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김훈 "인간의 시비(是非)는 끝이 없어... 나는 더 친절해지려 한다"

입력 2020.07.04 07:00 | 수정 2020.07.14 11:55

늙은 왕과 젊은 말 사이,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삶의 길은 글에 있지 않고, 길바닥에 있어"
"세상의 是非는 끝이 없어... 더 친절해지려 한다"
"73살, 흐리멍텅해지니 인간의 아름다움 보여"
"가부장적 시선? 여성의 생명 그렸을 뿐"
"코로나, 지도자는 국민에게 ‘가난한 미래’ 설득해야"

늙은 왕과 젊은 말 사이에 우뚝 선 김훈. 항상 백의종군해서 쓰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사진=고운호 기자
"…조용해. 절도, 폭행, 음주, 난동뿐이야. 늘 하던 지랄이야….아주 조용해…적막강산이지."

늦은 밤, 기자로 당직을 서며 고요한 사무실을 지킬 때마다 나는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의 한 대목이 생각나 뒷골이 서늘해지곤 했다. 붕괴의 냄새를 짐승처럼 척후하는 기자, 세상을 찌르고 싶은 욕설에 쩔쩔매는 신문사 당직 국장의 모습이라니.

오랫동안 기자였던 김훈은 기자를 정보를 수집하고 남을 염탐하는 자라고 했다. 의견과 사실을 구별 못 하는 기자는 사표를 써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27년 기자 생활 동안, 그는 (다양한 이유로)사표를 스무 번쯤은 썼다.

최근 한 강연에서는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더럽고 썩은 게 ‘말’이라고 했다. 곳곳에서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자들 때문에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복무하지 못하고 단절에만 기여한다고 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말들, 인기척, 그것만이 인간의 희망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재난을 돌파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김훈이 인간의 곁에서 문명과 야만을 함께 했던 ‘말들의 시간’을 기록한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냈다. 소설에는 유목과 농경으로 대결하는 어리석은 여러 인간과, 인간이 물린 재갈을 이빨에 박아넣은 총명한 여러 말들이 나온다. 어떤 시대를 특정하지 않았기에, 굳이 장르를 따져 묻자면 ‘환상 문학’이다.

스스로 ‘말의 경계’를 넘어가고 있는, 73살 문장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복부를 당겨 내는 웅장한 바리톤 목소리는 그사이에 녹이 슬어,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했다.

오랜만에 찾은 호수 공원 앞 일산 작업실은 변한 것이 없었다. 모자를 눌러 쓴 전등과 머플러를 두른 스탠드 밑에는 원고지와 몽당연필이 가득했다. 어수선하지만 무질서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물이 자리를 틀고 앉은 방식에 위트와 위엄이 있었다.

법전과 사전과 동식물 도감이 나란히 도열해 있고, 그 아래 지도와 나침반, 쌍안경을 넣은 검은색 탐험가방이 우뚝했다. 모자(갓)를 벗은 그의 머리는 염소 수염처럼 하얗게 낡아 있었다.

자신은 평생 ‘마구간의 말처럼 살았다’고 했다.

목구멍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듯 비장한 음색은 불투명해졌지만, 느린 문어체의 말투는 귀를 잡아당기는 힘이 여전했다./사진=고운호 기자
-건강은 어떠신지요?

"괜찮아요. 1월엔 좀 좋지 않아서, 병원을 들락거렸어요. 그때 본 놈들이 나를 곧 죽을 것처럼 써놨어."

살아서 순장될 뻔했다는 듯, 괘씸하다는 표정이었다. 관조의 미소가 아니라 장난기로 정적을 깨는 그의 웃음에 나는 자주 안도했다. 점잖기보다는 낄낄대는 듯한 김훈의 웃음은, 첼로 현 사이로 간간이 끼어드는 하모니카 소리 같았다.

-술은 안 드세요?

"거의 마시지 못해요. 술을 안 먹으니 답답하고 세상이 너무 환해. 어둑어둑해야 좋은데..."

-모자는 왜 전등 위에 걸어뒀나요?

