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말로 접속… 전염병 시대의 관계, 언컨택트"
"더 평등해지고 더 투명해져… 인성, 실력 드러나"
"기성 세대는 못만나 불편, 젊은이는 안만나 좋아"
"코로나 이후, 가장 큰 리스크는 인간, 자동화 가속화"
"과잉 컨택의 나쁜 기억 줄여서, 적정 컨택으로"
"펭수 '안티 꼰대' 그만, '환경 이슈'로 글로벌 갈 때"
가장 무서운 게 경험이다. 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두렵고 불편해 보이던 것이 해보고 나니 그 속에 장점이 보인다. ‘언컨택트 사회’가 도래했다. 어쩔 수 없이 원격 근무, 온라인 수업, 무관객 라이브 공연 등을 경험한 사람들은 ‘비대면’이라는 이 연결 방식이 꽤 똑똑하고 흥미롭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이 바뀌면 욕망이 바뀌고, 욕망이 바뀌면 일상도 바뀐다.
언컨택트는 전염병이 만든 트렌드가 아니라 이미 확장되려는 트렌드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편한 단절이 일상화된 밀레니얼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구내식당엔 1인 좌석이 늘어났고, 매장엔 말 걸지 않는 서비스가 인기다.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과 장례식장이 곳곳에 생겨나고, 유럽에선 퇴근 이후 상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발족됐다.
2020년은 과잉 컨택트를 지나 적정 컨택트로 가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Uncontact(언컨택트)’의 저자 김용섭에게 만남을 청했다. 김용섭은 ‘날카로운상상력 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 현대, 롯데 등 여러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 자문을 하는 경영컨설턴트이며, 2013년부터 매년 통찰력 깊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다.
비대면 사회의 변화를 깊이 있게 짚어낸 그의 책 ‘언컨택트'는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재택근무'와 ‘온라인 개학'을 실험 중인 한국 사회에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도착했다. ‘언컨택트’는 그의 전작인 ‘2020 라이프 트렌드; 느슨한 연대'에서 이미 예고된 주제였기 때문이다.
김용섭을 만났다. 오랜 세월 우직하고 깊게 트렌드의 우물을 파온 전문 연구자답게 어떤 질문의 두레박을 내려도 찰랑이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미래를 아는 자의 침착한 눈동자, 웬만한 비바람에는 끄떡도 않을 튼튼한 나무 같은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는 ‘언컨택트’는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선별하겠다는 결정"이며, "언컨택트가 가속화될수록 수평성, 투명성이 높아져 실력자와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언컨택트를 어떻게 해석하지요?
"줄여서 ‘언택트'라고 썼는데, 정확한 표현은 ‘넌컨택트(noncontact)입니다. 제가 쓴 ‘언컨택트(Uncontact)’는 ‘접촉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접촉하는 방법을 바꾼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더 많은 연결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진화 코드지요."
-‘빨리빨리'와 ‘끈끈함'이 이종교배된 한국 사회에서 언컨택트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코로나로 비대면 사회가 티핑포인트를 맞았어요.
"언컨택트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죠. 다만 준비를 못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비대면 사회'에 직면했어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특히 과거를 살고 싶어 하는 힘 있는 사람들은 최후까지 익숙한 걸 안 놓고 싶어 해요.
예를 들어보죠. 2000년대부터 기업에서 호칭 직급 없애고 조직 문화 수평화를 시도했지만, 바뀐 게 거의 없었어요. 쇼윈도 조직만 늘었죠. 위계는 여전하고 후배는 주눅 들어 있었어요. 지난 20년간 경영자 신년사가 초지일관 혁신, 변화, 위기였잖아요. 가끔 소통과 수평이 양념처럼 들어갔죠. 윗사람들 생각은 한결같아요. ‘밑에서부터 바뀌어야지.’ ‘윗사람에게 잘해야 소통이지.’
그런데 코로나로 ‘언컨택트'가 실행되면서 순식간에 위계가 걷혔어요. 원격 근무하면서 얼굴이 안 보이면 오로지 ‘일'만 보여요. 만나면 직함, 나이 때문에 주눅 들지만, 화면에선 20명 얼굴이 균등 분할이에요. 비로소 수평화가 실현된 거죠."
-반강제적 비대면이었는데 그 쇼크가 부정적이지 않아서 놀랐어요.
"앨빈 토플러가 오래전에 주장했던 재택근무(일명 ‘전자오두막')를 유럽과 미국은 받아들였는데, 한국은 유독 더뎠어요. 위계 문화가 강해서였어요. 요즘엔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후배가 일 잘하면’ 선배들이 불안해해요. 생존의 최우선 조건이 ‘능력’이거든요. 밀레니얼 세대는 비합리적인 선배들에게 저항해요. IT기술과 밀레니얼의 요구로 조직문화 수평화가 목전에 와있었는데 코로나가 ‘언컨택트'로 그 불을 지핀 셈이에요."
