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여성에게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뒤 달아났다가 붙잡힌 3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또 기각됐다.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정도, 수사의 진행경과 및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추어 보면, 피의자가 새삼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부장 김태균)은 15일 오후 상해 혐의를 받는 이씨의 두 번째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제출된 수사기록에 의하면 범죄혐의사실이 소명되고, 본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내용과 정도 등에 비추어 사안이 중대하다. 그러나 피의자의 주거 일정하고, 기록과 심문결과에 의하여 확인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이모(32)씨가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범죄혐의사실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대부분이 이미 충분히 수집된 것으로 보이고, 피의자 역시 객관적인 사실관계 자체에 대하여는 다투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의자는 그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함과 아울러 수사 및 재판절차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아가 본건 범행은 이른바 여성 혐오에 기인한 무차별적 범죄라기보다 피의자가 평소 앓고 있던 조현병 등에 따른 우발적, 돌출적 행위로 보이는데, 피의자는 사건 발생 후 가족들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고, 피의자와 그 가족들은 재범방지와 치료를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1시 50분쯤 공항철도 서울역 1층에서 일면식 없는 여성을 폭행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여성은 눈가가 찢어지고 왼쪽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철도경찰은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인 지난 2일 이씨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4일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