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우려해 투자 줄이다 망한다"… 정몽규 향한 이동걸의 경고

조선비즈
  • 이종현 기자
    입력 2020.08.04 10:24

    美 유통업 이끌었던 몽고메리 워드의 쇠락史 언급
    2차세계대전 후 불황 우려해 투자 줄였다가 쇠퇴
    두 차례 직접 만났지만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한 듯

    지난 3일 오후 산업은행 온라인 기자간담회 말미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은행은 HDC현대산업개발(294870)(현산)이 요구한 아시아나항공(020560)재실사를 거부했다. 현산의 요구가 인수를 위한 것이 아닌 발을 빼기 위한 명분쌓기로 판단한 것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조선DB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에 이어 마이크 앞에 선 이 회장은 갑자기 미국 기업사(史)를 꺼내들었다. 그는 미국 유통기업인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와 시어스(Sears)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요즘 들어 과거의 케이스가 많이 떠오른다"며 "1945년 2차세계대전 직후에 두 회사가 어떤 판단을 내렸길래 한 회사는 쇠락의 길을 걷고 한 회사는 반 세기 동안 미국 경제를 호령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언급한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는 20세기 미국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몽고메리 워드는 20세기 전반에, 시어스는 20세기 후반에 미국 리테일 분야를 이끈 대표적인 기업이자 백화점 브랜드다.

    두 회사는 2차세계대전 이후 경영 판단이 180도 달랐다. 몽고메리 워드는 2차세계대전 이후 불황이 올 것으로 전망하고 투자를 줄였다. 새로운 매장을 열지 않았고 기존 매장의 리모델링도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아낀 돈은 은행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부실에 대비했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대규모 실업자로 전락하면 불경기가 올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에 시어스는 2차세계대전 이후 오히려 투자를 크게 늘렸다. 전후 미국 경제의 팽창을 예상했고, 미국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봤다. 몽고메리 워드가 은행에 돈을 쌓아놓기만 할 때 시어스는 오히려 대규모 대출을 받아서 신규 매장을 늘렸다. 두 회사는 1945년 매출이 10억달러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매출 차이는 3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당연히 앞선 쪽은 시어스였다. 몽고메리 워드는 그 이후에도 명맥은 유지했지만 과거의 명성은 사라진 뒤였다. 몽고메리 워드는 지난 2000년 12월 파산을 발표했다.

    이 회장이 몽고메리 워드의 일화를 꺼낸 건 현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주저하는 현산의 모습이 2차세계대전 이후 몽고메리 워드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정몽규(가운대) 현대산업개발 회장. /뉴시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이 정몽규 현산 회장을 직접 겨냥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의 서로 다른 판단은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몽고메리 워드는 시웰 애버리(Sewell Avery) 회장이 직접 투자 중단을 결정했고, 시어스의 투자 확장은 몽고메리 워드 출신인 로버트 워드 시어스 회장의 결정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게 결국 투자에 대한 CEO의 판단이었다"며 "이 회장이 하고 싶었던 말도 결국 정몽규 회장이 시웰 애버리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가 성장할 타이밍을 놓치는 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과 관련해 정 회장을 두 차례나 직접 만났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을 무사히 인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회장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현산은 실무진 협상 과정에서 대면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서면으로만 입장을 전하는 등 무성의한 협상으로 일관했다.

    이 회장이 '망한 기업'까지 언급하며 현산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데에는 정 회장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는 게 산업은행 안팎의 예상이다. 이 회장은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여러가지 협의나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현산이) 해온 과정을 보면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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