"눈이 부셔서요. 나갈 땐 내가 쓰고 나가고 돌아오면 전등갓이 되는 거지(웃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그에게 팩스는 중요한 통신수단이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도 팩스 신호음이 삑삑거렸다. 간간이 울리는 구식 휴대전화의 폴더를 열어 ‘저는 김훈입니다. 누구세요?’라고, 깜깜한 저쪽 세계에 먼저 수신호를 보냈다.

-탈고는 어떻게 합니까?

"50장씩, 30장씩 되는 대로 갖다주고, 다시 오면 뜯어고쳐요. 원고지 쓸 때는 파지가 많이 생겨요. 생환율은 10%도 안 돼. 책이 나오면 다 잊어버려요. 출판사에서 원고 묶음을 책으로 만들어 가져오는데, 그 겉장조차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어요. 꼴도 보기 싫어서..."

그를 재회한 것도 10년 만이다. 강원도 화천에 새로 만든 나무다리 이름을 지어 주러 떠나던 여행길에 나는 동행했다. 그때도 소설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은 오자가 있다고 독자가 전화를 해줘요. 그래도 고치지 않아요. 나온 책을 다시 열어보기가 싫거든. ‘칼의 노래'에도 오자가 있었다는데, 그것을 출판사에서 고쳤는지, 나는 몰라요. ‘칼의 노래'에 옥수수가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나는 옥수수나무를 좋아해요. 난초보다 좋지요. 거칠고 억세잖아."

-가지런하면서도 원시적인 힘이 있지요.

"엄청난 에너지가 굽이치니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옥수수나무는 더 힘차고 아름다워요. 이순신 장군이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데, 항구에 환영하는 이가 하나도 없어요. 다 몰고 갔으니까. 그때 옥수수가 바람에 흔들리며 함대를 맞이하는 모습을, 내가 썼어요. 그런데 어떤 이가 옥수수는 임진왜란 뒤에 들어왔는데 ‘무슨 개소리냐’는 거야."

-저런!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들 옥수수를 뽑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을 수는 없잖아. 구불구불한 이파리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릴 때, 바람이 그사이를 헤집는 모습은 무엇도 대체할 수가 없어요. 옥수수는 우아하진 않지만 힘찬 나무예요. 1년생이니까 나무보다는 풀이겠지요."

모자를 쓴 전등.
-물건을 좋아하지요?

"좋아해요. 물건을 보면 생각이 뚫려요. 옥수수나무, 초원의 말(홀스), 이순신 장군의 칼… 물건을 안 보면 생각이 안 뚫려. 사물, 사건, 사태를 관찰하기를 책보다 더 좋아해요. 거기서 많은 걸 배우려고 해요."

길은 혓바닥에 있지 않고 땅바닥에 있다는 걸 증명하듯, 그가 펴낸 책들은 갈피마다 전쟁터를 휘젓고 다니는 말발굽 소리로 약동했다.

-현대사를 관통한 ‘마씨 집안' 이야기를 그린 전작 ‘공터에’의 표지도 말 그림입니다. 선생은 늘 ‘내 아버지(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광주)가 말의 느낌이다’라고 했지요.

"아버지는…, 내 아버지는 폐마 같았어요. 인간을 태울 수도 짐을 실을 수도 없는 그런 말의 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어요. 시대에 의해 짓밟힌 사내지요. 아버지는 1910년생, 한일합방이 되던 해에 태어났고, 나는 1948년생, 망한 나라를 일으켜 정부 수립을 하던 해에 태어났어요. 그 두 시점이 운명의 십자가처럼 박혀서 우리는 도망갈 수가 없었어요. 십자가를 짊어지고 아버지는 폐마로 살았어요. 최근에 내가 쓴 소설은 광야를 달리는 말이죠."

-선생은 어떤 말이었습니까?

"나는 마구간 말이었어요. 초원을 그리워하는 마구간 말이지. 현실은 마구간이고 꿈은 초원이었어요. 허허. 비극적인 말입니다."

-말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보입니다.