-하지만 원격 근무도 코로나 이후 원상 복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관리자들은 통제와 감시를 위해서 ‘출퇴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웃으며)더는 사람을 직접 보고 감시할 필요가 없어요. 과거엔 그게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의 사무실 공간의 기초는 1904년, 미국의 기계공학자 프레드릭 테일러의 ‘테일러리즘'을 기초로 완성한 거예요. 효율적 감시를 위해 오픈된 공간 안에 빼곡히 책상을 넣고 상사가 고개를 들면 다 볼 수 있도록 했죠. 80년대까지 그 구조였어요.
90년대 PC가 들어오면서 파티션이 쳐지고 독립공간이 생겼죠. 이젠 그것도 필요 없어요. 내가 한 일이 다 데이터로 남잖아요. 신기한 게, 안 보고 일하면 효율이 더 높아요."
-카카오를 비롯해서 IT회사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자율 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었죠. 하지만 일반회사에서도 출퇴근이 점점 사라질까요?
"조직문화는 끝까지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다가 저항 세력이 더는 저항할 빌미가 없을 때 확 바뀝니다."
-누가 저항 세력이지요?
"경영자는 모든 플레이어가 베스트를 다하는 상태를 좋아해요. 베스트를 다하지 않고 버티는 그룹은 중간층이에요. 머릿수에 비해 업무 기여도는 적으며 월급은 많이 가져가는 사람들이죠. 컨설팅을 하다 보면 원격근무를 원하는 쪽은 경영자들이에요. 수평화가 진행되면 근무량이 투명하게 보이거든요.
경영자는 ‘좋은 사장님’ 소리 듣는 건 소용 없다는 걸 알아요. 이익을 내고 비전을 보여줘야죠. 젊은이가 원하는 조직은 하나예요. 자기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면, 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조직. LG가 34살 여성을 상무로 승진시킨 건 그래서 고무적이에요. 연고 없어도 일 잘하면 승진한다는 메시지죠. 그런 환경에서는 다 베스트를 해요. 2030은 미래가 있어서, 4050은 밀려날까 봐요."
-세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군요.
"어쩔 수 없어요. 권위적인 사람은 어린 사람을 내려보며 ‘새파랗다'고 하죠? 한번 새파라면, 영원히 새파랗다고 우겨요. 나이로 우려먹는 건 연차뿐이죠. ‘언컨택트'가 퍼뜨린 수평화가 본격적으로 ‘연차의 성벽'을 깨고 있어요. 비대면이 깨는 또 하나의 악습이 또 있어요. 기성세대의 ‘짬짜미’ 문화예요. 만나면 부정, 청탁, 편먹기가 쉬워요. 안 만나면 못하죠."
-거칠게 이분화하자면 기성세대는 못 만나서 불편하고, 젊은 세대는 안 만나서 좋다?
"만나서 이득 본 사람들은 한국식 인맥 쌓기에 능한 분들입니다. 아는 사람끼리 술 마시고 밀어주는 문화는 비겁한 문화예요. 공정 사회에 어긋납니다. 정이라고 우겨도 글로벌 스탠다드와 안 맞아요. 젊은 세대는 연장자 비위 안 맞추고 막말 안 들어도 되니, ‘안 만나는 게’ 좋죠.
그동안 ‘성희롱', ‘인격 비하'를 비롯해서 막말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들이 사악한 사람들이었나? 아니에요. 사회가 그걸 용인했어요. 지금은 착해졌나? 룰이 바뀐 거죠. 청년들은 어디서든 스마트폰 녹음기를 켜잖아요. 근거가 남아서 안 한다는 건, 나쁜 짓인 줄 안다는 거예요.
‘비대면 접촉'이 얼마나 편하면 다들 페북, 인스타에서 놀잖아요. 혼술하고 SNS에서 노는 건 그동안 만났을 때 불편함이 계속 있었다는 거죠. 비대면 문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에요. 한국 사회는 한 살 많아도 왕 노릇하려고 해요. 나이 어리면, 여자면, 못생기면, 피부색이 다르면 함부로 해요. 반발하면 ‘관심'이라고 하죠. 나쁘다는 걸 알면 바꿔야 해요."
한 사회의 욕망이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대면'이라는 방향을 만들었다고 했다. 방향은 정해졌고, 다만 속도의 문제였다고.
-결국 언컨택트와 컨택트의 적정 비율을 어느 정도로 맞추는가의 문제겠지요?
