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도심 한가운데 택배 지하 터널 뚫고 학교엔 테라스 만들어야" 유현준

입력 2020.07.25 07:00 | 수정 2020.07.25 13:49

드론 택배, 소음 심해… 지하 택배 터널 뚫어야
1인 주거 공간 더 늘고, 거실에서 소파 사라질 것
학교는 감옥 아냐… 건물 더 쪼개고 테라스 만들어야
SNS 공간도 끼리끼리 모이면 사회적 비용 치를 것
오프라인, 다양한 사람 섞이는 ‘소셜 믹스’ 고민해야
유리문, 발코니… 코로나 ‘집콕’ 시대에 더욱 절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 하버드 대학원과 MIT대학원에서 건축설계 석사를 마쳤다. 인문적 입담으로 도시 공간을 계몽 중이다./사진=조인원 기자
콜럼버스의 업적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이 아니다. 유럽과 아메리카를 두 달 만에 연결했다는 공간의 압축에 있다. 이 사건은 문화적 융합에 가속을 가져왔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더는 탐험할 공간이 없어지자, 인간의 눈은 두 곳을 향했다. 안쪽으로는 심리, 바깥쪽으로는 우주다. 1856년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탐사하면서 무의식의 공간을 열었고, 20세기 인류는 달에 발을 디뎠다.

지리적 발견이 더이상 불가능해지자 인간은 새로운 대륙을 만들었다. 컴퓨터 속 가상 공간이다. 주인이 없는 공간에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이 먼저 치고 나가 빈 땅에 깃발을 꽂아 영토를 차지했다. 반도체 칩과 케이블만 있으면 사이버공간을 계속 키울 수 있으니, 현재 삼성전자는 가상공간을 만드는 부동산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저서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인류사의 시공간을 스킵(skip)과 시프트(shift), 항공 촬영으로 오가며 문명의 진화를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모든 시야의 중심은 건축과 공간이다. 읽다 보면 건축판 ‘총균쇠(제래드 다이아몬드)’를 쓰고자 했던 야심이 읽힌다. 철근과 콘크리트, 나무와 기둥이 동서양을 어떻게 나누고 융합했는지 목격하는 과정은 충분히 즐겁다.

tvN 예능 ‘알쓸신잡'에서 최적의 게스트로 ‘싱싱한 지적 입담'을 자랑했던 유현준은 요즘 융합과 연결을 화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간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항공 드론 대신 도심 지하 터널을 뚫어 택배 물류 수송을 시도하고, 창의적 소셜 믹스를 위해 기업타운을 구도심으로 옮겨야 한다는 등.

비대면 시대, 다양성, 투명성, 연결이라는 시대정신은 건축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건축가가 도면을 만지던 두 손으로 하늘과 빛을 만질 수 있다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알쓸신잡’에서 관찰력과 추리력이 뛰어나 ‘셜록 현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사진=조인원 기자
철근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 기술로 주거가 대량공급되고 중산층이 탄생한 것처럼, 앞으로 3D프린트 기술과 자율주행 차량은 도시를 어떻게 바꿀지 모른다. 차를 소유하지 않으면 주차장이 실내 농장이 될 수도, 줄어든 차선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도시 속 빈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구체적인 도시 비전을 듣기 위해 유현준을 만났다. 청담동에 있는 건축사무소는 무더위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바깥으로 열린 테라스, 통 유리 회의실 등이 연결과 개방의 샘플처럼 보였다. 그는 1층 사무실에서 커다란 테이블에 기대 유리 통창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거리와 공간과 일하는 인간이 한 몸처럼 투명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요즘은 어떤 일에 많은 시간을 씁니까?

"CJ테마파크 마스터 아키텍트(Master Architect 총괄 건축가)예요. 제가 가진 시간의 절반을 씁니다. 일산 호수공원과 한류월드에 걸친 10만 평 규모의 도시형 테마파크인데, 2024년 완공 계획이에요."

-‘안 모이는 게 상책'인 코로나 시기에, 어려운 작업이군요.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야죠. 옛날엔 상업 공간이 무조건 붐빌수록 좋았죠. 지금은 아니에요. 반드시 거기로 와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죠. 많은 디벨로퍼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어요. 똑같은 것을 반복하면 망하니까요. 오프라인은 모두 존재 이유를 찾아서 ‘다르게’ 가야죠."

유현준은 ‘세바시’ 강연에서 학교와 교도소가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고발해 충격을 줬다.
-현실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나요?

