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준비 없는 전기차·수소차 시대

입력 2020.08.06 06:00



2020년 자동차 산업이 맞이한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전기차, 수소차 등 전동화(電動化) 차량 시장의 개화(開花)다. 기업, 자본시장, 정부 할 것 없이 모두 전기차와 수소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다소 기묘한 점은 전기차와 수소차를 단순히 많이 만들고, 보급하자는 이야기만 있다는 것이다. 전동화 차량 시대에 걸맞는 유무형의 인프라를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 전통적인 내연기관 산업의 위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전동화 차량 생산·판매에만 열을 올리면서 정작 ‘전동화 차량이 주류가 된 교통 시스템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게 자동차 정비다. 전기차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데 정비 시스템은 사실상 ‘업체 자율’이다. 또 전기차 안전 기준이나 차량 화재 발생에 대한 대처 방식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서 전기차는 10만8000대(이륜차 1만7000대 포함), 수소차는 5000대가 보급(신규등록 합산 기준)됐다. 올해에는 전기차 8만4000대, 수소차 1만대에 보조금이 지급된다. 사고 등으로 인한 폐차가 없다고 가정하면 올해 말 전기차 19만2000대, 수소차 1만5000대 등 20만7000대의 전동화 차량이 운행되는 셈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113만대, 수소차 20만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다.

그런데 전기차에 대한 정비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지에 대해서 정부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전기차는 400~800V(볼트)의 고전압이 흐르는 기기인데다 모터, 인버터, 배터리, 충전기 등 전기 관련 장치들을 다뤄야한다. 기존 내연기관차와 요구되는 정비 기술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의 친환경차 도입 계획은 보급 확대, 산업 육성만 강조한다.

화재 등 사고 대응에 대한 지침도 없다. 전기차도 뚜렷한 이유 없이 자연발화되는 차량이 속속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터리 등 화학물질이 담겨 있어 화재 진압 방식도 일반 차량과 다르다.

정비 등 기존 내연기관의 유지보수 산업이 무너지면서 발생할 실업 등의 문제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전기차 보급이 일찍부터 이뤄진 제주도의 경우 2014년 690곳이었던 자동차 정비업체가 2018년 530곳으로 22.7% 줄었다. 2030년이 되면 제주도의 정비업체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만간 ‘육지’의 사람들이 겪게 될 미래다.

일자리 문제도 대책이 없다. 전동화 차량이 늘어나면 지금의 완성차와 부품업체 일자리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엔진과 구동계 부품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완성차 회사들의 경우에도 엔진 공장 일감이 줄면서 엔진 조립 인력을 전환배치하거나 감원해야한다. 기존 차량 대비 조립도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당장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에 짓고 있는 전기차 생산 시설의 경우 기존 차량 생산시설 대비 투입 인력이 대폭 줄어든다. 현대차 고용안정위원회가 향후 자동차 제조 인력이 20~40% 줄 것이라고 본 이유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조선일보DB
자동차 업체들은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 상당수가 일감을 잃고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전동화 차량으로 완전한 이행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등 다양한 구동계에 맞춰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원가 부담이 늘어난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경영자 A씨는 "부품업체가 R&D, 생산, 물류 등에서 감당해야 할 비용은 늘고 거꾸로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동화차량으로 이행하면서 자동차에 탑재되는 센서나 전장 장비들의 비중이 늘어나지만 국내 부품업계에서 대응 능력을 갖춘 곳은 별로 없다. 또 다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 센서와 전장 분야"라고 말한다. "센서 등 IT 부품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포지셔닝되고, 기존 자동차 부품은 부가가치가 줄면 국내 부품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자동차 산업은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통, 금융, 정비 등 다양한 분야가 얽혀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생산 분야에서만 36만3000명, 관련 산업에서는 154만명이 일한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시대가 열리면 이들의 일자리도 큰 변화를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적응’은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나 근로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일까. 전동화 차량이 무언가 장밋빛 미래를 열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적지 않게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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