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냐 승진이냐… 공무원도 비웃는 부동산 정책

입력 2020.07.09 11:00

최근 한 경제부처 A과장은 공무원 후배들과 같이 거주하던 세종시 아파트를 팔고, 가족이 거주하는 수도권 아파트로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장거리 출퇴근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집을 팔지 않으면 앞으로 승진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매각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졸지에 A과장의 집에서 같이 살던 후배 2명은 세종시에 거주할 곳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른 부처 B국장도 고민에 빠졌다. 그는 2주택 보유자이지만, 세종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실거주자다. 서울에 보유 중인 자택에 가족이 거주하고 있지만,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출퇴근이 엄두가 나지 않아 중앙부처 세종시 이전 당시 분양받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말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세종시에 분양받은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재테크 목적으로 전세를 놓거나 월세를 받는 경우가 아닌데, 투기성 보유자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면서 "지금 거주 중인 집을 팔고 월세를 내고 오피스텔 생활을 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에서 "다주택 고위공직자는 집을 매각하라"고 밝히는 등 고위공무원을 향한 주택 처분 압박 수위를 높이자 세종시 공무원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상태다.

특히 세종청사 이전으로 원래 살던 수도권과 세종시에 집을 한 채씩 가진 이들의 불만이 크다. 직장이나 교육 등 이유로 세종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월세로 오피스텔 등을 구하거나 장거리 통근을 감내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렇다고 집을 선택하면 ‘승진 포기’로 간주될 터라 많은 공무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주택 처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중앙부처와 지자체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현황을 파악하는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갔고, 다주택을 보유한 공무원이 집을 처분하지 않으면 승진과 인사평가 등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산공개 대상이 아닌 2급 공무원(국장급)까지 다주택을 처분해야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알아서 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승진 대상에 오른 몇몇 인사들이 1급 공무원 인선에서 빈번히 미끄러진 이유가 실상 재산규모 (다주택)때문이라는 소문이 관가에서 파다한 상황이다. 투기꾼으로 찍히면 ‘앞길이 막힐 수 있다’는 공포다.

공포만큼이나 불만도 일촉즉발인 상황이다. 무조건 ‘다주택’을 처분하라는 정부 지시가 서울이나 외국 발령을 받는 일이 잦은 중앙부처 공무원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감이 크다. 국장급 이상이 되면 국회 등 대면업무로 서울 출장이 잦은 점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국회나 청와대가 "모두 서울에 남아있으니 그런 지시가 쉽게 나온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앞날이 깜깜하다"며 "원래 살던 곳과 세종시 주택은 상황에 맞춰 거주하도록 한 것인데 수도권 주택을 처분하고 나서 외부 파견을 나가게 되면 연고가 없는 가족 생활이 어려워 진다"고 했다.

또다른 경제부처 과장도 "국장급 이상이 되면 대부분 수도권 생활을 하게 되는데, 몇년이 됐건 그때까지 알아서 불편을 감내하라는 것 아니냐"며 "자녀들이 대학에 가는 경우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청와대나 국회가 서울에 있으니 (처분하라는 소리가) 쉬운것"고 반발했다.

폭압에 가까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고위공무원 뿐 아니라 일선 사무관들까지 비웃고 있다. 특히 대출을 막아 실수요자인 젊은 세대의 내집 마련 기회를 박탈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공무원 특별공약을 받아 세종에 정착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선택지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은 "공산국가도 아닌데 불로소득을 죄악시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다른 경제부처 사무관도 "유동성이 넘쳐나는데 (공급 없이) 일부 다주택자에게 집값만 오른다는 분노를 뒤집어씌워봤자 문제는 더 악화될 뿐"이라면서 "시장을 규제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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