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28) "문헌에만 있는 전통술을 복원하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0.06.12 10:29 | 수정 2020.06.15 09:44

    서울 마포의 안중한의원 안병수 원장, 2012년 강원도 홍천에 양조장 설립
    호모루덴스, 동정춘, 백자주 등 프리미엄 탁주 내놓아
    발효한약에 관심 갖다가 전통술 빚기로 이어져, 매주 수요일은 양조장에서 술 빚어
    "프리미엄 탁주, 음식 페어링 쉽지 않다는 지적 있지만, 우선은 종류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

    서울 마포구에서 2대째 개업 중인 안중한의원의 안병수 원장은 매주 수요일은 진료를 보지 않는 대신, 강원도 홍천에서 막걸리를 빚는다. 그는 화요일 저녁 진료를 끝내고 밤에 홍천으로 내려간다.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그가 만든 양조장에서 술을 담그거나 술 관련 일을 하다 오후에 귀경했다가 목요일 오전에는 한의사 가운을 입고 환자를 맞는다.

    그가 건네는 명함도 두 개다. 하나는 죄다 한의사 관련 직함이다. 대한약침학회 회장, 대한한의사협회 이사, 안중한의원 원장 직함이 적혀 있다. 다른 하나는 전통주 제조업체 ‘산수’ 대표 명함이다. 한의원 원장, 고급막걸리 제조 대표 이 두 가지 일을 시작한 지 벌써 9년 째다.

    ‘호모루덴스’. 2012년 술 빚기를 시작한 후 4년만인 2015년에 안 대표가 내놓은 첫 작품이다. 장수막걸리, 지평막걸리, 느린마을막걸리 같은 이름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이름부터 낯설어했다. 유희의 인간. 호모루덴스의 뜻이다. 이 술을 만든 사람은 이름부터 남다르게 튀고 싶었을까?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안 대표는 "기존의 전통주 이름들이 대부분 좀 고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색다르게 지었다"며 "호모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이름 그대로 이 술을 마시면서 우리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한의사 안병수 원장은 강원도 홍천에 양조장을 차리고 프리미엄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박순욱 기자
    특이한 이름의 술은 호모루덴스뿐이다. 이후 안 대표가 만든 술은 동정춘, 백자주. 옛문헌에서 레시피(주방문)를 찾아 만들고, 술 이름도 옛 기록에서 따왔다. ‘동정춘’은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병 속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술잔의 빛은 문창에 비친다'는 시를 지었을 정도로 동파가 사랑했던 술이다. 말년에 시인이 보낸 마을 인근의 호수 이름도 동정호다. ‘백자주’는 양조장이 있는 홍천의 특산물 잣을 부재료로 넣은 술로서, 우리나라 과실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 대표가 만든 술들은 호모루덴스를 비롯해 모두 프리미엄 탁주로 분류된다. 알코올 도수도 8도~12도로 일반 막걸리 6도보다 한참 높다. 가격도 1만원대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어디까지나 한의원 운영이 본업이고 양조장 일은 ‘그 다음 일'이다 보니, 신제품 개발도 더딘 편이다. "양조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고객 문의도 양조장에 상주 직원이 없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역 한의사가 양조장을 차린 이유는 뭘까?

