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끼는 H라인 치마? 승무원 본연 업무와 동떨어져” ‘젠더뉴트럴’ 유니폼 채택한 신생항공사

조선비즈
  • 최지희 기자
    입력 2020.07.11 06:00

    "업무 본질과 상관없는 불편한 유니폼을 언제까지 참고 입어야 하나 했는데, 드디어 한국에도 이런 항공사가 나와 반갑네요."

    한국 여성 승무원 유니폼의 전형으로 여겨진 몸에 꽉 끼는 치마 정장과 블라우스를 타파하고 성 중립적인 유니폼을 채택한 국적 항공사가 승무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오는 8월 첫 운항 예정인 신생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항공 이야기다.

    1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청주국제공항을 모(母)기지로 하는 에어로케이항공은 국내 항공사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 승무원의 유니폼 디자인을 동일하게 만들었다. 여성 승무원을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는 H라인 치마가 아닌 여유 있는 바지 정장을 공식 유니폼으로 채택했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착용하게끔 했다. 셔츠와 재킷 대신 면 소재의 라운드 티셔츠도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했다.

    객실 승무원 외에도 운항 승무원(조종사)과 정비사 등이 입는 유니폼에도 남녀 간 디자인 차이를 최소화했다. 에어로케이항공 측은 "승무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데 치마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객실 승무원의 경우 비상 탈출과 기내 서비스 등 다양한 직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통기성이 좋은 바지와 인체공학적인 운동화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에어로케이항공이 도입한 유니폼. /에어로케이항공 제공
    다만 일부 승무원 사이에서는 타 항공사처럼 치마도 만들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승무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혁신적이고 편할 것 같긴 하지만 보자마자 전투복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너무 불편하지 않은 치마도 추가해 각자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번 유니폼 프로젝트를 총괄한 김상보 마케팅본부장은 "유니폼은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며 "새로운 유니폼을 통해 고착화된 승무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을 최우선에 두고 앞으로 실제 승무원들이 입으면서 생기는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항공사들이 채택한 유니폼은 시대 흐름과 달리 남녀 성차별을 고착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2005년 유니폼을 개편하면서 치마와 함께 바지 정장을 도입했다. 하지만 바지 또한 몸에 꽉 끼는 디자인이었던 탓에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내부 의견이 빗발쳤다. 여성 승무원 복장 문제는 2018년 국정감사에도 올라 대한항공 승무원이 증언대에 서기도 했다. 당시 출석한 유은정 대한항공 승무원은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유니폼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며 "유니폼이 타이트한 스타일이라 위장 질환과 소화 질환, 부인과 질환까지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왼쪽)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유니폼과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 유니폼. /연합뉴스
    1988년 창립 후 25년간 치마 유니폼을 고수해오던 아시아나항공은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13년 바지 유니폼을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무 지급이 아닌 신청자들에 한해 바지 유니폼을 제공하고 있다. 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은 "바지를 신청하는 것마저 회사와 상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평가를 담당하는 사무장이 바지 입는 걸 싫어하는 경우도 많아 바지 착용이 자유롭지는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형 항공사에 다니는 한 4년 차 승무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여자 선배들이 바지 유니폼을 입으면 회사에서 별도로 경고 메일을 받기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초창기 인턴 때는 바지를 입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며 "꽉 끼는 옷을 입고 온종일 일하다 보면 때로는 성 상품화된 이미지로 노출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많다"고 했다.

    여성 승무원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용모 규정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LCC를 중심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진에어는 2008년 설립 당시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여성 승무원의 기본 유니폼을 청바지로 정했다. 문제는 이 청바지가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청바지’였다는 점이다. 일하는 데 불편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지난해 7월 진에어는 10여년 만에 신축성 있는 청바지와 치마 유니폼을 함께 허용했다.

    제주항공은 2018년부터 승무원이 기내에서 안경을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제주항공 제공
    티웨이항공은 2018년부터 국내 항공사 중엔 처음으로 객실 승무원들의 두발 규정을 없앴다. 승무원들이 겉모습에 치중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승객 안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활동이 편리한 바지와 원피스 등 유니폼 종류를 총 6가지로 늘려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제주항공 역시 2018년부터 승무원이 기내에서 안경을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항공사 대부분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으나 암묵적인 관행에 따라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를 규정상 허용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야간 비행이나 눈이 충혈된 상태에서 렌즈를 착용하고 비행하는 승무원이 의외로 많아 업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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