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인은 쏙 빠진 '43조원 그린뉴딜' 자문단

조선비즈
  • 박성우 기자
    입력 2020.09.10 13:00

    "저희 같은 기업인들은 돈만 내라는 얘기죠. 참 공무원다운 발상이네요"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 민간 자문단 명단을 본 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대기업 임원은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42조7000억원 규모의 그린 뉴딜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간 자문단 18명을 위촉했다.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고 외부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자문단에 기업인이 2명에 불과해 경제·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인을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나머지 자문단은 교수 7명, 정부 산하기관 6명, 기타 3명 등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뉴딜을 실행하는 주체는 결국 기업인데, 기업인을 빼고 뉴딜을 논한다는 게 얼마나 효율적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9일 발표된 ‘디지털 뉴딜’ 자문단의 경우 16명 중 8명이 기업인으로 채워진 것과도 대조적이다. 디지털 뉴딜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린뉴딜은 환경부가 담당이다.

    그린 뉴딜은 산업, 에너지 등 전 분야에 걸친 저탄소 대전환을 통해 국가 경제를 부흥 시키겠다는 정책이다. ‘그린’이 환경보호, 기후변화, 온실가스 감축 등을 말한다면 ‘뉴딜’은 경제 부흥을 말한다. 환경도 경제발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린 뉴딜의 세부 사업을 살펴보면 정보통신기술(ICT), 자동차, 태양광·풍력, 전력, 스타트업, 벤처캐피탈 등의 분야에서 연결성이 많다. 그린 뉴딜에서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은 13조1000억원을 사용하는 ‘전기차·수소차 그린 모빌리티 보급 확대’로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한다. 하지만 자문단에는 완성차나 부품업체 출신이나 수소·모빌리티 전문가가 없다. 공공건물 그린리모델링에 2300여억원을 투입하지만 건설사·자재 전문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태양광·풍력과 녹색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장비·발전사 기업인이나 스타트업·벤처캐피탈 전문가 조차 없었다.

    자문위원단의 선발 기준도 의아하다. 기업인 2명은 SK, SK이노베이션에서 각각 1명으로 모두 SK 그룹으로 채워졌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은 SK에서 지난 20여년 간 정부 부처의 대관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다. SK그룹이 통신에서 배터리, 소재, 바이오, 건설까지 뉴딜과 관련있는 여러 분야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SK만 편애한다’는 공정성 시비가 붙을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분야 전문가를 급히 모으면서 발생한 문제 같다. 일부는 고사(固辭)했다. 각 분야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위원들을 선정했고, SK만 자문단에 넣은 특별한 배경은 없다"고 했다.

    자문단 구성만 봐도 그린 뉴딜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국가 대전환을 통해 온실가스도 잡고, 경제 성장도 이루겠다는 것이 뉴딜의 목표지만, 자문단에는 ‘그린’만 있을 뿐 ‘뉴딜’은 보이지 않는다.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그린 뉴딜을 추진하는 것은 경제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42조7000억원이 ‘국민의 혈세’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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