"15년 전에 미국에서 야생마를 봤어요. 인디언 보호구역 그랜드캐년 남쪽의 황폐한 마을이었어요. 말들이 어둠 속에 잠겨있었어요. 멋있고 지혜롭게 생긴 말이었죠. 강하고 아름답고 점잖았어요. 인간을 등에 싣고 전쟁을 하지만, 말은 적과 싸우지 않아요. 개들은 적을 물어뜯죠. 말은 덕성을 가진 존재예요. 인간의 문명과 야만의 시기에 동반자로 수만 년을 살았어요. 그런 말을 보고 써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어요."

충동이라는 말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말(言)과 말(馬)이 담금질과 충동질을 거쳐 김훈의 몸에서 수정되고 해산한 소설이 바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다.

김훈 문체의 힘과 아름다움이 집약된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유목민이 세운 초(草)나라와 농경민이 세운 단(旦)나라가 벌이는 전쟁을 그리고 있다.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중에서.

-소설을 읽고 난 후엔 무척 아름다운 것을 읽고 보았는데, 정작 무엇을 읽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에요.

"몽환적인 느낌이 있을 겁니다. 내 마음속에 엉켜있던 것을 논리적이랄 수 없는 전개로 펼쳐냈어요."

-소설 속에서 말 달리는 자들은 배부르게 먹지 않고 몸이 가볍고 죽음에 유난 떨지 않는 데 비해, 땅에 들러붙어 사는 자들은 배불리 먹어 똥냄새가 들척지근하고 돌무더기로 악착같이 성과 무덤을 쌓아 위세를 떠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비록 허구이지만 이야기의 전능자로 그 돌무더기를 다 치우고 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치워진 게 아니에요. 쓰레기가 남은 거죠. 초의 왕이 그 돌을 전부 없애라고 한 건 그들이 인간의 직접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시비(是非)는 끝이 없어요. 그 옳고 그름의 싸움은…"

늘 한결같은 복장의 김훈./사진=고운호 기자
-강가에서 홀로 소멸해가는 늙은 왕을 읽을 때는 선생의 몸이 겹쳐 보이더군요.

"그 왕은 여기가 아닌 저기로 가는 사람이에요. here and now가 아닌 곳으로."

열어놓은 대문으로 장마철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들이쳐 흰 머리카락이 자주 흐트러졌다.

-‘공터에서’를 쓰고나서는 "나는 평생 철거되는 가건물에 사는 것 같았다"고 했는데요.

"가건물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은 현대사를 통과한 내 몸의 감각이었죠. 남의 집 셋방에 엉거주춤 걸치고 앉아 사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야생의 말도 지붕 없이, 눈과 비와 별빛과 달빛을 받으며 노숙합니다. 자신을 농경민보다 유목민으로 인식하고 있지요?

"그들은 삶에 대한 인식의 직접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유목은 내가 신성하게 여기는 생의 감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몸의 감각을 소중히 여기는 문명이에요. 우리는 유목적인 정서를 상실했어요. 내가 보기엔 문명의 타락인데 그걸 문명의 발전이라고 해요. 생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각은 매우 건강하고 중요한 거예요."

-문명화될수록 인간의 감각은 둔해지고 간접화되기 마련이죠. 직접성의 감각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살아있는 몸으로 계속 감당해내야죠. 몸속의 기쁨과 관능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나는 사람이 모이는 데는 잘 안 가요. 제일 싫어하는 곳이 백화점이고 구둣방이야. 번쩍거리는 곳, 종업원들이 너무 친절하고 싹싹한 데는 피해요."

-어떤 공간을 좋아합니까?

"강가나 풀밭이에요. 흘러가는 것 옆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 청년일 때는 산을 좋아했어요. 마약 같았지. 신록이 짙어지는 봄 산은 정말 마약이에요. 비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리면, 밤에도 생각이 나서 혼자 등산 장비 챙겨서 산에 갔어요. 한밤에 맨 몸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 정말 좋았지. 짐승 같고 야생동물 같았어요."

짐승이거나 야생동물 같았을 자신을 상상하는 모습에, 몸에 불을 켠 것처럼 사위가 환해졌다.

