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창작으로 하루 1억매출... 래디쉬는 '소설계의 HBO'“

조선비즈
  • 박현익 기자
    입력 2020.07.30 06:00 | 수정 2020.07.30 14:18

    [인터뷰] 영문 웹소설 플랫폼으로 700억 투자받은 '래디쉬' 이승윤 대표
    정치 꿈꿨다 창업가로… ‘미디어’ 이어 ‘소설’ 플랫폼 창업
    "망해가는 소설 시장에서 기회 포착… 경쟁 없는게 좋다"
    "다음 연재 기다리다 지친다" 美 작가들 집단창작 1일 1연재
    최근 1년 사이 하루 매출 25배 성장… 90%가 자체 제작 콘텐츠

    2012년 영국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에 동아시아인이 처음으로 당선 돼 크게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 있다. 한국인 유학생 이승윤(30·당시 22세·사진)씨다. 200년 역사의 옥스퍼드 유니언은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 학생 자치기구로 세계 지도자들의 산실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토니 블레어 등 전 영국 총리들을 비롯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아비싯 전 태국 총리 등이 재학시절 유니언 회원으로 활동했다.

    정치·철학·경제학부를 전공한 이씨는 한때 정치인의 꿈도 꿨지만 학생회를 운영하며 겪었던 지저분한 일들 때문에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진로를 틀어 2014년 영국에서 미디어 스타트업 ‘바이라인’을 창업했다. 크라우딩 펀딩(다수의 개인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집) 방식으로 수요자를 모아 유료 기사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다. 이씨는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왜 하필 사양산업인 미디어를 택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망해가니까 기회가 더 큰거죠! 비즈니스는 망해가지만 저널리즘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2년 뒤 이씨는 하향세를 타는 또 다른 산업을 주목한다. 소설 시장이다. 텍스트(문자) 형식의 콘텐츠 소비가 갈수록 줄어든 탓에 열악한 시장이지만 마찬가지로 그만큼 기회가 크다고 봤다. 다른 산업에 비해 경쟁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미(英美)시장을 타깃으로 한 영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는 출시 약 4년 만에 하루 1억원 넘게 벌어들이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현재 주로 미국 작가들이 웹소설을 연재하는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크게 개인 작가 콘텐츠와 래디쉬 자체 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나뉜다. 지난 22일 서울 위워크 강남점에서 이씨를 만나 그의 창업기를 들어봤다.

    ◇소설도 드라마처럼 ‘집단창작’… 1일 1연재도 모자라 5연재까지

    영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대표작. 인기작 월 매출은 7억~8억원에 이른다./ 래디쉬
    이씨는 래디쉬를 ‘소설계의 HBO’라고 소개했다. 워너미디어 산하 케이블 방송국인 HBO는 ‘왕좌의 게임’ ‘체르노빌’ ‘소프라노스’ 등 소위 글로벌 ‘대작’을 다수 만들어낸 드라마 제작사로 유명하다. 이씨는 "소설도 드라마처럼 여럿이 달려들어 제작하면 안되나 고민이 있었다"며 "회사 주도로 PD, 메인작가, 보조작가 등 팀을 꾸리고 톱다운 방식의 콘텐츠 제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100회, 200회, 1000회 이상 연재하는 소설이 나와야 하는데 개인 작가만 바라보며 기도하다가 평생 걸리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떠나지 않고 플랫폼에 계속 머물도록 한 소설을 가능한 한 짧은 주기로 연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만화책도 20권, 30권 정주행하다가 끊기면 다음 편 기다리는 사이 다 까먹고 지치지 않느냐"며 "쉼 없이 1일 1연재, 많으면 하루 5회까지 업데이트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래디쉬(radish)란 이름도 ‘할듯말듯 하다’는 뜻의 ‘-ish’에 ‘읽다’의 ‘read’를 합쳐 만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읽었지만 다 읽은 게 아니다, 계속 연재중이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문제는 어디서 집단창작할 능력있는 작가들을 구해올 것인가였다. 이때 큰 역할을 해준 이가 현재 래디쉬 CCO(최고콘텐츠책임자)인 수 존슨 전 ABC 부사장이었다. 이씨는 "원래 사업상 조언을 받기 위해 만났는데 얘기를 나누다 같이 일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고 했다. 또 당시 미국은 일하는 여성 수가 빠르게 늘며 전업주부가 급감하던 상황이었다. 이는 일일드라마 시장의 침체와 수많은 작가들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이씨는 "1일 1연재라는 목표에 가장 특화된 이들이 방송국 작가"라며 "ABC에서 20년 네트워크를 쌓은 존슨이 프로 작가들을 영입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외부 작가뿐만 아니라 래디쉬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인업을 갖춘 것이다.

    ◇월매출 30억에 신규 투자 760억까지… "인기 없을수록 혁신할 거리 많다"
    기업형 집단창작이라는 래디쉬의 전략은 통했다. 래디쉬의 올 상반기 하루 매출은 약 1억360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하루 530만원) 대비 25배 성장했다. 월 기준으로는 약 30억원가량 된다. 이러한 매출의 90% 이상이 래디쉬에서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지난 1년간 30개 시리즈에서 6500여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냈고, 현재 7개 시리즈가 매일 연재된다. 인기 작품은 대개 뱀파이어(흡혈귀)나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최근에는 카카오페이지와 소프트뱅크벤처스 주도로 진행된 투자로 760억원을 유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이처럼 수백억원의 투자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또 이번 투자와 함께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와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래디쉬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래디쉬는 투자금을 자체 제작 콘텐츠 확대에 쓴다는 계획이다. 이씨는 "소설을 쓰는 작가뿐만 아니라 흥행 척도를 평가하는 데이터 전문가나 광고, 마케팅, 재무 분야 인력이 필요하다"며 "최근 폭스넥스트 게임즈(월트디즈니 산하) 출신 광고·기획 디렉터를 섭외했고 천체물리학 박사를 데이터사이언스 리드로 영입했다"고 했다. 아울러 미국 로스앤젤러스(LA) 사무실을 차릴 준비도 하고 있다. LA는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게임회사, TV작가들이 많아 래디쉬가 추구하는 마케팅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래디쉬 본사인 뉴욕 사무실은 주변에 출판사가 밀집해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고 있고, 국내 서울 사무소는 앱 개발 등 기술적인 분야를 전담 하고 있다.

    이씨는 ‘유튜브·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가 대세인데 왜 하필 소설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오히려 경쟁이 적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가장 안 좋은 게 남들이 다 한다고 따라하는 것"이라며 "저는 오히려 인기 없더라도 전통적이면서, 요즘 ‘레트로’라고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게 혁신할 거리가 많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설은 오늘날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 분야"라며 "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트와일라잇 등 할리우드 톱 영화의 절반 이상이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소설은 모든 콘텐츠의 기초가 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래디쉬에서 만든 소설 IP(지적재산권)를 영화, 게임 등 콘텐츠로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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