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와이어카드 사태는 정부·감사기관·회계법인 무능이 빚은 참극

조선비즈
  •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7.06 13:40

    책임론 일자 獨 재무부 "금감원 통제권 확대"
    금감원·민간 회계기구·회계법인 전부 '뒷짐'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총체적 점검해야"

    독일 재무부가 와이어카드 회계부정 사건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이 5일(현지 시각) 자국 핀테크기업 와이어카드(Wirecard)의 2조6000억원대 회계부정 스캔들에 대응해 독일 금융시장 감시기구인 바핀(BaFin·금융감독원)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숄츠 장관은 이날 독일 매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타크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과 인터뷰에서 "기업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든 안하든 재무보고에 대한 바핀의 통제권한을 더 많이 부여하겠다"며 "회계사들의 이해충돌에 대한 바핀의 보호 메커니즘이 개선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사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와이어카드 사태와 연관된 언스트영(EY), KPMG, 딜로이트와는 별개로 대형 회계법인들도 감시를 받아야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순환형 회계감사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바핀이 광범위하고 특별한 회계감사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금과 직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와이어카드 사태는 20년 역사를 자랑하던 유망 핀테크 기업이 순식간에 '독일 역사상 최악의 금융 스캔들' 피의자로 전락한 사건이다. 여기에는 기업을 감독해야 할 금융 당국과 이 회사의 회계감사법인, 민간 재무회계 기구의 구조적 결함 및 무책임한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감독위, 감사 요청 뒷전...회사 파산했는데 '아직도 평가 중'

    독일 기업은 현행법에 따라 사내 감독위원회(supervisory board)와 경영위원회(management board)를 동시에 둬야 한다. 감독 위원회는 회사 경영 전반을 감시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감독위가 경영진에 대한 감사 요청을 받고서도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240억 달러 규모의 영국계 헤지펀드 TCI 대표인 크리스 혼 대표는 지난 4월 28일 감독위에 마르쿠스 브라운 최고경영자(CEO) 해임을 요청했었다. 그는 당시 공개서한에서 "감독위원회는 경영 문제에 법적으로 개입할 의무가 있고, 우리는 CEO를 모든 경영에서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요청은 한동안 묵살됐다. 브라운은 회계감사법인 EY가 '19억 유로 현금이 사라졌다'고 밝힌 다음날인 지난달 19일에야 회계부정을 시인하고 사임했다. 감독위에 해임 요청이 접수된지 50여일만이다. CNBC는 "이미 경영 관련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와이어카드 감독위원회가 왜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간 중심의 자율 재무회계 감사기구인 FREP(재무보고 집행패널)의 실효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FREP는 2001년 미국 에너지 기업인 엔론이 분식회계로 실적을 부풀렸다가 파산한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민간 회계감독 조직이다. 독일은 FREP가 1차적으로 회계 감독을 한 뒤,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만 공적 기구에 보고해 금융감독청이 조사에 착수하는 이원적 회계 감독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에드가 에른스트 FREP 회장은 지난달 29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신문과 인터뷰에서 "바핀이 2018년 상반기 와이어카드 회계에 대해 확인해달라고 요청을 해왔고, 이 일에는 딱 한명의 직원만 배정됐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와이어카드가 완전히 붕괴될 때까지도 FREP의 평가는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와이어카드의 회계법인 EY는 회사 계좌에 돈이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Y가 지난 3년 간 회사 계좌에 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며 수년 간 감사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EY는 지난 2008년에도 주주협회로부터 이 회사 재무제표에 위조 정황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2015년에는 FT가 그룹 내 회계상 문제와 부실 감사 의혹을 보도했지만, 회사는 보도를 부인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진보·보수 일제히 "정부가 비리 방치"...정부는 금감원 옹호

    바핀의 감독위원회 위원인 진보정당 소속 프랭크 셰플러 의원은 NYT에 "와이어카드 사태에 금융 당국의 구조적 결함과 인사적 결함 모두 책임이 있다"며 의회 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리의 징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핀이 15개월 동안 FREP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거대한 코끼리를 향해 솜뭉치를 쏘는 격"이라고 했다.

    정부 책임론에도 무게가 실렸다. 보수정당 알렉산더 라드완 의원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와이어카드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들어왔었고 그 기간도 길었던 만큼, 독일 재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며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업체들은 적절한 감독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이번 사태로 드러난 FREP의 한계를 인정하고, FREP과의 위임 계약도 조만간 취소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무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정부가 감시·감독 관련 규정을 어느 정도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고만 답했다고 NYT는 전했다.

    숄츠 장관도 "이번 조치가 모두를 숨통 트이게 하는 최선의 조치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면서도 이번 사태의 책임론의 중심에 선 펠릭스 후펠트 바핀 원장에 대해선 "그가 잘 해왔고 잘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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