“저는 참 순한 사내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김훈./사진=고운호 기자
-최근에 선생을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으로 표현한 글을 읽었어요. 그 말에 동의하는지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나는 마구간의 말이었다니까. 사람이 죽지 않고 사는 건, 어떤 놈의 생이건 그건 타협이에요. 그렇다고 내가 ‘길들지 않은 모습으로’ 비친 것도 이해를 못 하는 바는 아니에요. 나는 세상과 불화하는 모습이 건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억지로 화해하기보다 불화인 채로 사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남은 생애는 길들여지려는 각오를 갖고 있어요. 잘 길들여지려고 해요(웃음)."

-길들여지겠다니, 누구에게요?

"글쎄요. 저는 참 순한 사내가 되고 싶어요. 순하다는 말 좋지요? (착하게 웃으며)친절한 게 얼마나 좋아요. 내가 이룩하려는 목표는 친절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늦게나마 깨달은 게 다행이죠. 만각(晩覺)입니다. 다행히 불각(不覺)까진 안 갔어요. 깨닫기 어려운 놈은 난각(難覺)이고, 먼저 깨달으면 선각(先覺)이지요."

-친절을 몸으로 깨친 ‘선각자'는 여성이 아닌가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여성은 인류의 축복이죠. 생명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현의 노래'에서 순장을 피해 도망가서 오줌을 누는 여성에게 저는 생명감을 느꼈어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나 문정희 시인의 시 ‘물을 만드는 여자’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한편에서는 선생의 여성관이 가부장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순장되려다 도망치는 여성은 비천한 계급이에요. 이 여자가 탈출하려는 동기가 스승의 가르침이나 이념적 가이드가 아니에요. 그 여자는 오줌을 누는 순간 생명의 자각이 드는 거예요. 고유한 본능이지요. 그런 과정이 몰이해에 처한다면, 나는 이러고 저러고 말을 할 수 없어요. 그 여자가 종교지도자나 샛별의 계시를 받아 탈출했다면 그건 후진 이야기에요. 안 쓰는 것만 못한 거죠."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단편 ‘언니의 폐경’에서 생리 처리 묘사가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어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화장’에서 전립선 환자의 혈관과 요도를 잇는 수술을 묘사할 때는 혀를 내두를 만큼 사실의 바탕이 튼튼했는데요.

"(어두워지며)그 작품은 소멸되어가는 생명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시선으로 썼어요. 생리에 관해서는… 내가 쓴 건 소설이에요. 소설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옥수수를 사랑하는 자에게 대신 배추를 심으라고 다그치는 것 같아, 더 묻기를 그만두었다.

“냄새는 짐승의 감각이에요.”/사진=고운호 기자
-요즘엔 어떤 감정 상태가 선생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는 나에 대한 불만과 짜증, ‘왜 이 모양인가'하는 감정입니다(웃음). 또 하나는 공원에 나갔을 때의 미칠듯한 행복감이죠. 공원에 가면 물고기와 거북이, 새가 있어요. 오리를 유심히 봐요. 오리는 철새인데,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호수에 정착했어요. 힘써서 사냥하지 않고, 먹이를 받아먹는 놈으로 퇴화한 거죠. 그놈도 안 거야. 인간처럼 돌멩이 쌓고 사는 게 편하다는 걸(웃음)."

-달을 볼 땐 무슨 생각을 하나요?

"달을 보면, 알아요.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걸. 모르는 게 많다니, 얼마나 신이 납니까. 살아볼 만 한 거죠."

-강가나 풀밭을 좋아하는 말처럼 선생도 생명을 냄새로 맡는 것 같습니다. 피 냄새, 물 냄새, 비린내, 풋내, 정액 냄새, 삭은 젖 냄새, 지린내… 냄새에 관한 문장을 자주 쓰는 이유는 뭐지요?

"냄새는 짐승의 감각이니까요. 시각은 이성적이에요. 먼지 가까운지, 위험한지 안전한지를 판단하죠. 반면 어떤 냄새가 향기롭고 불쾌한가는 본능이에요. 꽃에는 벌이 꼬이고 똥에는 파리가 꼬이는 것과 같죠. 안타깝게도 냄새에 관한 한글 표현은 너무 빈약해서 늘 다른 걸 끌어와야 해요."