    안 대표의 설명은 이랬다. "처음부터 돈 벌자고 양조장을 차린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의원이 본업이고, 양조장 운영은 ‘세컨드 잡’이다. 양조장에 ‘올인’할 수 없다 보니,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못했고, 신제품 개발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보람은 있다. 일제에 의해 명맥이 끊긴 전통주 제조기법을 하나씩 복원해 세상에 내놓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동정춘, 백자주는 내가 만들지 않았다면 옛기록에만 남아 있고, 세상에 다시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때가 되면 이런 술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그 때를 기대하며 전통주 복원 리스트에 이름 하나 더 올리는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더 열심히 해서 돈도 벌어 양조장 사업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농업법인 산수의 안병수 대표가 양조장 방문객에게 술 빚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산수 제공
    한의학을 전공한 그는 자연스레 부친의 한의원에서 일하면서 발효 한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전통주 제조로 그를 이끌었다. "한약은 대개 쓴 맛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약은 왜 맛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마시기 편하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약을 더 가까이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죠. 만약에 한약에 발효 과정을 거치면 훨씬 한약 맛이 부드러워 질 것으로 여겼습니다." 안 원장은 2007년부터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발효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발효 한약 연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몸에 이상 증상이 있어 한의원을 찾아온 환자들은 빨리 처방 약을 먹고 병이 낫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일반 한약은 1~2일이면 약이 나오는데, 발효 한약은 약을 만들어 환자에게 전달하기까지 3~7일 걸리는 겁니다. 발효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죠. 이런 연유로 발효 한약을 찾는 환자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대신 안 원장은 발효 한약이 아닌 발효 자체에 관심을 두면서 발효 효모의 일종인 누룩으로 만드는 전통 술 빚기를 시작했다. "일본 청주 사케를 만드는 효모(입국)는 특정 균을 배양해서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 술 맛의 균질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효모인 누룩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다양한 균이 생기기 때문에 그때마다 술 맛이 달라집니다. 이것을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균이 다양하니까 그만큼 술 맛이 풍성해진다, 이렇게 좋게 볼 수도 있잖아요."

    2012년 안 원장은 강원도 홍천에 부지를 매입, 양조장을 차렸다. ‘산수'라는 이름의 농업법인도 만들었다. 상주하는 직원 한명도 없이 양조장 이웃 주민들이 필요할 때 알바로 일을 도와주는 소규모 양조장이다. 화요일 한의원 업무를 마친 저녁에 안 원장과 같이 출발, 밤 늦게야 홍천의 양조장에 도착했다. 양조장은 산속 계곡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 안 대표는 "자연을 닮은 강원도의 쌀과, 지하 암반수로 술을 빚는다"고 했다.

    한국 전통 누룩과 일본의 개량 누룩인 입국의 장단점을 얘기해달라.

    "단조롭지 않은, 다양한 맛의 술을 만드는데 전통 누룩만한 발효제가 없다. 와인으로 치면, 풀바디의 느낌,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주로 쓰는 입국은 일본에서 많이 건너온 것이다. 입국의 특징은 한가지 균을 집중적으로 배양하고, 그걸 잘 유지하는게 기술이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술 맛을 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맛 자체가 좀 단조롭다.

    한국 누룩은 풍미가 좋지만, 대신 맛의 균질화가 어렵다. 일반 양조장에서 쓰기 어려운 이유다. 술 맛이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과 접촉하는 누룩은 품질이 항상 일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변화를 미리 예측해서 대응하기가 아직은 어렵다.

    술을 만들 때 효소가 작용해, 곡물이 당화되고, 효모들이 활동해서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뱉어 내는데, 입국은 효모를 따로 넣어줘야 한다. 입국은 효소의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전통 누룩은 효소의 역할도 하고 효모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누룩도 곡물을 상업적으로 완전발효시키기 위해서는 효모를 일부 투입해야 한다. 호모 루덴스는 누룩 외에 효모를 약간 넣는다. 동정춘과 백자주는 누룩만 넣는다.

    누룩 관리는 어떻게 하나?

    "공장에서 공급받는 누룩도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 그런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술을 일정 기간, 술 빚기 좋은 때만 술을 빚고 있다 일년 내내 술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서 초봄 사이에 주로 술을 빚는다. 누룩이 지니는 리스크(품질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주 재료인 쌀도 가급적 같은 시기에 구입한 쌀로, 술을 만들어야 술맛의 편차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이전에는 술을 일년 내내 빚었더니, 자연의 변화를 이길 수 없었다. 계절에 따른 술맛의 편차가 심했다. 전통주의 특징이 변화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가급적 그 편차를 줄이고,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룩은 사용하기 전에 햇볕 좋은 날, 잘게 빻아 말린다. 한의약에서는 한약을 법제한다고 한다. 약효를 더 증강시키고, 독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누룩을 법제하는 이유는 누룩취를 좀 줄이고, 살균 역할도 한다. 한약에서는 법제방법이 굉장히 다양한데, 누룩 법제는 단순하다. 햇볕에 잘 말리면 된다. 자외선 살균 효과가 있고 잡맛을 줄인다."

