 나라가 혀를 내둘러요. GPS, 신용카드, 핸드폰 접속 기록으로 접촉자를 다 찾아내죠. 유럽도 중국도, 많은 나라가 락다운으로 갔어요. 병원, 생필품 구매 아니면 다 막았죠. 현재 우리가 겪는 2.5단계는 락다운을 생각하면 경미해요."

“확진자 숫자가 일시적으로 줄어도 지역 사회 유행이 늘어난다는 신호가 있으면 위험해요.”/사진=장련성 기자
-백신이 개발돼도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도요. 트럼프는 지금 백신 나오면 재선될 거로 확신하고, 박차를 가해요. 단계별로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속도를 내고 있죠. WHO와 CDC에서는 75%만 돼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럼 30%는 효과가 없다는 건데, 미국 확진자를 하루 4만 명으로 보면, 그 중 1만 명이 차단이 안 된다는 거죠.

다시 말해 백신 효과는 전파 차단이라기보다, 심하게 안 걸리고 고위험군의 사망률을 낮추는 정도예요. 유행 차단이 아니라 광범위 확산을 억누르는 정도죠."

-그런 정도로 코로나 종식은 요원하다?

"예전처럼 술집 가고 파티하고 공연하고, 안 돼요. 백신이 나와도 안 돼요. 백신 효과로 덜 발생하는 수준으로 이어지고, 다들 어느 정도 무뎌지면 그땐 토착화되는 거예요."

-토착화된다…

"겨울철마다 오는 바이러스처럼. 신종플루가 인플루엔자로 토착화된 것처럼요. 걸렸던 사람이 면역 생기면 유행성으로 자리 잡아요. 독감 주의보처럼 겨울마다 코로나 주의보가 발령될 테고요. 백신이 나와도 그렇게 계절성으로 토착화되는데 2~3년 걸려요. 길면 4~5년 걸리고요."

-최근엔 비말과 함께 공기 감염 얘기도 나오더군요.

"코로나가 무서운 점이 여전히 미지의 바이러스라는 거예요. 특정 증폭에 공기 감염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에요. 코로나가 더 무서운 점은 바이러스가 정쟁과 갈등을 계속 부추긴다는 거예요. 백신이 나와도 누구에게 먼저 접종할 지가 또 쟁점이 되겠죠. 노인 우선이면, 왜 노인이냐 할 테고…"

확진자가 잦아들고 있지만, 가을 겨울 인플루엔자와 겹치는 3차 유행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는 걸 인정해야 하겠군요.

"네. 최소 2년은 더 갈 거예요. 다음 달엔 괜찮겠지, 내년엔 괜찮겠지, 그러면 여러분도 버티잖아요.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우울해요. 저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희망은 버려야 할까요?

"환자가 병에 반응하는 단계가 있어요. 처음엔 화를 내죠. 그다음엔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요. 그다음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마침내 인정하고 수용하게 돼요. 전 국민이 그 단계를 겪고 있어요. 저도 달라진 삶에 적응하려고 해요. 사람이 고프면, 줌 틀어놓고 배달 앱으로 맥주 시켜 건배하며 스트레스 풉니다.

역설적이지만, 체념하면 답이 나와요. 한 달 간다면 이대로 버티잖아요. 2~3년 간다는 걸 알면, 그제야 인정하고 무언가를 하죠.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버티지 말고 바꾸라고 해요. 밀레니엄은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시작됐다고요."

체념과 수긍이 또다른 전환을 만들어낸다고 조언하는 이재갑 교수./사진=장련성 기자
-마지막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살게 된 국민과 정부에, 최전선의 감염학자로서 조언을 부탁합니다.

"먼저 정부(보건복지부와 청와대)는 유행을 최소화하면서 잘 버텨야 해요. 언제나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경제가 덜 다칩니다. 대구 경북은 모르고 당했지만, 2차 대유행은 알고 당했어요. 적시에 과감하게 단계를 올리고, 3차, 4차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병관리청과 의료진은 지치지 말아야 해요. 이제까지 방역 인력과 의료진을 갈아 넣어서 버텼습니다. 그들이 지치면 안 됩니다.

국민은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해 나가야 해요. 예전처럼 클럽 가고 주점 가고 교회 가고, 다시 돌아가면 문제가 터집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 살아야 해요. 행동반경을 줄이고 내 바운더리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버티지 말고, 삶의 방식을 바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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