-하지만 초승달에서 풋내가 난다는 문장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그 냄새가 맡아집니다.

"(싱긋 웃으며)보름달에서는 두터운 냄새가 나요. 어떤 초승달에선 비린내도 나고요. 감각이 자기기만을 하는 거죠. 자기 판타지로 자꾸 그런 거짓말을 써도 되나 싶어(웃음)."

전작 ‘공터에서'도 말 그림이 표지다.
-글을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오지요?

"어깨에서 나와요. 손가락을 지나 연필 끝으로 이어지는 힘의 축선이 있어요. 그 근원이 어깨야. 중요한 거죠. 지금은 오른쪽 어깨가 내려앉았어요. 구부정해진 거죠."

미세먼지가 많아 자전거는 끊었다고 했다. 방 중앙에 있는 실내 자전거를 가리키자 "저 실내자전거는 말이 안 돼. 창피한 일이에요"라며 헛웃음을 웃었다. ‘길들여 지지 않는 말’ 김훈이 실내자전거를 타고 도돌이표 폐달을 밟는 모양을 생각하니, 실로 코미디 같아 함께 히죽거렸다. 한때 그가 휴대폰 벨 소리를 ‘히히힝’ 말 울음소리로 했던 게 기억났다. 유목의 피를 잠재우는 정주민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로서 자신을 황석영이나 조정래처럼 전체를 보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고 했어요. 현대사를 그린 전작에서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냅과 잽과 크로키 기법을 사용해서 글을 썼는데, 이번에 사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언어는 정보를 전하고 서사를 이어가는 기능을 해요. 그런데 나는 이번에 언어를 그림물감처럼 썼어요. 화가가 물감을 찍어 바르듯 원고지에 두껍게 칠해갔어요. 자음과 모음을 으깨서 발라놓은 거예요. 물감 안에 이야기와 정보가 흘러 들어가도록 전략적으로 설계를 했어요."

글자를 그림물감처럼 썼다는 말이 실감 났다.

김훈의 몽당연필.
-종종 선생의 소설에 그어진 연필의 길이 인상파 화가들의 붓끝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가들은 팔레트에 밀가루와 기름을 섞어서 색과 질감을 만들어내잖아요. 화가가 자기가 원하는 색깔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고 위대해요. 글과 비교해 그림은 얼마나 직접적이에요. 무지개가 7가지 색이라지만 사실 수만 가지 색이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죠. 우리가 빨강, 파랑, 노랑이라고 할 때 그건 개념이잖아요. 진짜 색은 운동태로 전개되는 과정이거든. 그래서 이번에 언어를 흐르듯이, 색을 바르듯이 뭉개자, 그런 수를 쓴 거지요."

-사북 탄광촌을 그린 오치균 화백에 관해 쓰신 글이 떠오르네요.

"그 사람은 붓도 쓰지 않고, 나이프로 물감을 푹 떠서 바르더구만(웃음)."

-소리로 치면 서편제보다 뼈 맛이 살아있는 동편제 같은 글, 주어와 동사로 밀고 가는 힘 있는 글을 써왔는데요. 73살의 문장은 어느 쪽에 있다고 느낍니까?

"지금은 눌러서 경계를 뭉개 버렸다고나 할까요."

김훈의 글은 지우개 가루에 떠밀려 간 더 많은 자음과 모음들을 떠올리게 하는 아득한 글이다./사진=고운호 기자
-‘내 몸이 알고 내 생애가 검증한 단어로만 글을 쓴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지요?

"말을 장악해야 부려먹을 수 있어요. 시골에서 농부가 밭을 가는데 소가 말을 안 듣는다고 때려요. 알고 보니 자기 소가 아니라 옆집 소를 빌려왔어요. 자기 것이 아니면 제대로 부릴 수가 없는 거죠. 나도 부려먹을 수 없는 말이 있어요. 내가 추구한 건 한글의 논리성을 강화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한 것을 추구했죠.

영어나 독일어를 배울 때 배운 놀라움을 한글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어요. 독일어가 가진 정확성, 대상을 규정하는 힘이 부러웠죠. 한글은 나에게 여전히 불편한 언어예요. 하지만 모국어는 그 사람의 팔자죠.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 태어난 것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인 것처럼. 모국어도 운명이에요."

