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조현범 승계는 어떻게? 경영에선 손 떼고 최대주주로 역할할 듯

입력 2020.06.30 11:33 | 수정 2020.06.30 15:18

재계 38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이 기습 작전 방식으로 후계 승계 작업에 돌입, 재계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은 지난 26일 돌연 둘째 아들인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에게 자신의 지분 23.59%를 모두 매각 형태로 넘겼다. 이 사실은 29일 알려졌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30일이 되어서야 대주주 지분 변동을 공시했다. 회사가 최대 주주가 바뀌게 된 것에 대해 ‘깜깜이’식으로 대응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장녀 조희원씨는 아버지의 지분 매각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총괄부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한국타이어
재계에 다르면 조현범 사장은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2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을 통해 조 회장이 보유했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를 매입했다. 주관사는 NH투자증권이고, 매매금액은 3000억원대로 추정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국내 최대 타이어회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배터리 회사 한국아트라스BX 등을 주력 계열사로 하는 지주회사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1986년 계열 분리하면서 그룹이 만들어졌다.

조현범 사장이 조양래 회장의 지분을 모두 물려받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후계 구도는 조현범 사장으로 기울게 됐다.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은 19.32%, 장녀인 조희원씨의 지분은 10.82%로 두 사람 지분을 합치면 30.1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7.74%) 등을 끌어들인다 해도 경영권을 빼앗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조양래 회장의 의중이 조현범 사장에 있음을 분명히 한 조치라는 해석이 재계 일각에서 나온다.

◆조양래 회장의 전격적인 지분 매각… 최대주주 변경됐는데 공시는 4일만에 나와

이번 지분 매매 과정은 통상의 대기업 승계와 비교할 때 이례적이다. 보통 대기업은 지분을 나눠 가진 대주주 일가 내부의 싸움을 피하고, 전문경영인(CEO) 장악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 후계 승계 명분을 쌓는다. 핵심 계열사와의 긴밀한 소통은 필수다.

그런데 조현범 사장의 승계는 조 사장이 법적 문제로 오랫동안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한국타이어 실적 악화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향후 승계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 사장의 지분 취득에 대해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최대주주 변경 상황에서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곧바로 관련 공시를 하지 않고 4일이 지나서야 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최대주주 변경 공시가 곧바로 이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규정에 의하면 지분이 5% 이상인 대주주가 추가로 1%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체결일로부터 5일 이내에 관련 사항을 공시하도록 되어있다.

이 같은 의문에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이번 최대주주 변경은 조양래 회장의 전격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한국타이어 제공
조현범 사장, 재판 중인데 경영 가능한가… "최대주주로 역할할 듯"

무엇보다 이번 지분 매각에 대해 ‘미스터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조현식 체제’를 뒤흔드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현범 사장이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조현식 부회장이 단독으로 이끄는 상황이었다.

반면 조현범 사장은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거래관계 유지를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영진은 회사 복귀가 금지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2심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사실 관계를 다투어 형을 크게 감경받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일각의 기류다. 한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조현범 사장도 경영권 자체에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대주주로서의 역할만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대주주로서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이양받는 것뿐이라는 게 조현범 사장 쪽의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분 승계를 왜 지금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주력 회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부실한 실적 때문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영업이익은 2016년 1조1000억원에서 2017년 7900억원, 2018년 7000억원, 2019년 5400억원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지난 17일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대·기아차 상품본부장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한국 테크놀로지그룹 조현식 부회장,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수일 사장/현대차 제공
◆장남 조현식 부회장 경영 체제 변화 불가피

한국타이어 실적 악화는 현대차 신차용 타이어 공급이 막힌 후 부터 두드러졌다. 현대차는 2015년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한 신형 제네시스(BH)를 출시했다가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가 발생하자 4만3000대 규모의 리콜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양사의 사업상 관계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타이어는 현대차그룹의 신차용 타이어 공급을 잇따라 놓쳤다. 최근 출시된 팰리세이드에는 브릿지스톤과 미쉐린 타이어, 쏘렌토는 콘티넨탈 타이어가 장착됐다. G80에는 피렐리와 콘티넨탈 타이어, GV80에는 피렐리와 미쉐린 타이어가 장착됐다.

서먹했던 현대차와의 관계는 최근 조현식 부회장이 메우는 듯 했다. 조 부회장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을 찾아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한국타이어가 충남 태안군에 건설하고 있는 첨단주행시험장 내에 현대차그룹 드라이빙센터를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조 부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조현범 사장으로의 갑작스런 승계 과정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현대차 사이의 ‘화해 무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손잡고 건설하는 주행시험장 겸 드라이빙센터. /현대자동차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된 적잖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올해 초 신사업 추진과 공격적 인수합병(M&A)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분간 보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현식 부회장은 말했다. 조현식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조현범 사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현범 사장은 적극적인 M&A와 신사업 추진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라는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바꾼 것도 조현범 사장의 작품이다. 연초 임원인사에서 조현범 사장의 측근 몇 명이 옷을 벗기도 했다. 그러나 조현범 사장이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향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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