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공화국 만든 세쿼이아, 쿠팡 로켓배송 만든 소뱅

입력 2020.09.07 06:10

[이코노미조선]
성공 신화 곁엔 언제나 VC

모든 창업가가 성공의 단맛을 맛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창업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고 이후 기업 유지는 전쟁보다 잔인하다. 가까스로 시장에 자리 잡아도 경쟁자의 도전은 끊이지 않는다. 버티는 자보다 쓰러지는 자가 훨씬 많은 곳이 창업 시장이다. 그런데도 창업가는 계속 등장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과 창의성을 겸비한 채. 8개월 넘게 우리를 괴롭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 경제와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 혁신 기업 탄생을 돕는 벤처캐피털(VC)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코노미조선’이 VC 생태계를 주제로 커버 스토리를 기획한 이유다. [편집자 주]

쿠팡 뚝심 뒤엔 혁신 후원자
VC 투자 덕에 견디는 여행 기억
국산 소형 발사체 도전도 지원

국내 여행 플랫폼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은 최근 432억원(시리즈 D)을 투자받았다. 여전히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피해 업종이 여행업이고, 수많은 여행 기업이 바짝 마른 돈줄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소식이다. 기존 투자사인 알토스벤처스·IMM인베스트먼트·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뿐 아니라 신규 투자사인 산업은행·액시엄캐피털(싱가포르)·파텍파트너스(프랑스)·테크톤벤처스(미국) 등도 마이리얼트립에 힘을 보탰다.

마이리얼트립은 코로나19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자 상품 구성의 98%를 차지하던 해외여행 상품을 순식간에 국내 여행 위주로 바꿨다. 한인 가이드가 해외에서 생중계하는 ‘랜선투어’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발 빠른 대처 덕에 지난 4월 40여 건으로 곤두박질쳤던 마이리얼트립의 하루 예약 건수는 3000건 수준까지 회복했다. 투자사들은 400억원 이상의 목돈 지원으로 이 회사 경영진의 노련한 상황 판단에 신뢰를 표시했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점에 대해 (투자사들이) 공감했다고 본다"며 "역량은 정성적인 부분이라 파악하기 어려운데,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주주들이기 때문에 수월하게 판단해줬다"라고 했다. 이 투자를 주도한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여행은 돌아온다. 그때 준비된 팀이 시장을 잡을 것이다. 계속 (뭔가를) 더 보여주는 마리트(마이리얼트립)와 또 한번 같이 가게 돼 감사하다"라고 적었다.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꿈꾸는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털(VC)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파트너다. 특히 커다란 대외 악재로 모두가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는 VC의 그늘이 더 시원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도 한때는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과한 의욕에 사로잡힌 청년이었다. 그 청년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이고, 함께 난관을 헤쳐나간 존재는 늘 VC였다.

혁신 기업과 그 뒤에서 모험 자본을 공급하는 VC의 공생(共生) 사례는 이 밖에 또 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유통 회사를 꼽으라면 많은 이가 쿠팡을 지목할 것이다. 안 그래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온라인 쇼핑 시장은 코로나19가 만든 언택트(비대면)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더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인다. 쿠팡은 이 변화의 중심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쿠팡의 2019년 매출액은 7조2000억원. 이마트(19조629억원)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두 회사의 규모와 역사 등을 염두에 두고 보면 쿠팡의 거침없는 추격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롯데마트의 연 매출(6조3310억원)은 이미 넘어섰다.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한 건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적자의 늪에서도 ‘로켓배송’ 같은 혁신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동력은 쿠팡의 장기 비전을 믿고 지지해준 투자사였다.

로켓배송 서비스를 출시한 2014년, 쿠팡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VC 세쿼이아캐피털과 블랙록 등으로부터 4억달러(약 4750억원)를 투자받았다. 이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도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1870억원)를 지원했다. 해외 큰손들의 통 큰 투자는 물류센터, 배송 인력 등 로켓배송에 꼭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쓰였다. 실제 로켓처럼 빠른 배송 속도에 소비자는 열광했다. 위기감을 느낀 유통 업계는 하나둘씩 쿠팡을 쫓아 배송 경쟁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나날이 쌓이는 쿠팡의 적자 규모였다. 대형 유통사들은 소비자가 간절히 원하니 쿠팡과 같은 로켓배송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뒤에서는 ‘곧 망할 회사’라며 쿠팡을 조롱했다.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던 소비자조차 이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뱅크는 오히려 쿠팡에 20억달러(약 2조3740억원)를 추가 투자했다. 투자사의 견고한 믿음에 보답하듯 쿠팡은 2018년 1조1279억원에 이르던 영업손실 규모를 1년 만에 7205억원으로 줄였다.

VC 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의 사업 모델과 투자사의 회수 시나리오가 성공을 논할 단계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기업과 VC가 힘을 합쳐 전에 없던 혁신을 시도했고 그 덕에 소비자 편의가 크게 개선됐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가 큰 협업 사례"라고 했다.