    농업법인 산수에서 만드는 술은 호모루덴스, 동정춘, 백자주. 세 제품을 소개해달라.

    "호모 루덴스는 이름 자체가 전통주스럽지 않게 지었다. 뜻이 ‘유희의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이 다 즐겁고 행복하기를 노력하는데, 인생은 희노애락이 예외가 없다. 그래서 호모루덴스는 이름 그대로 이 술을 마시면서 우리 인생이 좀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주 이름이 대개 좀 고루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런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런 이름을 시도했다.

    그리고 현재 막걸리 시장이 저가 막걸리 시장과 프리미엄 막걸리로 구분돼 있는데, 저가 막걸리들은 대개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프리미엄 막걸리는 아예 이런 첨가물을 넣지 않으려고 한다. 저가 막걸리든 고급 전통주든 공통된 단점이 달다는 것인데, 호모루덴스는 좀 드라이한 술을 만들려고 개발한 술이다. 흔히 호모루덴스는 남자의 술, 술꾼들의 술이라고 한다. 술 좀 하는 사람들은 호모루덴스를 최고의 술로 치는 사람들이 많다. 달지 않기 때문에 음식과도 잘 맞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막걸리 중에는 가장 드라이한 술로 꼽는다. 알코올 도수는 12도로 꽤 높은 편이다. 드라이한 맛을 내기 위해 멥쌀만 사용했다.

    농업법인 산수의 막걸리 제품들. 왼쪽부터 동정춘, 호모루덴스, 백자주. /박순욱 기자
    동정춘, 백자주는 옛 문헌에 나온 주방문을 토대로 빚은 술이다. 이름도 문헌에서 따왔다. 동정춘은 조선시대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와 1924년에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온 제조기법을 따라 만든 술이다. 원래 술 이름에 ‘춘’자가 들어가는 것은 주로 ‘맑은 술’, 좋은 청주를 의미하는데, 이전에 주류 대기업에서 이 술을 병당 50만원이 넘는 고가 약주로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방문대로 술을 만들어보니 너무 달아서 약주, 춘으로 하면 많이 마실 수 없겠다고 생각해, 현대인이 접근하기엔 탁주로 만드는게 낫겠다 싶어 약주(청주)가 아닌 탁주로 만들었다.

    동정춘은 술 만들기 자체가 어렵다. 대개 전통술은 주재료인 쌀보다 물이 많이 들어가는데, 동정춘은 쌀 함유량이 물보다 훨씬 많다. 처음 빚을 때는 물이 쌀의 10분의 1밖에 안들어간다. 물이 거의 안 들어가고, 쌀로만 빚은 술이 동정춘이다.
    물이 워낙 적게 들어 가고도 정상적으로 발효가 되려면 다른 술보다 손이 많이 가야 한다. 밑술을 빚을 때, 대개 고두밥을 하건, 설기 떡을 하건, 죽을 만들거나 하는데, 동정춘은 구멍떡(작은 도나스와 모양이 비슷)을 만든다. 이 떡을 뜨거운 물에 넣어 익혀 그걸 다시 으깨서 식힌 다음에 누룩과 섞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술 빚는 사람의 ‘땀(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제맛을 내는 술이다. 워낙 쌀이 많이 들어가는 술이라 ‘논 한편에 동정춘 한병 나온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던 술이다. 술 제조원가도 호모 루덴스보다 훨씬 높다.

    동정춘은 알코올 도수(8도)는 낮은 편이지만, 워낙 쌀이 많이 들어가 술의 풍미는 일품이다. 중국의 시인 동파 소식은 동정춘의 향을 극찬했다. ‘병 속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술잔의 빛은 문창에 비친다/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을 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라고 시로 읊었다. 동파는 자신의 말년을 동정호(호수)에서 지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동정춘과는 인연이 깊다."

