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이 유흥업종이라니"… 재난지원금 '사각지대'서 우는 자영업자들

조선비즈
  • 김송이 기자
    입력 2020.05.24 08:00

    탁구장·당구장 등 스포츠시설은 재난지원금 사용 못해
    먹거리에만 쏠리는 지원금… 全 업종 ‘온기’는 역부족

    서울 종로구에서 8년째 탁구장을 운영하는 최모(64)씨는 ‘재난지원금’으로 소상공인들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하소연했다. 최씨가 운영하는 탁구장은 재난지원금 사용이 제한된 ‘유흥사치업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지금도 월세 300만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주변 식당들은 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조금씩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탁구장이 사치업종이라서 재난지원금을 쓸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탁구장이 찾아 오는 손님이 없자 불을 꺼두고 있다. /김송이 기자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침체된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며 전 국민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이후 시장과 음식점 등은 점차 경영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을 쓸 수 없는 업종의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상황이 바뀐게 없다.

    2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21일까지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는 총 12조1068억원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총 예산인 14조2448억원 중 80.5%가 지급 완료된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유흥사치업종에 속한 점포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문제는 주점이나 클럽, 노래방 등 대표적인 유흥 관련 업소 뿐 아니라 탁구장이나 당구장, 스크린골프장 등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 등도 유흥사치업종에 함께 묶여있다는 점이다.

    서대문구의 한 당구장 직원 이모씨는 "재난지원금 효과는 그저 남의 얘기에 불과하다"며 "평소 손님이 몰렸던 야간시간에 근무를 하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절반 이상 손님이 줄었고 지금도 상황이 나아진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오후 2시에 찾은 서대문구 일대에서 ‘24시간 운영’을 알리는 당구장 5곳 가운데 4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 당구장 문 앞에는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영업 시간을 단축합니다"란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한 당구장 문 앞에 영업 시간 단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해당 당구장은 24시간 영업을 하던 곳이다. /김송이 기자
    여러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재난지원금 ‘사각지대’에 놓인 업종에서도 돈을 쓸 수 있도록 정부가 방침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20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스크린 골프장과 탁구장, 당구장 등의 스포츠·여가 업종 역시 코로나 사태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주류판매와 무관한 골목상권의 업종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업종에는 포함되지만, 소비가 주로 음식료품 등으로 쏠리면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코로나 사태로 각종 행사가 취소돼 어려움을 겪는 꽃집이나 개학이 미뤄져 타격을 받은 문구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지난 17일까지 자체적으로 지급한 재난긴급생활비 사용처를 분석한 결과 유통·요식·식료품 업종에서 사용된 금액이 전체의 79%를 차지했다. 특히 슈퍼마켓, 편의점 등 유통업종에서 전체 재난긴급생활비 사용액의 44.7%가 소비됐다.

    서대문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월세와 관리비를 내느라 지난 몇 달 간 매출이 마이너스 상태"라며 "매년 5월에 번 돈으로 여름 비수기를 버텨왔는데, 올해는 어버이날·스승의날이 껴있지만 매출이 크게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 화훼공판장 지하 꽃 상가에 카네이션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학교 앞 문구점 등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됐지만, 나머지 학년들은 격주 수업이나 원격수업을 병행할 예정이라 매출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은 편이다.

    종로구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금모(72)씨는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학생들이 등교는 하니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며 "지금은 학용품 재고만 쌓이고 매출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사용한다는데 우리 가게는 달라진 게 없다. 학교가 문을 열지 않는 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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