-결과적으로 한글은 김훈이라는 사공 혹은 기수를 만나서 멀리 나아가며 이쪽저쪽 다 깊게 품는 움직임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너른 어법에 갇혀서 같은 자리에서 맴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없습니까?

"맴돈다… 그런 느낌이 있지요. 깨고 나가려는 생각은 있었어요. ‘한 시대나 삶 전체를 들여다보는 시각이 나한테 부족하구나, 아니 거의 없구나’ 그런 느낌을 정확히 알지만 쉽게 넘어설 수 없어요. 그건 나의 운명이에요. 가수의 음색, 악기의 음률이 타고난 팔자인 것처럼, 나는 그런 시야와 질감을 타고난 거예요."

-작가의 음색이 문체라면, 많은 독자가 선생의 목소리를 좋아합니다. 3인칭에도 1인칭의 긍휼한 마음이 닿아있어서죠.

"에세이를 쓸 때는 1인칭이라 편해요.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야기라 3인칭을 구사해야 하는데, 사실 내가 쓰는 3인칭은 전환이 덜 돼서 1, 2인칭에 머문 미개한 종자가 아닌가 싶어요. 쓰면서 알죠. 이걸 어쩌나. ‘그'라는 인칭은 작가가 어떤 놈인지 다 알아야 해요. 나는 등장하는 여러 놈을 완전히 알기가 힘들어요. 3인칭을 구사하는 건 신의 경지예요."

자신은 미발육상태의 모호한 인칭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김훈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다 김훈인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이유다. 말과 사람이 섞여서 등장하는 이번 작품에 대해서 ‘그것은 말의 언어인가, 사람의 언어인가' 물었더니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결국은... 나의 언어죠."

법전을 펼쳐보는 김훈./사진=고운호 기자
‘...저것이 나의 주인이로구나… 주인은 늘 나를 타고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달리는구나. 이쪽에서 저쪽을 달리는 인간들이 있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리는 인간들도 있어서, 서로 부딪혀서 인간들의 세상은 일어서고 무너지는구나’-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중에서.

-인간의 말을 기록한 책 중에서는 어떤 것이 흥미로운가요?

"법전을 좋아해요. 법전중에서 민법과 상법은 재미가 없어요. 민법과 상법은 이익을 놓고 다투잖아. 형법은 인간의 행위를 다뤄요. 범죄가 되느냐 마느냐를 언어로 따지죠. 명석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요. 형법 1조 같은 문장을, 그 문장이 의미하고 있는 내용을 좋아해요. 1조는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두꺼운 법전을 꺼내와서 읽어준다)‘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형법의 가장 높은 이상을 설명한 문장이에요. 행위에 해당하는 법률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어요. 행위가 일어난 그 시점 이후에 법이 나와도 소급해서 처벌할 수 없어요. 법은 인간의 행위가 우아한가 치사한가를 따질 수 없어요. 오로지 위반했는가만 따져요. 주어와 동사의 세계지요."

주어와 동사로 책 속에 길을 내는 사람임에도 그는 책으로 세상을 배운 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 자들은, 사물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부지런에 비하면 허송세월을 하고 있어요. 삶의 고민은 책에 있지 않아요. 책과 세상 사이에 있죠." 그 자신, 책과 세상 사이를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지 그것을 괴로워할 뿐이라고 했다.

-영화 ‘남한산성’은 보셨나요? ‘남한산성’에서도 공허하게 부딪히는 인간의 말에 비해 화친의 길을 내러 청의 군막으로 흙길을 달리던 최명길의 말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책 속의 추위를 표현하느라 사람의 입도 말의 입도 허연 김을 내뿜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봤어요. 나는 생전 극장엘 안 가는데 ‘남한산성'은 우리 딸이 제작을 해서, 끌고 가서 봤어. 그 영화는 정성을 많이 들여서 만든 영화더군요. 감독이 내러티브를 더 부수어도 좋았을 텐데 소설에 의지해서 성실하게 만들었어요. 폭력도 자제하고 인간이 드러나게 잘 그렸어요."