    동정춘의 주 타깃 층은?

    "워낙 단 술이라서 여성을 겨냥했다. 호모루덴스가 남성적인 술이라면, 동정춘은 여성취향적인 술이다. 화학적인 단맛이 아니고, 곡물에서 나는 단맛이라서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기분 좋은 단맛이랄까. 원래는 젊은 여성을 타겟으로 만든 술인데, 술을 아예 안드시는 50~60대 여성분들도 동정춘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호모 루덴스와 동정춘은 2015년에 나왔다.

    백자주는 2018년에 나왔다. 양조장이 있는 홍천에 6가지 명품 중 하나가 잣이다. 지역특산물인 잣이 부재료로 들어간 술이다. 잣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많이 먹기는 좀 부담스런 견과류다. 기름지기 때문이다.

    백자주는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과실주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실주가 잣술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졌다. 잣으로 만든 술로 옥지주, 백자주 2 종류가 있다. 백자주 주방문(레시피) 그대로 한 것은 아니고, 옥지주와 백자주의 장점을 살려서 만들었다.

    국내 잣술 중 잣 함유량이 가장 많다. 화학첨가물을 쓰지 않고 잣향을 내려고 하다 보니, 잣을 그만큼 많이 넣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잣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잣향을 느끼게 술을 만드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고려시대 명종도 이 술을 즐겼다고 한다. 몸이 약했는데도 잣이 들어간 백자주는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잣같은 견과류는 몸을 보호하는 약효가 있다. 지금에야 잣이 느끼하다, 기름지다 이런 얘기들을 하지만,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잣은 훌륭한 영양성분 중 하나였다. 잣이 들어가서 느껴지는 풍미와 향이 고급스럽다."

    안병수 대표와 함께 홍천 양조장에 온 날, 또다른 손님이 밤늦게 양조장을 찾아왔다. 홍천 인근인 횡성에서 식당(화수목)을 경영하는 전권표 셰프가 같이 시음에 동참했다. 그는 "강원도에서 식당을 크게 하고 있는데, 홍천에서 만든 술을 식당에서 취급하고 싶어, 술맛을 보려고 왔다"고 했다.

    안병수 대표가 양조장을 찾아온 화수목 전권표 셰프와 시음을 하고 있다. 전 셰프는 “조만간 식당에 호모루덴스 막걸리를 취급하겠다"고 말했다. /박순욱 기자
    호모루덴스부터 맛을 봤다. 색깔은 엷은 회색에 가까웠다. 알코올 도수 12도. 묵직함이 입안 가득했다. 단맛이 적긴 하지만, 이 때문에 여러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설명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도수가 높다보니, 술이 음식을 받쳐 주는게 아니라, 음식이 술을 받쳐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음식 맛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술'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일반 막걸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미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귀한 술임엔 틀림이 없었다. 100일 동안 저온 숙성한 삼양주다.

    동정춘. 알코올 도수가 8도인데도 쌀 함유량이 50.42%를 차지한다. 단맛이 호모루덴스보다 도드라지지만, 묵직함은 여전하다. 약간 요구르트를 머금은 느낌도 난다. 맛을 본 전권표 셰프는 "정말 고급스런 단맛'이라고 극찬했다. 색깔도 아이보리에 가까울 정도로 이쁘다.

    백자주. 잣을 가루로 만들 때 생기는 지방성분을 이용, 특유의 고소한 맛을 이끌어냈다. 잣의 지방성분인 기름방울이 술 표면에 동동 떠 있다. 단맛과 함께 신맛도 같은 무게로 느껴진다.

