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증권사 보고서도 '깡'…애널리스트도 유행 따라야 산다

조선비즈
  • 이다비 기자
    입력 2020.08.01 06:00

    "제목 장사라도 해서 보게 하자"…경쟁 속 연구원들의 애환

    ‘1일 1깡 말고, 1일 1카카오.’ 올여름 증권사 리포트(보고서)에도 ‘깡’ 바람이 불었다. 3년 전 가수 비(본명 정지훈)가 발표한 노래 ‘깡’이 유튜브를 통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자 증권사 리포트들도 ‘깡’ 패러디에 동참했다. 증권가에서는 "리포트 제목을 보면 당시 유행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16일 조태나·강석오 흥국증권 연구원(애널리스트)이 발간한 카카오(035720)종목 리포트 제목은 ‘1일 1깡 말고, 1일 1카카오’였다. 리포트 제목에 들어간 ‘1일 1깡’은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매일 하루에 한 번은 봐야 한다’는 뜻의 인터넷 유행어다. 깡의 과장된 안무와 어울리지 않는 가사 등을 공유하는 유튜브 사용자들이 유행시킨 말이다. 유행어를 차용해 카카오 주식 매수 투자의견을 강조한 셈이다.

    조선DB
    이 리포트 외에도 많은 리포트가 ‘깡드롬(깡+신드롬)’에 합류했다. 지난 5월 27일 나온 이재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의 한화시스템 종목 리포트 ‘화려한 수주가 나를 감싸네’는 깡 노래 가사 중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밖에도 장문준·장승우 KB증권 연구원의 부동산 업종 리포트 ‘화려한 전망이 감싸지 않아도 매력적(6월 1일)’, 손세훈·백준기 NH투자증권 연구원의 스몰캡 이슈 리포트 ‘화려한 데이터가 나를 감싸네(6월 2일)’, 어규진 DB투자증권 연구원의 SK하이닉스(000660)종목 리포트 ‘화려한 조명이 나도 감싸네(6월 9일)’와 삼성전자(005930)종목 리포트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6월 9일)’가 있다. 총 6개 리포트가 비 패러디에서 제목 아이디어를 얻어왔다.

    딱딱할 것만 같던 증권사 리포트에서 ‘튀는 보고서 만들기’ 일환으로 패러디 제목이 쏟아지는 건 이제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증권사 리포트에서 파격적인 제목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시대상과 유행까지 엿볼 수 있는 장(場)이 됐다.

    여기에도 속사정은 있다. 증권사 리포트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자 조금이라도 독자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증권사 연구원들이 존재감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최신 트렌드와 맞닿은 패러디 제목 짓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열심히 쓴 리포트인데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힘 빠지는 일"이라며 "제목 장사라도 해 투자자들 뇌리에 남고 싶은 연구원 마음이라고 봐달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도 "패러디 제목을 싫어하는 상사도 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름과 리포트를 알리기 위해선 이렇게라도 튀어야 한다"며 "대부분은 재밌어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에는 배우 김응수씨가 2006년 영화 ‘타짜’에서 조직폭력배 곽철용 역할을 하며 뱉은 대사인 ‘묻고 더블로 가!’가 증권사 리포트 제목으로 도배됐다. 지난해 하반기에 곽철용 패러디가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유행어가 된 것과 맞물려 매수 의견을 강조하기에 적절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곽철용 이전엔 비트코인 광풍이 있었다. 2017년에는 비트코인 열풍으로 인해 ‘가즈아!’가 증권사 리포트에 등장했다. ‘가즈아’는 비트코인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것을 보고 투자자들이 ‘더 올랐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담아 외치던 ‘가자’를 변형한 말이다. 당시 현대차투자증권(현 현대차증권)에서 나온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종목 리포트 ‘전사업부 실적개선, 가즈아!’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인해 리포트에 ‘~의 후예’가 많이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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