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

조선비즈
  • 전재호 경제부장
    입력 2020.09.05 04:00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이 말은 영국의 정치가인 레너드 코트니(Leonard H. Courtney)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레너드 코트니는 1832년에 태어났는데, 그때도 이런 말이 있었던 것을 보면 집권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통계를 활용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수년전 소득주도성장부터 최근에는 부동산까지 통계를 입맛에 맞게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청와대는 집권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2018년 5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는 청와대의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왔다. 얼마 후 청와대는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은 교체 직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주택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값이 약 52% 올랐다고 발표하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값은 14.2% 올랐다"고 반박했다. 경실련은 14.2%의 근거가 무엇인지 10여 차례 질의했지만, 국토부는 통계법을 내세우며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이 많이 사는 관악·강북·은평·노원·금천구 아파트 10개를 무작위로 골라 실거래가를 직접 살펴봤다. 10개의 아파트 단지 중 최근 거래된 가격이 2017년(5월 이후)에 거래된 가격보다 낮은 곳은 은평구 역촌동의 A 아파트 전용면적 13.68㎡짜리 하나뿐이었다. 이 아파트는 2017년 10월 1억3500만원에, 올 6월 1억3300만원에 거래됐다. 나머지 9개 아파트 단지는 평균 50.5% 올랐다.

    아파트 가격동향을 산정하는 다른 기관의 수치를 봐도 국토부 해명보다 경실련 발표 내용이 더 신뢰가 간다. KB국민은행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17년 5월 84.1(2019년 1월=100 기준)에서 올 8월 110.1로 30.9% 올랐다. 한국감정원의 서울 공동주택 매매 실거래 가격지수(2006년 1월 = 100 기준)도 이 기간 93.8에서 134.6으로 43.5% 상승했다. 도대체 국토부는 어떤 자료를 근거로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14.2% 올랐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통계는 강력한 설득 무기다. 소득주도성장이 얼마나 좋은 정책인지 입으로 백날 얘기하는 것보다 ‘1년 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통계를 들이미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다. 집권세력이 입맛대로 통계가 안 나오면 통계 자체를 바꾸고 싶어하는 이유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보여주는 통계는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어떤 지역에 몇 년째 주택 공급이 없는데,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집값이 오를 수 있으니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식이다. 통계 자체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통계가 안 좋게 나오면 왜 안 좋은지를 연구하고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이 정부는 통계 자체를 바꾸려고 한다. 부동산 대책을 20번 넘게 발표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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