    시음이 끝나고 아쉬움은 남는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프리미엄 막걸리들은 대개 쌀 함유량이 많다. 50%를 넘는 것들도 있다. 마셔보면 묵직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쌀을 많이 넣은 만큼 입 안의 무게감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쌀을 많이 넣어 바디감을 높인다면 그게 어려운 기술일까? 이럴 때 외국의 예를 드는데 적절하다고는 보지 않지만, 일본은 양조 전용 쌀들이 많다. 서양 와인을 만드는 포도 역시 식용이 아닌 양조용 포도다. 이들은 오랫동안 품종개량을 통해 술로 만들었을 때 바디감이 강한 쌀, 포도를 만들어왔다. 양조 전용 쌀이 없는 한국은 쌀 자체를 많이 넣어 바디감을 높인다. 이제는 바디감이 강한 쌀을 개발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현역 한의사다. 한약을 활용한 술 개발 현황은?

    "한약의 발효에 관심을 가졌다가 자연스럽게 전통술 제조에 뛰어들었다. 한약재를 활용한 술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개발 해놓은 것도 있는데, 아직 출시는 하지 않고 있다. 산양산삼을 주재료로 한 증류식 소주는 국세청 제조 허가도 2013년에 받았다. 현재 숙성 중이다. 7년째 숙성하고 있다. 시장 상황을 봐서 출시할 예정이다.

    호모루덴스 소주도 만들고 있다. 호모루덴스는 라인업을 만들고 싶었다. 탁주, 약주, 증류주 셋으로. 현재 허가까지 다 받았지만, 한의원을 계속 운영해야 하니까, 양조장에 주력할 수 없어서, 상품군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호모루덴스 소주는 소량 생산해 숙성 중이다."

    요즘 막걸리 양조업계 신세대 열풍이 거세다. 산수 제품들은 이미 ‘올드’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2012년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신생 양조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특이한 술들이 많이 시장에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양조장을 크게 키울 여건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 나와있는 제품들에 대해 항상 퀄리티를 좋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우리 제품이 시장을 선도하는 입장은 못되지만, 나름 제품마다의 개성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생겼다가 금방 없어지는, 반짝 떴다가 어느새 존재감이 없는 그런 술이 아니라, ‘스테디셀러’로 오래 가는 술로 남기고 싶다.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진행하다가 지지부진해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산수 양조장 입구.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현재의 것에 좀 더 충실하게 이어나가는 것도, 그 안에 여러가지 기술을 집약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원이 우선이다보니 양조장에 집중하기 어렵다. 나 말고 양조장 상주 직원도 없다. 대표인 나 역시 일주일에 하루 정도 양조장에서 일한다. 나머지 평일은 한의원 일을 본다. 술 빚는 시즌같은 바쁜 때는 주말에도 오지만, 아무튼 양조장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이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다."

    호모루덴스, 동정춘 같은 프리미엄 탁주가 1000원대 막걸리보다 음식 페어링이 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의견엔 동의하지 않는가?

    "술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프리미엄 탁주가 유행한 게 불과 5~6년 됐다. 그리고 지금 신생 양조장에서 새로운 막걸리들을 내놓고 있다. 이러다 보면, 현재의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워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리미엄 탁주라는 말도 최근 4~5년 사이에 생긴 것이다. 이제는 법도 바뀌고, 유통이 발전하면서 지역 술들이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지역에서 만든 술은 해당 지역에서만 유통하도록 했다.

    그래서 프리미엄 탁주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 옛 문헌에서 기록으로만 흔적이 남아 있던 술을 양조인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온 게 프리미엄 탁주다. 불과 몇년 전이다. 이러니, 프리미엄 탁주가 만드는 문화는 아직 생소할 수밖에 없다. 양조인들도 한편은, 우리가 만든 프리미엄 탁주가 어떤 음식과 매칭이 잘될까 고민을 하는데, 현실은 그 한계(프리미엄 탁주는 음식 페어링이 어렵다)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면, 현재 지적되는 한계들이 프리미엄 탁주 시장을 또다른 방향으로 이끌지는 잘 모르지만, 그 외연이 점차 확대될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꾸준히 프리미엄 탁주 신상품들이 계속 세상에 나온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연스럽게 음식 페어링 문제도 점차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몰랐던 술들을 세상에 내놓는 역할에 충실하는게 맞다고 본다. 프리미엄 탁주에 어울리는 음식을 양조인들이 결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비자,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 새로운 술을 제공할 뿐이다. 프리미엄 탁주에 어울리는 음식이 많지 않다는 고민은 계속 해야겠지만, 아직은 술 개발과 출시에 더 집중할 때라고 본다. 프리미엄 탁주 시장이 우선은 더 커져야 한다.