"제가 ‘감옥 같은 학교 건물로는 창의력 인재 안 나온다’고 그렇게 쓴소리를 할 때는 잘 안 먹혔는데, 이제야 조금씩 반응이 와요.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 여러 기회를 경험하면서 지금 같은 공간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의사결정권을 가진 공무원들이 정리를 좀더 분명히 해줘야 해요. 시민들, 수요자들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바뀌면 공급자들도 태도를 바꿔요. 전염병 몇 번 더 세게 오면 확 바뀔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선, 학교 건축부터라도 바꿔야 해요."

-학교 건물 이야기하면서, 공간을 잘게 쪼개고 외부 공간을 내부에 들여야 한다고 했는데요. 코로나 시기에 모든 건축에 해당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죠. 작은 군집, 다양한 외부 공간이 필수예요. 학생들이 실내 공간에서 밖으로 안 나와도 자연과 만날 수 있게 테라스 만들어야 하고요. 교무실은 꼭대기로 올려야 해요. 통창 만들고 폴딩도어 만들면, 쉽게 바깥 공기, 꽃냄새 맡을 수 있죠. 복도 양쪽에 교실 만들어 가운데 창문 크게 트면, 학생들이 서로를 구경할 수 있어요. 복도벽 위쪽에 창 작게 내서 감시하는 건 전형적인 ‘감옥'형 구조예요. 전 창문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문은 서로 들여다보이잖아요. 정직, 투명, 개인이라는 시대정신과도 잘 맞는 재료죠.

"예전부터 창문을 좋아했어요. 문은 프라이버시예요. 닫으면 깜깜이죠. 창문은 누가 들어오진 못하지만, 커튼 치면 프라이버시 보호되고 자기 주도적인 공간이 되거든요. 그래서 전 교실과 교실 사이는 물론, 거실과 안방 사이에도 큰 창문을 내자고 해요."

새로운 생각의 발생은 제약과 융합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유현준./사진=조인원 기자
-건축의 본질은 형태가 아니라 공간 구획이라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유 교수는 더 나아가 ‘건축은 정보’라고 해서 사고가 전환됐습니다.

"네. 건축은 정보와 관계의 집합체예요. 과거엔 건축을 시멘트나 유리 같은 물질로 이해했어요. 저는 건축은 공간이고, 공간은 머릿속에서 산출된 개념이라고 보는 거죠. 만화도 저는 스토리화된 공간이라고 이해해요. 인터넷도 공간 형태로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요. 도시 건축도 수많은 정보가 연결된 신경망 형태로 볼 수 있죠. 시청 광장만 봐도 잔디광장, 스케이트장, 시위, 축제 공간… 어떤 행위 정보를 담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가지잖아요."

-세상의 모든 것이 공간 언어로 설명된다는 게 신선합니다.

"그렇죠. 가령 ‘양식의 양식'이라는 음식 교양 프로에 출연할 때, 저는 국밥을 이렇게 읽었어요. 여러 공간의 자투리 음식이 한 공간에 모여 압축된 게 국밥이구나. 국밥은 반찬을 깔 공간이 없어서 나온 음식이에요. 쪽방에 작은 상을 놓고 여럿이 모여서 먹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간편식이죠. 반면 키우고 재배하는데 넓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스테이크나 와인은 권력형 음식이에요. 그 공간을 최고로 압축해서 하나의 플레이트로 담아내면서 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차지하는 공간이 곧 존재값이 된다,는 해석이 놀라웠다. 그는 자신이 예컨대 이론물리학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 시각으로 추정 상상하지만, 그걸 증명해내는 실험 물리학자는 아니에요(웃음). 아인슈타인도 상상실험의 대가였죠."

지식과 상식, 싱싱한 수다를 쉬지 않고 융합하는 모습에서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이어령, 김용옥, 유홍준 교수를 일컬어 대한민국 3대 교육방송이라고 했는데, 유현준이 이제 그 대를 잇는구나 싶었다.


건축판 ‘총균쇠'로 명명되는 유현준의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
-인문 지식을 대중 지식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지요?

"제가 인문적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웃음). 저는 이과생이고 문·사·철을 몰라요. 다만 저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철학, 심리학, 신학, 물리학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이어령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요.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사고의 전환을 해내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죠."

-현대 건축사에는 전에 없던 자기 생각을 펼쳐낸 위대한 건축가들이 있지요.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로,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 그들이 빛과 콘크리트를 이해했던 방식을 얼마나 많이 참조합니까?