2018년 11월 15일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김범석 쿠팡 대표가 일본 도쿄에 있는 소프트뱅크 그룹 본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쿠팡
◇‘검은사막’ 베팅해 20배 이상 회수

쿠팡은 서비스의 혁신성과는 무관하게 아직 투자사에 ‘수익 회수’의 기쁨을 안기지 못했지만, 혁신은 물론 VC에 돈다발까지 안겨준 기업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는 구글이 그런 회사다. 구글을 공동 창업하기 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사업 경력이 전혀 없는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 학생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은 뜨거웠으나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멋진 검색 엔진을 완성하면 돈은 알아서 들어올 것이라고 믿을 뿐이었다.

서툰 두 천재가 사업가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도와준 건 구글 창업 다음 해인 1999년 2500만달러(약 297억원)를 투자한 세쿼이아캐피털과 클라이너 퍼킨스 등의 VC였다. 이들 베테랑 VC는 브린과 페이지를 중심으로 한 구글의 검색 기술력이 돈벌이로 이어질 방법을 고민하고 조언했다. 2004년 뉴욕 증시에 상장할 때 구글의 시가총액은 230억달러(약 27조3010억원)였다. 현재는 43배 이상 불어나 1조달러(약 1187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VC로서는 ‘잭팟’을 터뜨린 셈이다.

국내에서는 LB인베스트먼트의 펄어비스 투자를 종종 ‘윈윈’ 사례로 언급한다. 펄어비스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사막’을 개발한 게임사다. LB인베스트먼트는 2014년 이 회사에 50억원을 투자해 20배가 넘는 이익을 얻었다. 펄어비스는 2017년 9월 14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10만3000원이었는데 현재 주가는 그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순조로운 투자와 성장 흐름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펄어비스 투자 안건에 대해 논의하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당시 검은사막은 PC 온라인 게임이었는데, 모바일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던 시기에 PC 게임에 투자하는 게 맞느냐는 내부 반발이 있었다. 심사역끼리도 의견 불일치가 심했다. 온라인 게임 특성과 펄어비스 개발 팀의 역량,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평가 등을 다각도로 조사해야만 했는데, 회사 경영진과도 오랜 시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며 지향점을 공유했다. 마침내 ‘투자 진행’을 결정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VC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스타트업에 베팅하는 모험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이 존재 이유를 떠올린다면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젊은 도전에 힘을 실어준 투자 사례도 소개할 만하다. 카이스트(KAIST) 재학생인 신동윤(23) 대표가 2016년 설립한 페리지항공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상업용 발사체 개발을 시도 중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실제 로켓 발사에 나서는 민간 기업은 페리지가 처음이다. 어린 창업가의 패기를 인정한 삼성벤처투자와 LB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투자사로 나섰다.

◇plus point

VC보다 페이스북 먼저 알아본 ‘개인’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의 시작을 도운 VC 이야기는 익히 알려졌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VC에 앞서 개인이 먼저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의 출발을 도운 주인공은 초기 스타트업에 돈을 대는 개인 투자자인 ‘엔젤투자자’였다.

피터 틸은 1998년 창업한 콘피니티라는 회사를 2000년 엑스닷컴과 합병시켰다. 엑스닷컴 창업자는 현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 콘피니티와 엑스닷컴은 합쳐져 페이팔로 회사명을 바꿨고,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1조8000억원에 팔렸다. 페이팔 매각으로 큰돈을 번 틸은 2004년 8월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 링크드인을 세운 리드 호프만의 소개로 마크 저커버그를 만나 페이스북에 6억원을 투자하고 주식 10.2%를 확보했다.

틸이 저커버그에게 돈을 주면서 ‘개판 만들지 마’라고 잔소리한 사실은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일화다. 저커버그는 틸이 건넨 돈으로 초반 사업을 다졌고, 페이스북을 시가 총액 7600억달러(약 902조원) 규모의 회사로 만들었다. 개판 만들지 말라는 조언을 지킨 것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창업자인 앤디 벡톨샤임은 구글의 엔젤투자자다. 벡톨샤임은 1998년 8월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1995년 그라나이트시스템스를 함께 세운 바 있는 데이비드 체리턴의 요청으로 체리턴 집에 들렀다. 그곳에서 체리턴은 대학원생 두 명을 소개했고 벡톨샤임은 현관에 서서 학생들이 만든 데모를 봤다.

당시 바쁜 업무로 오랜 시간 머물 수 없었던 벡톨샤임은 학생들에게 "설명을 일일이 듣는 대신 수표를 써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1억2000만원짜리 수표를 주고 자리를 떴다. 체리턴도 같은 금액을 투자했다. 두 대학원생은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다. 현 구글 공화국을 만든 주역은 바쁘지만 화끈했던 엔젤투자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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