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칼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정해진 미래와 연대하는 법 '테넷'

입력 2020.09.09 07:00 | 수정 2020.09.10 07:44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30대, 기운이 넘쳐 마냥 달리던 시절엔,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 밤마다 거리를 쏘다니며 뭉텅뭉텅 시간을 흘려보냈다. 새해가 되면 잠깐 ‘미래의 기억력’이 살아난 채무자처럼 가슴 졸이다, ‘작심삼일'의 밑천을 드러내곤 했다. 중년에 이르고보니, 물리적 시간은 방아쇠를 당긴 총알처럼 무서운 직진력으로 나아가지만, 내 머릿속의 시간은 돌려 감은 비디오테이프처럼, 유년과 청년과 중년과 노년의 시간이 정지된 화면으로 시시각각 ‘플레이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온 세상이 꺼진 것 같은 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이러스는 시간의 흐름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엉클어놓았다. 위기의 인간들은 집안에 억류된 채,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과거의 미래'를 목격하며 그 기시감에 뒷걸음질쳤다. 현실의 텅 빈 거리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영화처럼, 시간이 멈춰있었다. 바이러스가 훑고 간 구미 유럽의 황량한 도시 풍경은 재난 영화보다 리얼했고, 사람들은 피아(彼我)를 식별할 수 있는 좀비 영화에 열광했다.

그순간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 디지털 시티의 시계는 ‘빨리 감기' 하듯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며, 2025년의 미래를 눈앞에 당겨 놓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타임머신 오작동하듯 동시에 한 공간에 부딪혔다. 물리적 세계가 숨죽이는 동안, 바이러스 항체가 튼튼한 디지털시계가 아날로그 시계를 추월한 것이다. 나는 얼음판을 공회전하다 5년의 ‘순간이동’에 폭삭 늙어버린 노인처럼, 현기증을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야심작, 영화 ‘테넷'의 한 장면.
시간 여행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테넷'을 보았다. ‘테넷'은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라 시간이 주인공인 영화다. 감독은 시간이라는 스토리텔러에 스파이라는 흥미진진한 옷을 입히고, 그 순행과 역행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스크린이라는 공간 안에 흥미롭게 ‘플레이팅’했다.

‘엔트로피(무질서의 척도, 복잡성은 점점 늘어나고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물리 법칙)’의 방향을 바꾸면, 시간이 휘면서 과거와 미래가 한 공간에서 만날 것이라는 가설은 이 영화의 핵심 디자인이다. ‘인버전'이라는 특수 장치를 통해 ‘구부러진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주인공은 물론 자동차도 총알도 폭파된 건물도 빠른 속도로 거꾸로 움직이는 식이다.

그러나 감독의 편집증적인 집요함(세트가 아닌 진짜 비행기를 사들여 충돌 폭파하는 등)으로 구현된 다차원의 시간보다 더 끌리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려는 인간의 의지다. 이미 벌어진 사고와 재난을 돌이켜, 더 나은 상태로 바로잡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 채워지고, 이미 날아간 총알이 총구로 되돌아가는 일이, 영화처럼 가능할까?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바로잡는 상상은,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후진 기어를 넣고, 태어난 아기를 엄마 뱃속으로 집어넣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테넷'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닐(로버트 패틴슨)’이라는 인물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대사가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정해진 미래'는 영화 ‘콘택트'와 ‘인터스텔라'에서도 경험한 시간이다. 살만한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난 아빠와 병들어가는 지구에 남은 딸의 어긋난 시간을 다룬 ‘인터스텔라’에서 부성애 강한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멸망하는 지구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블랙홀로 돌진하고, 기적처럼 5차원의 공간에 떨어져 딸 머피에게 모스 부호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났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외계인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 ‘콘택트’는 어떤가. 주인공 언어학자는 다차원의 시간을 동시에 인지하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워, 자신의 미래를 보고 만다. 다가오는 연인은 떠나가고, 태어날 아이는 병으로 일찍 죽으리라는 것을. 미래를 알고 현재를 이어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불행을 보고도 현재의 사랑을 선택하는 것. 한 발 내디뎌 나아가는 것.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존이고 자유 의지며, 열린 운명이라는 것을 ‘콘택트'는 보여준다.

5차원의 공간에 떨어진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 아빠는 지구를 떠났지만, 동시에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인터스텔라'의 딸 머피.
어쩌면 인간이 시간을 아는 능력은, 우리 짐작보다 더 크고 깊은 지도 모른다. ‘야망이 앞서면 일 그르치니 늘 능력과 체력의 10%는 남겨두라’던 93세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이나, ‘죽음을 기다리며 탄생의 신비를 배웠노라'던 이어령 선생의 말은 시간의 단면이 아닌 전체를 본 자의 고백이다. 시간의 시작부터 끝을 바라본 노라노 선생, 시간의 끝에서 시작을 목격한 이어령 선생이야말로 대담한 시간의 선지자가 아닌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여러 개의 시간대가 충돌하는 바이러스의 시간을 살다 보니, 평범한 우리도 시간의 결에 더욱 민감해졌다. 우리는 그동안 야생의 영역을 침범했고, 온실가스를 무절제하게 배출했고, 밀실에서 광장에서 춤추고 소리치고 기도하고 노래했고, 차별과 혐오를 일삼았다.

그리하여 역병부터 태풍까지, 지구라는 행성의 격렬한 몸부림을 더 큰 인과관계 속에서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더 보이지 않던 생명의 사각지대가 보이고, 더 멀리 트인 시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복안’의 시야도 생기고 있다.

‘테넷'에서 마침내 전체 시간을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은 말한다.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됐지."

PS 예지력은 선지자만이 갖는 것이 아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고 말한 사람은 올해 1월 인터뷰했던 데이터과학자 송길영이었다. 그 말이 귓가에 선명하여 전한다.

"데이터를 보면 알죠.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매일 똑같아 보여도 아이들은 어느새 키가 커서 훌쩍이잖아요.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 보여도 5년, 10년 단위로 보면 확 바뀌어 있어요. 데이터는 고령화, AI, 하이퍼커넥트를 가리키고 있어요. 이걸 알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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