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사태'로 들끓는 탈북민 사회… “北 주민도 실상 알아야” vs “갈등만 유발”

조선비즈
  • 이은영 기자
    입력 2020.06.30 14:05

    "과거 북한군에서 복무할 때 ‘남한 사람들은 한여름에 피서를 간다’는 삐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삐라가 닿지 않는 윗 지방에서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탈북민 A씨)

    "북한 주민의 알 권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남북 관계와 국민 안전보다 우선한 권리는 아니라고 본다." (탈북민 B씨)

    최근 탈북민 단체가 정부와 지자체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전단지, 쌀, 메모리카드 등을 풍선과 페트병 등에 담아 보내 논란이 되면서 탈북민 사회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부 탈북민은 남북 정세만 악화시키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2016년 4월 2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날리는 모습. /연합뉴스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31일 대북전단, 메모리카드, 미국 달러화 지폐 등을 대형 풍선에 달아 북으로 보낸 데 이어 이달 8일에도 다른 탈북민 단체 ‘큰샘’과 함께 쌀을 담은 페트병을 보내려다 주민의 반발로 실패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22일 밤에도 경기 파주에서 기습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북한에서는 이에 반발해 이달초부터 대남 항의 집회가 이어졌다. 이들은 탈북민을 ‘민족반역자’ ‘역적무리’라고 부르며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했다.

    ◇ 찬성측 "나도 삐라 보고 눈 떴다… 北 주민 알 권리 위해 계속돼야"

    여러 탈북민들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북전단 살포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북전단이 북한 주민들이 내외 정세를 알게 하는데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평양 출신 탈북민 김모(51)씨는 "70년대에 삐라를 처음 봤는데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르겠다가 군대에서 대북방송을 듣고 ‘북한이 이렇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며 "전단지에 적힌 내용보다도 종이가 반질반질한 게 북한 종이와 질이 다른 걸 보고 많은 게 느껴졌다"고 했다.

    전단지 살포, 쌀 페트 보내기와 같은 방식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함경북도 출신 이모(46)씨는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남한 관련 각종 자료가 담긴 USB, CD 등을 드론으로 날려 평양같은 내륙까지 닿았으면 좋겠다"며 "내가 탈북 전에 삐라를 보고 6·25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처럼 북한 주민들이 실상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양시 청년공원야외극장에 모인 북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주먹을 불끈 쥐고 군중집회를 하고 있다. ‘민족반역자이며 인간 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죽이라’라고 쓰인 대형 선전물도 걸려 있다. /연합뉴스
    ◇ 반대측 "대북전단은 갈등만 유발" "北 남은 가족, 보복당할까 두렵다"

    반면 현행법에 저촉되는데다, 애초부터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대북전단 살포와 쌀 보내기 등을 반대하는 탈북민도 많다. 일부 탈북민은 대북전단 살포로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탈북민 사회 전체가 눈총을 받게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대북 전단 살포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법은 현재로는 없다. 지난 2015년 대북 전단 살포를 막아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기각한 적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은 시민의 안전이 위험한 경우 경찰이 억류·피난 등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도 지난 12일 대북전단 살포를 도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 경기 연천 지역 등 북부지역 5곳을 ‘위험지역’으로 설정하고 대북전단 살포 관련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명령 위반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 조치가 내려진다.

    평안북도 출신 탈북민 홍모(47)씨는 "남한에서 넘어오는 전단지나 사탕, 과자 등을 발견하면 나뭇가지로 주워다 버리도록 하는 수칙이 북한 내부에 있다"며 "남한 실정은 이미 드라마 등을 통해 다 알고 있는데 누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단지를 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대북전단을 통한 선전 활동은 이미 효력을 다했다"며 "일부 탈북민 단체의 무리한 대북전단 살포는 결국 남북 정세만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함경북도 출신 김모(51)씨는 "북한에서 우리들을 ‘반역자’가 아닌 ‘탈북자’로 명명한 지 20년인데 이번 군중 집회에서 전체 탈북자를 싸잡아 ‘민족반역자’ ‘인간쓰레기’ 등으로 부르더라"며 "탈북민들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비난한 건 이번 군중집회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김씨는 "남한으로 건너온 탈북자가 3만명인데, 북한에 남아있는 연고자가 적어도 한 사람당 10명씩은 되지 않겠느냐"며 "남북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들이 혹여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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