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부터 술까지… 구독경제에 빠지다

조선비즈
  • 윤희훈 기자
    입력 2020.05.19 06:10

    '구독경제'로 사는 직장인 A씨의 일일

    일러스트=박상훈
    다이어트에 고민 중인 직장인 A씨는 그리팅몰에서 주문한 '라이트 식단'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현대그린푸드가 운영하는 프리미엄 식사 배송업체 그리팅은 고객의 주문에 맞춰 '저당식', '다이어트식', '영양식'을 새벽배송으로 배달하고 있다. 식사를 마친 A씨는 욕실로 들어가 면도크림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한다. 손에는 와이즐리 면도기를 쥐고 있다. 면도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와이즐리는 매달 8900원에 면도날 4개를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씻고 나와 셔츠를 입던 A씨의 눈에 쌓여있는 빨래감이 들어왔다. '오늘은 빨래를 맡겨야겠구나.' A씨는 빨래 구독 서비스 '런드리고'의 회원이다. 정장을 주로 입는 그는 '와이셔츠&드라이 43' 상품을 구독해 매달 와이셔츠 20장과 정장 2벌을 드라이클리닝한다. 숨가쁜 회사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A씨는 홈술닷컴에서 주문한 막걸리가 배송됐다는 문자를 받고 마음이 들떴다. 막걸리를 한 잔 하며 넷플릭스로 영화나 한편 봐야겠다고 A씨는 생각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면도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와이즐리, 막걸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상면주가, 빨래 구독 서비스 스타트업인 런드리고, 현대그린푸드가 출시한 식단 서비스 '그리팅'.
    ◇ 코로나로 공유경제 지고, 구독경제 뜨고

    가상의 직장인 A씨를 통해 살펴본 구독경제와 함께하는 일상의 모습이다.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란 구독료 형태의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정기적으로 화장품이나 의류 등 제품을 제공받거나 영화나 음악, 도서 등 콘텐츠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말한다. 처음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나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 산업의 주요 모델로 부상했으나, 최근엔 식품과 가전제품, 차량으로까지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컨택트(대면) 소비의 대표였던 '공유 경제'는 주춤거리는 반면, 언택트(비대면) 소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구독경제' 소비가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에 있어 구독경제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배달 우유'가 대표적인 구독경제 모델이다. 구독경제 서비스를 통해 사업자는 정기 단위의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으며,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신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품질 향상시킬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하고, 고정비 지출로 가계 지출을 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경우 '냉장고에 쌓이는 우유' 처럼 불필요한 지출이 나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출현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구독경제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스위스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000년 세계 구독경제의 규모는 2150억달러(265조원)에서 2015년 4200억달러(518조원)로 2배가량 성장했다. 올해엔 5300억달러(646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구독경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남양유업 제공
    ◇ 식품기업, 구독경제 서비스 연달아 출시

    구독경제 시장이 가장 치열한 분야론 '간편식' 분야가 손꼽힌다. 간편식 문화가 정착된 미국이나 유럽에선 손질된 식재료와 양념으로 구성된 '밀키트'나 반조리된 '레디밀'을 구독해서 이용하는 게 일찍 안착됐다. 국내에선 우유나 요구르트, 즙 등의 간편식을 정기 구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죽이나 밀키트 등으로 품목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018년부터 밀키트 브랜드 '잇츠온' 정기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고객에겐 최대 15%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고객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3월 '그리팅'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리팅은 '저당식' '다이어트식(라이트)' '영양식(웰니스)' 식단을 이틀에 한 번씩 새벽배송으로 제공한다. 가격은 한 끼당 8500원에서 8900원으로 시중 도시락에 비하면 다소 가격대가 높지만, 고품질 영양식으로 체형 관리에 관심이 많은 20~30대와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50~60대 장년층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남양유업도 지난 3월 배달 이유식 브랜드 '케어비'를 론칭했다. 남양유업은 기존 이유식 브랜드 '아이꼬야'를 시중에 판매 중이다. 아이꼬야가 대중성을 살린 제품이라면, 케어비는 양질의 재료를 사용한 신선한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아직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달밖에 되지 않아 실적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무료체험 신청자가 몰리는 것으로 보아 배달 이유식이 시장성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홈술족을 위한 술 구독 서비스도 나왔다. 배상면주가는 올초부터 온라인 쇼핑몰 '홈술닷컴'을 통해 막걸리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시중에서 판매 중인 배상면주가 포천LB의 막걸리들을 설정된 주기에 맞춰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로, 정기구독 신청 고객에게는 10%의 구매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또 막걸리의 맛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엔 제품을 교환해 준다.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막걸리와 안주를 함께 제공하는 '홈술세트' 구매율이 높다"면서 "2월부터 월 매출이 2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회원수도 매달 10% 이상의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자사몰 CJ더마켓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더프라임'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CJ더마켓 캡처
    ◇ 충성도 높은 고객이 바로 경쟁력

    최근 유통기업들 사이에서는 어떤 '구독경제' 서비스를 개발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할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면서 소비자들을 자사 온라인 쇼핑몰로 유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운영하는 온라인몰 CJ더마켓은 '더프라임' 멤버십 서비스를 내놨다. 더프라임 멤버십은 연회비 2만원으로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프라임 회원 가입 즉시 2만원 상당의 CJ제일제당 상품으로 구성된 가입선물 패키지와 기프트카드 3000원을 제공한다. 아워홈은 '아워홈 몰'에서 생수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청정 지리산 암반수를 2L들이 6병 한박스를 38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무료 배송까지 해주고 있어 방문 고객이 급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이 없던 식품회사들이 자사 온라인몰을 새로운 판매처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를 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어 수익면에서 유리하다. 높아진 수익을 고객 이벤트로 환원하는 방법 등으로 선순환식으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사몰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그 회사나 제품에 대한 애정도가 높은 편"이라며 "고객들이 요구하는 제품이나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 등을 바로 캐치해 신제품 R&D 등에 반영할 수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들도 고객 유치를 위해 구독경제를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지난 3월부터 '커피 구독' 서비스를 내놨다. 기존 유통업체들의 구독 서비스가 배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구독 서비스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커피구독 서비스는 월 구독료 4000원에 하루 한잔씩 마실 수 있는 커피 교환권 31장과 스콘 세트 교환권 2장이 제공된다. '커피·스콘 세트' 가격이 2000원이라는 점에서 2번만 이용하면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고 이마트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마트는 커피 구독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뜨겁자 피자 구독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피자 2판 가격인 2만5000원을 이용료로 내면 매주 1판씩 피자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구독경제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매장 방문을 유도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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