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품 ‘한정판 마케팅’ 생각나게하는 부동산 정책

조선비즈
  • 유한빛 기자
    입력 2020.07.01 10:21

    "서울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싼 겁니다. 규제 나오면 더 오를 거예요."

    무주택자인 기자가 지난주 휴가를 틈타 공인중개업소에 연락을 돌리다 들은 말이다. 며칠 전에 봤던 매물은 이미 팔렸다는 답과 함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최근 패션 브랜드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며 벌어진 ‘샤넬 대란’이 떠올랐다. 당시 휴가를 내고 매장으로 달려간 친구의 설명과 몇 단어만 바꾸면 똑같은 문장이다. "샤넬백은 오늘이 제일 싸대. 인상설 나오면 구하기 더 힘들고 비싸져."

    현 정부는 출범 이후 21번에 걸쳐 부동산 안정책을 내놨다. 정책 기조는 한결 같다. 대출을 막고, 매매 자금 출처를 확인하고, 청약 요건을 강화하고, 매매 차익 과세를 강화하는 것. 한 마디로 집을 쉽게 사지 못하게 하는 방향이다. 그럼에도 부동산정보 카페나 중개업소에서는 ‘정부 규제=집값 상승’이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개가 유독 끄덕여지는 대목은 정부가 ‘한정판 마케팅’의 대가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다. 헝거(hunger) 마케팅이나 희소 마케팅으로도 불리는 한정판 마케팅은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못 살 것’이라는 불안감과 구매욕을 자극하는 홍보 전략이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수도권 집값이 뛰는 상황에 빗댄 얘기다.

    실제로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은 ‘개수·기간·가격·장소’를 제한하는 한정판 마케팅의 필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우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기준 강화 등으로 도시정비사업을 규제하면서 주택 수요가 많은 서울의 아파트 공급량을 제한했다. 대출 규제와 자금조달 증빙 등 매매 요건을 강화하자 실수요자에게도 ‘지금 사지 않으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박이 생겼다.

    시세별 대출 한도 제한에 이어 토지거래허가제까지 발표되면서 현금 부자가 아니면 살 수 없게끔 서울 주요 지역에는 가격 진입장벽이 생겼다. 규제지역의 15억 초과 아파트는 정부가 공인한 고급 아파트로 격상됐다. 마지막으로 조합원 분양이나 아파트 청약,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 등을 강화하면서 실수요자라도 주택을 매매하거나 청약할 수 있는 지역이 좁아졌다. 그 결과는? 한정판 제품에 웃돈이 붙어 팔리듯, 수도권 아파트값이 꾸준히 뛰고 있다.

    정부의 수도권 아파트 한정판 마케팅이 가장 잘 먹혀든 연령대는 30대다. 올 들어 서울 주택 매매시장의 큰 손이던 40대를 제쳤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29%를 30대가 매수했다. 한창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나이대인만큼 주택 자금은 대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최근 2년(2018년 6월~2020년 5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 자료를 보면, 30대가 전체의 35.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 집값 안정에만 집중해 고안한 규제들이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지금 사지 않으면 내집 마련은 영영 어려울 것’이란 한정판 마케팅 전략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정책의 틀을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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