"설계가 잘 안 풀리면 성경책 보듯 안도 다다오의 도면을 봐요. 안도 다다오가 지은 ‘물의 교회' ‘빛의 교회' 같은 건축물의 도면을 보면 그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왜 창문을 내고 벽을 냈는지, 그 마음이 읽힌달까요.

르코르뷔지에도 정말 똑똑한 건축가입니다.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는 해체주의를 현실 건축에 인용했죠. 그러나 루이스 칸이나 안도 다다오를 생각하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루이스 칸이 지은 건물은 해지기 전에 빛이, 빈 공간이 얼마나 충만하고 위대한지를 보여줘요."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빛과 자연을 담은 공간에 살고 싶지만, 사실 도시인은 고밀화된 공동주택에 살아요. 도시가 발전할수록 점점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이 됐죠.

"이제까지 도시의 발전은 신경망을 늘리는 거였어요. 1세기 로마의 상수도부터, 18세기 파리의 하수도, 20세기 대도시의 지하철과 항공망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시냅스 총량이 급증하면서 메가시티가 탄생했지요. 하지만 그만큼 전염병 연결 고리도 치밀해졌죠. 지난 100년간은 항생제와 백신이 전염병을 커버했지만, 현재로서는 감당이 안 돼요.

바이오 테크놀로지와 IT 기술이 합쳐진 새로운 게놈 지도가 도시 설계에 필요한 시점이에요.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코로나 방역에서 선방한 데는, 국민 60%가 아파트에 사는 도시 구조 덕이 컸어요. 모여 살면 택배 효율이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물류가 해결되면서 자가 격리가 가능했던 거죠. 미국 아마존도 우리 택배를 못 따라가요(웃음)."

-최근엔 지하 물류 시티에 대해서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심에 지하 터널을 뚫어서 택배 물류를 전부 지하로 통하게 한다는 게 현실성이 있는 주장인가요?

"가능합니다. 지하 물류는 조용하고 안보여요. 깊은 터널을 뚫을 필요도 없죠. 도로는 정부 땅이고 밑으로 파내면 문제없어요. GTX도 지하 40M 파는데, 그것도 프라이버시를 보장한 깊이예요. 터널 기계가 뚫으면 금방이에요. 도요타 우븐 시티는 물론 실험 도시지만, 각각의 터널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집까지 택배가 돼요. 새로 지은 공공건물은 장애인도 움직일 수 있게 설계돼 있으니 로봇 딜리버리도 가능하고요.

제 생각엔 드론 택배야말로 황당한 발상이에요. 밤 11시에 11층 아파트에서 치맥을 시킨다고 해보세요. 드론이 배달하면 9층과 10층과 난리가 날 거예요. 소리, 냄새, 섹터를 상상하지 않았던 거죠. "

드론 택배는 소음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지하 물류 시티로 자동화가 된다면, 일자리 유실 등의 문제가 또 생길 텐데요.

"온라인 주문이 늘어나면서 이제 공중 드론이냐 지상이냐, 지하 택배냐를 선택해야 해요. 이대로 가면 점점 더 많은 인구가 택배 기사로 고용되겠죠. 국민 다수가 택배에 종사하는 게 과연 전체 행복을 높이는 길일까요? 택배는 이제 기계에 맡기고 인간 중심의 더 섬세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물류는 갈림길에 서 있어요. 20세기 초에 수소 에너지를 쓸 기술이 있었지만, 인류는 화석연료를 선택했어요. 단가가 좀 더 싸다는 이유로. 그 선택으로 지금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까.

90년대 중반 풍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북경은 자전거 타고 다니던 시절에, 타이베이는 오토바이 소음으로 전 국토가 정신이 없었어요. 드론 택배 세상이 되면 소음 때문에 산책은 꿈도 못 꿔요. 드론에 하늘을 뺏기면 인간은 실내에만 머물러야죠. 심지어 그 작은 헬기는 에너지 효율도 높지 않아요"

-주택 환경 문제로 넘어가 보죠. 비대면 사회가 될수록 중요해지는 공간은 무엇이죠?

"실내 생활이 길어질수록 발코니, 테라스의 가치가 소중해져요. 실내지만 바깥 공기도 쐬고 하늘과 자연도 만날 수 있죠. 국토부에서 건폐율 용적률 개정해서라도, 아파트 베란다 공간을 활성화해야 해요. 과거엔 방에서 이불 펴고 자고, 상 펴고 밥 먹었어요. 잘살게 되니 침대를 들여왔죠. 아파트 평당 3천 5백만 원이라고 하면, 침대가 2평, 7천만 원 공간을 차지해요.

