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 알고보니 '통신료 마음대로 인상 허용법'이었다

조선비즈
  • 박현익 기자
    입력 2020.05.19 11:15 | 수정 2020.05.19 15:13

    본회의 통과 앞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n번방 방지법’ ‘넷플릭스 규제법’만 담긴 줄 알았는데
    뒤늦게 ‘SKT 등 통신비 인가제 폐지’ 추가 사실 알려져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n번방 방지법’ ‘넷플릭스 규제법’으로 알려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통신비 인가제 폐지가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대 국회가 임기 막판 통신업계의 숙원사업인 통신비 인가제 폐지를 끼워넣어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IT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음란물 유통방지 의무를 지우는 ‘n번방 방지법’과 △통신 업체의 망 설치·관리 비용을 콘텐츠기업(CP)도 부담하도록 하는 ‘넷플릭스 규제법’ △통신비 인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인가제 폐지법’ 등 크게 3가지 내용이 담겼다.

    과방위에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만 해도 논란은 주로 ‘n번방 방지법’과 ‘넷플릭스 규제법’ 등 두 사안에 대해서만 불거졌었다. 통신비 인가제 폐지는 존재 사실 자체도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종 처리된 과방위 개정안이 공개되며 뒤늦게 확인됐다.

    통신비 인가제 폐지는 통신업계, 그 중에서도 최대사업자인 SK텔레콤의 숙원사업이다. 현 전기통신사업법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제를 정하기에 앞서 일정 요건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을 갖췄는지를 따져보는 정부 심사를 먼저 거치도록 하는 인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조건이 충족됐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사후적으로 허용(인가)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통신비 인가제는 1991년 도입 이후 지난 30년간 SK텔레콤이 이용자들로부터 마음대로 통신 요금을 못 거둬가게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3월 SK텔레콤이 5G(5세대) 요금제로 7만원대 이상 요금제만 내놨다가 '퇴짜'를 맞고 5만원대 요금제를 새로 추가한 것도 이 인가제 때문이었다. 반면 법이 바뀌고 신고제가 적용되면 이제 SK텔레콤은 정부에 "이 요금으로 받으려 한다"며 알리면 끝이다. 정부가 SK텔레콤의 신고 후 보름 안에 문제삼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 SKT 타워. /연합뉴스
    인가제 폐지는 통신사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가 모두 똘똘뭉쳐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인가제를 두고 "통신사들의 자유로운 요금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에 가격 하한선만 만들었다"며 "30년이나 된 낡은 규제를 이제 바꿀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고제가 되면 3사 경쟁체제가 활발해지고 특정 업체가 비싼 요금제를 출시하면 시장에서 외면 받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가제 폐지를 우려하는 측에서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자의적인 요금 결정을 견제할 장치가 사라지게 돼 통신비만 급등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지금 법 체계에서 이미 나온 요금제 가격을 인하하는 건 신고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경쟁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지금과 같은 비싼 요금제는 인가제 때문이 아니라 통신 3사의 암묵적 담합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 전기통신사업법은 SK텔레콤과 달리 2, 3위 사업자인 KT, LG유플러스에 대해서는 요금 신고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KT, LG유플러스는 관행적으로 SK텔레콤이 먼저 요금을 정하면 뒤이어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 식으로 이용약관을 만들어왔다.

    IT업계, 소비자 시민단체에서는 ‘인가제 폐지법’이 ‘n번방 방지법’과 섞인 탓에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처럼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대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이용자들이 내야 할 통신비가 오를 우려가 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설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잘못했다가는 ‘지금 n번방 방지법에 반대한다는 것이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