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과천·상암의 국회의원, 시장에 일반 주민까지 “왜 우리가 희생하나”

조선비즈
  • 김민정 기자
    입력 2020.08.04 15:41 | 수정 2020.08.04 16:48

    "강남 집값 잡겠다더니 등 터진 건 결국 강남이 아니고 우리다."
    "지역 주민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주기로 한 부지에 아파트 세우는 게 무슨 해법이냐."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이 발표된 이후 해당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인프라 부족, 교통 체증 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총 13만2000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4일 밝혔다.

    정부는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해 3만30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서울 노원의 태릉골프장에 1만가구, 용산의 캠프킴 부지에 3100가구, 정부과천청사 일대에 4000가구, 한국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2000가구), 상암 자동차검사소(400가구) 등 공공기관 유휴 부지 17곳에 집을 지어 9400가구를 공급한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의 전경. /오종찬 기자
    정부 정책이 발표되자 과천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지식정보타운에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정부청사 임대주택까지 과천에 임대주택만 수만 가구가 들어온다",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인데 주택만 과잉공급되고 있다" 등의 푸념 섞인 반응이 나왔다.

    과천은 3기 신도시 발표와 맞물려 발표된 과천지구와 함께 주암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지구, 과천지식정보타운 등 2만1000여 가구를 지을 사업이 진행 중인데 이번에 또 과천청사 앞 유휴부지가 주택공급 부지로 채택됐다.

    과천 주민인 35세 주부 김모씨는 "주위에 제대로 된 백화점, 마트가 없다. 한 번 장을 보려면 양재동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인프라 구축은 안 해주고 집만 짓겠다고 하니 황당하다. 더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세금을 내는 것인데, 여긴 집만 지어 넣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과천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인프라와 교통 등 도시개발 측면에서 검토하지 않고 무작정 유휴부지라고 끼워 넣은 것 같다. 이미 지식정보타운이 들어서면 이 근처 교육 과밀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인데 이런 것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은 없이 아파트를 넣겠다는 방침만 나왔다"고 했다.

    과천지역 기관·사회단체 회장으로 구성된 ‘과천회’ 관계자는 "시민들이 과천 발전을 위해 청사 부지를 활용하겠다고 할 때는 청사 부지여서 안 된다고 막더니 서울 시민을 위한 주택 공급처로 삼으려 한다"면서 "과천이 서울 집값을 안정화하기 위한 도시인가"라고 말했다.

    과천시도 반발에 나섰다. 과천시는 김종천 시장 명의의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수도권 공급계획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시장은 "과천청사 이전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발전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과천을 주택공급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서 "무리한 부동산 정책이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태릉골프장과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랜드마크 용지 등에서는 앞서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후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는 중이다. 주민들은 교통난 가중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훼손, 임대 아파트 공급에 따른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주택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노원구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공급이 노원에 몰린 데다 상당수가 임대 아파트로 공급될 것으로 보이면서 집값이 더 오르지 않고 되레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상암동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이미 교육과 교통이 포화인 상태에서 기존 주민은 물론 새로 들어오는 주민들의 삶의 질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암은 정부가 상암 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뿐만 아니라 서부면허시험장 부지(3500가구), 상암 자동차 검사소(400가구), 상암 견인차량보관소(300가구) 등까지 포함해 총 620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하자 반발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마포구청장도 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주택 공급이) 발표되었다. 지금 상암동 주민들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상암동은 이미 임대비율이 47%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상암DMC에 5000가구 공급 추진을 적극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5000명 가까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열거나 하늘공원 축제를 열면 수많은 차들로 교통이 혼잡한데 임대주택까지 들이려 한다"며 "랜드마크 부지 주변에는 제대로 된 상업 시설 하나 없다"고 글을 작성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유휴부지를 확보하고 공공임대를 짓고, 고밀개발을 추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상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주택공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거주 환경과 도시 경쟁력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양적인 증가가 질적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분별한 도심 고밀도개발의 추진이 초래할 수 있는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교통문제 등으로 지역 주민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택 숫자는 공표됐지만, 30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15만가구인지, 12평짜리 청년주택을 기준으로 15만가구인지 불명확해 실질적인 효과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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