침대가 공간을 차지하면 방이 좁아서 평소엔 거실로 나와요. 4인 가족이 앉아 TV를 보려면 소파도 필요하죠. 침대 3개에 소파 1개가 잡아먹는 공간이 이미 7평이에요. 절대 공간이 부족하니 야외 공간인 베란다를 실내공간화시킨 거예요."

건축으로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건강한 소셜믹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유현준./사진=조인원 기자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실내가구도 구조조정이 예상되는군요.

"가구는 점점 줄어들 거예요. 거실 한쪽을 차지한 큰 소파가 자랑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4명이 모여 TV 볼 필요가 없으니, 소파는 점점 사라지겠죠. 각 방의 침대가 1인 소파 기능을 하고, 그 형태도 접이식이 많아질 거예요. 거실은 운동, 공부 등 다목적 공간으로 쓰고, 오히려 부엌은 확장되어 라이프스타일 존이 되겠지요."

모든 게 다 바뀔 것 같은 코로나 환경에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고 했다. "인류 역사 동안 과시욕, 관음증, 짝짓기 본능은 어떤 환경에서도 안 바뀌었어요. 그중에 최고는 과시욕이에요."

-과시욕은 어떤 형태로 유지되고 있지요?

"일단 높이죠.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사는 것. 고층 건물은 밀도가 높아 공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100층 이상의 건물은 구조적으로 보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도, ‘랜드마크’의 환상을 채워주니 계속 지어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쌓습니다.

평범한 개인들의 공간 과시욕은 인터넷으로 가요. SNS에서 가능한 여러 곳, 다른 공간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죠. 스마트폰으로 리얼 월드와 가상 월드를 왔다 갔다 하며, 인스타그램 공간의 영토를 계속 확장해가요.

예전엔 나의 재력을 뽐내기 위해 명품 가방을 들고 외제 차를 탔다면, 지금은 SNS에서 잦은 공간 이동을 보여주죠. 비트로만 존재하는 세상에 머물다 보면, 실제 몸으로 기억하는 공간감, 피지컬 스페이스도 중요해져요."

-일단 비즈니스 시각으로 보면 사이버 공간은 이미 영토 분할이 끝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목 좋은 플랫폼은 자릿세도 비싸고 너무 북적대지요.

"온라인은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오프라인에서 편집숍이 인기를 끌면, 온라인 쇼핑 공간에도 순식간에 같은 형태가 생기잖아요. 생명체는 진화를 겪으며 원생동물에서 무척추동물, 척추동물로 점점 더 세분화 되어왔어요. 사이버스페이스는 진화로 치면 아직 공룡도 안 나온 상태예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네이버… 공간끼리 서로 융합하고 붙으면서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종이 계속 나올 거예요."

-정체성은 건축가인데, 인류학자처럼 빅히스토리를 읽는 느낌입니다.

"세상을 읽는 저만의 시각이죠. 건축가의 본능 중에 갓 콤플렉스라고 있어요.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는 콤플렉스예요.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수술실 의사도 비슷한 증상이 있는데… 일종의 망상입니다(웃음). 어쨌든 빈 땅에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움직임의 규칙을 관찰하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123층 높이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된 롯데월드타워.
-높고 넓은 시야에서 보면 어떤 그림이 보이나요?

"역사적으로 권력의 크기와 건물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거예요. 절대자는 건축으로 존재를 과시해요. 가령 피라미드를 건설한 파라오와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제 중 누가 더 강할까?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런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요.

일단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계산하면 권력의 양을 정량화할 수 있어요. 피라미드의 에너지값이 9,400만이 나왔는데 그걸 1로 가정했더니, 만리장성은 피라미드의 2.3배가 나왔어요. 건축물로 비교하면 진시황의 권력이 파라오보다 2.3배 더 센 거죠.

국내 최고층 빌딩이 될 강남 현대차 신사옥은 105층 꼭대기까지 정사각형 모양을 그대로 구현할 계획이다.
롯데월드타워(555m)와 현대차 신사옥(2026년 완공, 569m)도 비교해봤어요. 롯데타워는 에너지값이 2.6, 현대 신사옥은 8.9가 나왔어요. 현대가 3.4배 높았죠. 신기한 건 당시 두 기업의 주가 총액을 비교했더니 딱 3.4배 차이가 났어요. 건물을 만든 에너지값과 권력의 양이 비례한다는 증거죠(웃음).

