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종 집값도 못 잡은 부동산 정책, 혹시 안 잡은 건 아니시죠?

조선비즈
  • 허지윤 기자
    입력 2020.09.07 11:30

    세종시에 사는 직장인 전 모(36)씨는 10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전 씨는 새 전셋집을 찾으면서 쌓이는 화를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조금만 보태면 살 수 있었던 집이 이제는 영영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주택정책을 하는 부처가 있는 세종시 집값도 이렇게 올려놓는 정부가 무슨 전국 집값을 잡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아파트값은 8월까지 누적 34.11% 오르며 전국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정부 통계인 한국감정원의 조사 결과다. 전셋값도 8월에만 7.11% 오르는 등 총 24.3% 상승했다. 주택뿐 아니라 토지 시장도 이상 과열이다. 최근 세종시의 토지 거래 현황을 취재해보니 개발이 어려운 땅까지 수백 필지로 잘게 쪼개 파는 ‘지분거래’ 비중이 올해만 64.6%에 달했다. 누가 봐도 모든 게 비정상이다.

    세종시의 부동산시장은 왜 이토록 달아올랐을까. 우선 ‘수요’와 ‘공급’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세종은 전국 17개시도 가운데 유일한 미분양주택 청정 지역이다. 남아도는 집이 하나도 없고 주택 수요는 많다는 의미다. 세종시의 주택수급지표만 봐도 이 지역 집값 상승은 예견됐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부상한 ‘천도론’은 불 속에 기름을 퍼붓는 것이었다. 여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완성을 목표로 내걸면서 논의를 진행하자 투기수요와 실수요 구분할 것 없이 들썩였다. 무주택자도 불안감에 추격 매수(패닉 바잉)에 나섰고, 천도론 호재를 앞세워 개발이 어려운 야산의 땅까지 줄줄이 거래됐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서울의 ‘미친 집값’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 참 많이 비슷하다. 충분치 않은 공급량과 정부와 정치권이 시장에 보낸 잘못된 신호, 그리고 불안이 매수심리를 자극해 집값을 올린 것이 판박이다.

    고위 공무원들이 서울 주택과 함께 세종시 일대 부동산을 보유한 것도 마찬가지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세종시 특별분양과 일반분양을 통해 아파트나 분양권을 소유한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는 234명이었다. 그러니 시중에서는 정부가 집값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라는 비아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얼마 전 세종시 부동산업자에게 ‘세종시 집값이 단기에 많이 올라 부담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정부가 밀어주는 지역인데요. 앞으로 더 올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공급처럼 집값이 내리는 데 가장 필요한 일은 하지 않고 규제의 칼날만 휘두르며 변죽만 울리고 있으니 나오는 말일 게다. 정부가 스스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정말 모르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설마. 집값 안 잡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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