-배우들은 김훈의 글이 자기 입말로 나올 때 감격했다고 합니다. 최명길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가 참 좋았지요?

"(무심하게)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요. 영화를 안 보기 때문에 배우는 모릅니다."

‘보편'과 ‘개별 '사이에서 능지처참당하는 생명의 비명이 그가 쥔 연필의 동력이었다./사진=고운호 기자
한점의 정보도 담겨있지 않은 아득한 눈빛이었다. 그저 오랜만에 극장에 갔더니 젊은이들이 컴컴한 데 앉아서 마소처럼 기름진 팝콘을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웃었다. 문명의 꽃인 기계와 매스미디어를 벌레 보듯 싫어하는 김훈. 기계를 만지기 싫어 뉴스도 라디오로 겨우 듣는 그다. 작업실 한쪽의 티볼리 라디오를 가리키며 장식이 없고 실용만 있으니, 좋은 디자인이라고 미더워했다.

"되도록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공항이나 전철역에서 티켓을 끊어야 할 때는 난감해요. 친절하게 생긴 젊은이한테 부탁해도 요즘엔 다 자기를 해칠까 봐 경계부터 해. 그래서 택시 운전사가 참 고마워. 어떤 놈이 돈 준다고 날 흔쾌히 데려다주겠어요."

-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젊어서도 늙은 척'을 해와서, 70대가 된 선생의 진짜 늙음이 저는 놀랍습니다.

"젊을 때부터 늙은이 행세를 했죠. 조로라는 말을 즐겨 썼어요. 진짜 늙으니까(웃음), 흐리멍텅해. 나와 외계 사이에 구별이 안 돼요. 그전에는 나라는 틀 안에서 잘난 척하고 내 언어를 관리하고 남을 깔보고 자의식의 성벽을 지켰어요. 늙으면 그게 무너지고 흐리멍텅해져요. 진짜예요. 그 흐리멍텅함이, 나는 너무 좋아요."

기분 좋게 낄낄거리는 웃음이 이어졌다. 야생동물 같은 자신과 흐리멍텅해진 자신의 모습이 기쁨의 등가를 이루는 듯했다. 산전수전도 유전된다고, 날 때부터 늙어 보이는 물범이나 낙타의 얼굴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이해가 됐다.

-흐리멍텅해지니 뭐가 보이던가요?

"지금까지 못 보던 게 보여요. 나는 이 앞 호수공원에 나가서 몇 시간씩 앉아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는 거죠. 개를 데리고 가는 어린아이를 보며 ‘인간이 참 아름답다’는 걸 느껴요.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지나가고, 늙은 부부가 휠체어를 밀며 지나가죠.

정신이 명료하지 않은 자식을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 어머니가 있어요. 어느 날, 그 아이가 수련을 보고 좋아라 하니 그, 어머니가 기뻐하며 나를 불러요. "우리 애가 꽃의 아름다움을 안다"고요.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멍청해지니 그 모습이 보여요. 흐리멍덩해지니 겨우 보여. 그동안 헛산 거지(웃음)."

젊은 시절의 김훈. /사진=조선DB
‘늙은’ 김훈은 요즘 더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다. ‘이념의 구호’가 있는 광장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깨져 죽은 일용직 노동자, 산업 재해 노동자들을 위한 시민 집회 현장에서다. 청와대 앞에서 마이크를 쥐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신문사 기고, 방송국 인터뷰 등 전방위적인 공법으로 ‘산업재해에서 인명을 구하라’고 눈물겹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일체의 깃발과 집단행동을 멀리하며 ‘단독자’로 늙어온 김훈 곁으로, 피흘리고 깨진 젊은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다가왔다.

-어린 시절, 6.25 피난길에 기차 타고 갈 때, 부자들은 객실에 피아노와 셰퍼드까지 싣고 가는데, 가난한 이들은 기차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으깨죽었다고 분개하셨어요. 혹 그런 야만의 풍경이 가슴에 남아, 안전장치 없이 떨어져 죽는 생명을 구하자고 거리에 나선 것인지요?