사람의 육체도 과시의 공간으로 보면 비슷해요. 스프레이로 머리를 높게 부풀리는 행위도 ‘센 놈'이라는 과시죠. 조선 시대 상투와 여인들의 가채, 남자들의 모자도 위치 에너지를 높인 거예요. 그런 점에서 대머리는 위치에너지가 낮아 자존심 게임에서 불리하죠(웃음)."

-유 교수의 과시욕은 어떻게 드러납니까?

"저는 융합의 과시욕이 있어요. 지식을 계속 융합해서 펼치면 대중의 시선이 저에게 집중되고,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겨요(웃음)."

방송국 메인 뉴스 앵커도 정해진 시간에 한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표적인 권력의 자리라고 했다.

"한 방향으로 배열된 공간은 권위를 만드는 대표적인 세팅이에요. 주일마다 모여 강대상에 선 목사의 설교를 듣는 교회의 예배 시스템, 등교와 교탁이 있는 학교, 정해진 출퇴근과 한 방향 책상이 있는 회사 등이 다 해당하죠. 모든 공간에는 알게 모르게 위계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요."

-고정된 한 방향이 아니라 ‘레이어링(겹쳐짐)과 유닛’ 같은 유연한 공간 구획으로 사고하면 어떤 이점이 있나요?

"제가 ‘밀어서 무장해제'라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과 팀을 이뤄 낯선 공간에 던져지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요. 지식과 취향과 관계가 각자의 방식으로 연결되고 겹치고 재조립되고 융합이 돼요.

저는 글을 쓸 때도 기존 논문을 인용하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논문도 잘 안 써요(웃음). MIT 석사 논문으로 ‘공간은 정보'라고 했더니 ‘레퍼런스가 뭐냐’고 물어요. 제 머릿속에 고정된 레퍼런스는 없어요. 제 이야기, 제 생각을 경계 없이 펼쳐요. 검증은 딴 사람에게 넘기죠(웃음). 검증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나만의 생각이 샘솟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근미래의 건축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샘솟고 있지요?

"일단 1인당 사용 공간이 늘어날 겁니다. 이전엔 1인 가구가 6~7평 사용했다면, 10~12평을 원하게 될 거예요. 공유오피스와 재택근무가 더 늘겠지만, 보안 이슈 때문에 대기업은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어요. 학교는 지식 전달의 기능을 점점 온라인 ‘일타 강사’에게 넘기게 될 거예요. 학교 건물은 더 빠른 시간에 탁아와 공동체 교육에 맞게 조정돼야죠.

앞으로는 ‘어디에 사느냐’ 주민등록증의 주소는 덜 중요해요. 어디에서 몇 시간을 보내느냐가 나의 정체성이 되죠.

고창에서 지내면서 서울 도심권의 교육과 일자리를 누릴 수 있어요. 4일은 지방에 3일은 서울에서 지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도심 속에 빈 공간이 생기고, 빈 공간을 잘 전환할수록 새로운 에너지의 도시가 만들어져요. 맨해튼 소호의 로프트가 아티스트와 여피를 끌어들인 것처럼. 파리의 오스만 시장이 도로망과 하수도 망을 만들어서 19세기를 리드했듯이, 스마트시티의 답을 찾으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앉을 수 있는 벤치, 구경할 수 있는 상점, 섞일 수 있는 공원, 집안의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현준./사진=조인원 기자
-마지막으로 ‘똑똑한 도시’가 되기 위해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지하 물류 시티 건설, 그리고 나무가 있는 테라스 공간처럼 주거 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건축은 계속 고민과 실험이 필요해요. 또 하나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에요. 주요 이슈는 다양성, 소셜 믹스에요. 낯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야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요.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도 끼리끼리 모여요. 정치적 이슈가 생기면 SNS에서 좌우가 갈라져 거리를 두거나 친구를 끊죠.

점점 끼리끼리 모이면 통합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치러야 해요. 재건축 아파트에 임대주택 30% 넣는 게 소셜믹스인가? 아니에요. 그보다 도서관, 수영장, 공원, 거리에 더 많은 벤치를 만들어 개방하는 게 낫습니다. 자연과 도심,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두루 섞일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해요. 성수동, 경의선 숲길 같은 곳이 많이 생겨야 경쟁력 있는 도시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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