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7월6일~9월18일) 첫 날인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중부발전 서울복합화력발전소를 찾아 "예상치 못한 폭염상황이 지속될 경우 전력수요는 당초 전망치보다 증가할 수 있는 만큼, 전력 수급 대책기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안정적 전력수급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전력(015760)사장 등 이날 참석한 발전 6사 사장단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최근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반포동 일대에서 정전(停電) 사고가 잇따르면서, 여름철 전력 부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성 장관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여름철 정전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6일 여름철 전력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 공공기관 240개소 전력사용 점검

서울복합화력발전소는 지난해 11월 준공된 세계 최초 지하 LNG 발전소로 서울 전체가구의 절반인 185만 가구에 전기를, 여의도·마포 등 10만 가구에 열을 공급하는 발전소다.

이날 성 장관이 발전소 사장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올해 여름 역대급 폭염으로 전기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20년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에 따르면, 산업부는 여름 최대전력수요가 8730만kW 내외, 혹서기엔 9080만kW 내외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망치는 최근 30년간 최대전력수요 발생 직전 사흘간의 평균 기온 중 상위 10개 연도의 평균인 29.1도(혹서기는 30.1도)를 적용해 계산됐다.

여름철 최대전력수요 전망치는 매년 늘고 있다. ▲2014년 7605만kW ▲2015년 7692만kW ▲2016년 8518만kW ▲2017년 8459만kW ▲2018년 8830만kW(실제로는 9248만kW 기록) ▲2019년 9130만kW ▲2020년(전망치) 9080만kW 등이다.

서울복학화력발전소 종합감시센터 모습

정부는 역대 최대인 1억19만kW의 공급능력을 확보했다. 하계 피크시 공급능력도 매년 ▲2014년 8413만kW ▲2015년 8960만kW ▲2016년 9240만kW ▲2017년 9499만kW ▲2018년 1억71만kW ▲2019년 9833만kW 등으로 증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제껏 한 번도 1억kW를 초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올해 공급능력은 역대 최대"라며 "예비율이 10.3%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 공급에서 최대 수요를 뺀 예비력은 939만kW, 최대수요 대비 예비력을 나타내는 전력예비율은 10.3%다. 추가 예비자원으로는 729만kW를 확보했다.

산업부는 이달 6일부터 9월18일까지를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한국전력거래소, 한국전력 , 발전사와 함께 수급상황실을 설치해 운영할 예정이다. 전력대란 사태가 벌어져도 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단계별로 수요감축 요청(DR), 전압하향조정 등을 통해 추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부문의 전력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민간부문은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적정 실내온도 지침 등 지난해(190개소) 보다 50개소 늘어난 총 240개소 공공기관에 대해 전력 수요관리 이행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전기 생산 30%는 원전... 탈원전 논란은 계속

전문가들은 탈원전을 주장하는 정부가 여름철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을 풀(full)가동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풀가동 중인 원전 1기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여름철 전력공급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날 성 장관은 원전과 관련한 질문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또 여름철 공급전력에서 원전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묻는 질문에는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4월까지 우리나라 전력량의 약 29%는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전력 피크 기간 가동원전 24기 가운데, 7~9월 정비 등으로 멈추는 7대(한빛 2~5호기, 월성 4호, 한울 1·6호기)를 제외한 평균 18기(1783만kW)를 모두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월성 원전 단지 내부에 조성된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 설비. 오른쪽 아래 단의 흰색 원통형 설비가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지은 캐니스터(300기), 왼쪽 위 단의 창고 스타일 콘크리트 건물이 2007년부터 운용해온 맥스터(7기). 앞쪽 넓은 공터는 추가로 맥스터 7기를 짓기 위해 미리 닦아놓은 부지.

현재 국내 전력량의 6~7%가량을 차지하는 한빛원전 6기중 절반인 3기(3·4·5호기)가 정비를 위해, 수년째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한빛 2호기도 6월3일부터 8월13일까지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원전 4기가 가동을 멈췄다. 조기폐쇄가 결정된 월성 1호기 역시 작동이 멈췄다. 지난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력수급 우려가 높았지만, 그해 12월 신고리 4호기가 준공되면서 상황을 간신히 넘기기도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력 피크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사전에 발전소 정비를 마치는 등 원전은 항상 풀가동 상태"라며 "(원전은) 전력피크 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이 부각될 경우 탈원전 정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어 언급을 꺼리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계산이 어긋나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 탈(脫) 원전 정책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일에는 산업부가 한수원 등 전기사업자에 대한 비용 보전 근거를 마련하는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됐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른 비용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해 보전할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 국민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어내 조성한 돈이다. 결과적으로 탈원전 정책의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도 문제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맥스터 시설 7기 증설을 위해 지난해 5월 재검토위원회가 설립된 뒤, 1년 째 공론화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제자리 걸음인 상태다. 지난달 26일에는 정정화 전 위원장이 "공론화가 실패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고, 사퇴 일주일 만에 신임 위원장이 선출되기도 했다.

현재 월성원전 내 기존 맥스터 시설은 거의 포화상태다. 맥스터의 공사 기간은 약 19개월로, 이를 역산하면 오는 8월에는 착공을 해야 한다. 착공이 늦어져 다 쓴 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어지면 월성원전 2~4호기를 멈춰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성 장관은 이와 관련해 "재검토위가 절차대로 맥스터 관련 공론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이날 행사에는 성 장관을 비롯해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조영탁 전력거래소 이사장, 정재훈 한수원 사장, 유향열 남동발전 사장, 박형구 중부발전 사장, 김병숙 서부발전 사장, 신정식 남부발전 사장,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 김창섭 에너지공단 이사장, 조성완 전기안전공사 사장 등이 총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