"피난 기차는 세 살 때 탔어요. 그 이야기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는데 당시 신문을 찾아봤더니 사실이었어요. 내가 태어난 조국이 그런 나라라는 걸 알았죠. 나라가 아니라 지옥이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게 아무런 필연성이 없고, 그저 재수가 좋았을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오직 남보다 럭키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게 너무나 슬프고 견딜 수 없었지요.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이어지는 산업 재해도 그렇고, 몇십 년이 흘러 잘살게 되었어도, 내 존재의 근거가 오직 ‘재수’였어요. 기막힌 일이죠. 허무한 일이에요. 목숨의 근거가 없다는 건 슬픈 거예요.

내가 속한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모임은 젊은 활동가들이 평생을 헌신하며 일한 시민단체예요. 나는 공동대표 11인 중 한 명이에요. 나는 젊은이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미는 데로 밀려가는 무력한 늙은이에요. ‘집회 나와라' ‘글 써와라' 그러면 해. 너무 더울 때 오라고 하면 못 가. 늙었으니까(웃음)."

-‘늙은이’가 젊은이 생명을 구하자고 앞에 서니, 눈물이 납니다.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다행히 내일 국회에서 의원 26명이 ‘생명안전포럼'을 열어요. 국회 등록단체가 되면 입지가 넓어지고, 사회적 발언을 꾸준히 하면 변화가 있겠지요. 그 오프닝 멘트는 다 써놓았어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했던 마지막 말, ‘우리는 숨 쉴 수 없다’가 제목이에요."

길바닥 위에서 길을 내는 자의 분투가 느껴졌으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 부디 나를 크게 내세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각오와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사진.
-문명과 야만과 생명의 아우성에 대해 써왔는데,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 재난에 대해 더 깨달아지는 게 있습니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몇 가지는 알게 됐어요. 첫째, 인간의 살균 능력으로 바이러스를 영원히 박멸할 수는 없다. 둘째, 마스크와 손 씻기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은 엄청난 효과가 있지만, 그걸 완벽히 지키려면 먹고 살 수가 없다. 셋째, 백신과 치료제는 기약할 수 없고 나오더라도 국가 간에 그 특허 문제는 복잡해질 것이다.

국경을 닫고 대문을 잠그고, 나만 차단하고 싶다는 욕망이 부질없다는 걸, 지난 몇 달간 우리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개별적 인간의 생명과 밥상이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옛날처럼 잘 먹고 잘살겠다는 기대를 버려야 해요. 가난하고 불편해지는 미래를 받아들여야죠. 고통의 총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올바른 지도자라면 국민에게 이 어려운 말을 해야 해요. 고통을 함께 짊어지자고 설득할 용기와 도덕성을 보여줘야죠. 좋은 지도자는 권력을 잃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문득 작업실 벽에 걸려 있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형되기 몇 시간 전에 어머니가 지어준 한복을 입고 찍은 모습이었다. "32살의 안중근이에요.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는 32살 청년의 얼굴이죠. 잡혔을 때는 초조한 기색이 있었는데, 저 얼굴은 편안해요. 자기 몸으로 직접 악을 응징하고 간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김훈이 쓰는 주어와 동사가 지닌 서정의 깊이는 가늠할 수가 없다. 점점 더 동사의 세계로 나아가는 김훈./사진=고운호 기자
73살 김훈의 얼굴에도 초조한 기색이 없었다. 생로병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사할 때까지 당신이 쓸 수 있는 작품은 3개 정도라고 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구호가 선명했던 녹색 칠판엔 언젠가부터 ‘必日新’이라는 한자가 쓰여있다. 갑자기 새롭게 깨우쳐지는 법은 없다고 했다. 몸은 늙고 시야는 흐리멍텅해졌으나, 닦고 조이고 기름친 그의 두 발은, 그 발이 향하는 목적지는, 점점 명료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 없는 식당에서 양고기와 반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마스크를 쓰고 휘적거리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강을 무덤 삼아 떠나는 새벽녘의 늙은 왕 같기도 했고, 두 발을 위로 솟구치며 달을 향해 달리는 한밤중의 말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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