    한의사 안병수 원장이 서울 마포의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안 원장은 수요일 하루 양조장 일을 보고 있다. /박순욱 기자
    프리미엄 탁주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다. 우선 중저가 막걸리들은 알코올 도수가 프리미엄 탁주에 비해 2~3배 낮다. 그만큼 물을 많이 탄다는 얘기다. 그러니, 가격이 두세배 차이가 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또, 저렴한 막걸리들은 일주일, 열흘만에 제품을 만들지만, 병당 가격이 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탁주은 발효와 숙성에 100일 이상 걸린다. 저가 제품을 열번 이상 만들 수 있는 기간에 단 한번 만드는 셈이다.

    우리가 올해 시장에 내놓은 술 중에는 작년에 만든 술들도 있다. 그만큼 오랫동안 숙성시킨 것이다. 사람들이 와인의 빈티지를 얘기하는데, 우리도 향후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와인은 오래되면 좋다고 하면서 반대로, 탁주는 금방 만든 게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들 한다. 이런 인식을 고쳐 나갈 것이다. 양조장에는 소주가 아니면서도 3~4년 묵히고 있는(숙성하고 있는) 약주, 탁주가 있다. 3~4년된 탁주가 백화점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린 적도 있다. 사람들이 오래 묵은 술의 가치를 알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예 병 라벨에 빈티지를 표시하면 어떨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품질이 바뀌는 누룩도 빈티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본다. 그해 만든 누룩과 햅쌀로 ‘보졸레 누보' 와인 같은 막걸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봤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2~3년 숙성시킨 제품을 내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생탁주는 오래두면 좋지 않다고들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숙성의 힘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제대로 만든 술이라면 오래 둘수록 훨씬 좋은 술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시장에서는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탁주를 만드는 양조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과제를 안고 있고, 프리미엄 탁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공 감미료 듬뿍 넣은 술이라면 오래 숙성한다고 해서 술이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서양 와인은 음식을 받쳐주는 역할을 나름 하고 있다. 프리미엄 탁주도 장기적으로 그런 노력을 더 해야 하지 않나?

    "그건, 아직 내 몫은 아닌 것 같다. 노래로 말하자면, 뽕짝으로 모든 음악을 다 할 수 없지 않느냐? 트롯으로 샹송, 팝송을 대항(?)시킬 수는 없다. 트롯이 주는 맛이 있고, 샹송이 주는 맛이 있다. 막걸리에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 있고, 와인이 더 잘 맞는 음식도 있게 마련이다. 지금 문화적 다양성이 추구되고 있다 보니, 우리 음식에 와인을 대비시켜보기도 하고, 서양 음식에 탁주나 전통주를 매치하기도 한다. 지금은 이런 과정에 있다고 본다. 사실, 우리 술이 탁주만 있는게 아니니까, 약주나 소주에 더 잘 어울리는 음식도 많다고 본다. 양조인의 입장에서도 술과 음식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내가 만든 술에 어떤 음식이 어울릴지 내가 고민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술을 만들어 내면, 소비자나 요리사들이 자연스럽게 음식에 어울릴 술을 선택하지 않을까 한다. 양조인들은 소비자들에게 우선, 술 선택의 폭을 넓히는 노력을 더 하는게 맞다고 본다.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스타일의 술을 만드는 것이 음식페어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전통술 시장(산업)이 더 커지면, 음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과 전통술의 콜라보(협업)도 가능하리라 본다. 고급 식당 일부에서는 벌써 이런 시도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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