"맞아요. 자꾸 오해하는데, 언컨택트가 컨택트를 버리자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사회적 진화가 숙명이라 뭉쳐 살고 섞여 사는 게, 맞아요. 다만 과잉 컨택으로 나쁜 기억을 만들지 말자는 거죠. 한국 문화가 대학교 1년 선후배도, 유치원 한 살 차이도 깐깐하게 따져 서열을 매기잖아요. 나이로 통제하는 건 우리 문화가 아니에요. 학교를 군대로 조직해서, 선배가 상사로 군림한 건 일제 강점기 문화죠."
-서당이나 유림의 문화가 아니고요?
"장유유서는 분별이지 ‘윗사람이 짱 먹어라'가 아닙니다. 조선 시대에는 위아래로 열 살은 친구였어요. 오성과 한음은 절친이지만 5살 차이예요. 친구는 나이와 무관하게 신뢰를 나누는 사이죠. 마음이 통하면 70대 노인과 20대 청년이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존칭과 화법은 함께 정하면 돼요."
‘꼰대’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고 했다. "예전엔 뒤에서 욕하다 이젠 대놓고 저항하기 시작한 거죠."
그는 매년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 출간으로 사회 흐름을 읽어왔다. 특별히 최근 몇 년간의 키워드가 선명하다. 2017년 ‘적당한 불편’, 2018년 ‘아주 멋진 가짜’, 2019년 ‘젠더 뉴트럴’에 이어 2020년엔 ‘느슨한 연대’까지.
-‘느슨한 연대' ‘혼자 사회' ‘초연결' 그리고 ‘언컨택트'는 포인트만 다를 뿐 사실 모두 한 방향의 라이프를 가리키고 있어요. 공정, 투명, 개인이라는 시대정신인데요. 기업은 이런 라이프 트렌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저는 소비자, 기술 동향만 보는 게 아니라 산업, 소비, 인문,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엮어서 봅니다. 기업에는 몇 년 전부터 그 신호를 줬어요. 지속가능성, 젠더뉴트럴 등의 전략을 짜야한다고요. 앞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고요. 이런 이슈들이 거짓말처럼 코앞에 닥쳐왔죠. 생색을 내자면, 저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기업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어요. 잘하고 있습니다."
밀도 높은 인사이트를 쏟아내는 트렌드 분석가로서 김용섭의 내적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다. 초등학교 때 조지오웰의 ‘1984’를 읽은 그는 미래의 ‘빅 브러더' 사회에 공포를 느끼고, 그때부터 SF와 미래 관련 보고서, 신문, 잡지를 광적으로 탐독했다.
‘미래를 알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함께 신문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면을 키워드로 연결해서 읽는 ‘통섭력', 농업, 자동차, 미술 등 다양한 전문 잡지를 깊이 있게 읽어온 독해력은, 전 세계에 점점이 흩뿌려진 미래의 단서를 한데 모으는데 유효했다.
대중의 욕망을 앞서 읽는 것만큼, 시장에서 현재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히트 상품을 연구하는 데도 시간을 쓴다. 최근엔 ‘펭수’에 꽂혀 ‘펭수의 시대'라는 책도 썼다.
-펭수가 직장인의 대통령으로 뜬 것도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대변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펭수의 히트 코드는 ‘안티 꼰대’예요. 면접관에게 큰소리치고, 사장에게 반말도 불사하죠. 지금 펭수는 지금 갈림길에 섰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식으로, 2020년의 펭수가 2019년의 언행을 반복하면 사람들은 금세 싫증을 느껴요. 한국 장사만 할 생각 말고 글로벌로 나가야 할 때예요.
글로벌로 가려면 젠더와 환경 문제를 건드려야죠. 뽀로로를 이은 캐릭터지만, 운 좋게도 요즘 시대에 펭귄은 할 말이 많아요. 펭귄은 암수 구별이 어렵고, 남극에 사니 기후변화에도 민감하죠. 그 정체성이 얼마나 트렌디해요. 그래서 펭수는 홈쇼핑에서 펭귄 먹이인 크릴새우를 팔아대면 쓴소리도 해야 합니다."
이슈를 만들면서 계속 유니크한 짓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펭수가 밀레니얼의 진짜 대통령이 된다고. 언컨택트와 수평 사회, 밀레니얼과 펭수는 그렇게 서로가 힘의 지렛대가 되어 변화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안 보고 싶으면 안 본다'는 ‘언컨택트'의 간편 설정이 다음 세대의 상호작용 능력을 저하시키진 않을까요?
"대면은 친밀하고 소셜은 친밀하지 않은가요? 아니죠. 처음부터 소셜로 만나 마음을 나눈 사람은 오프라인 친구보다 정서적으로 더 친밀해요. 옛날의 환경 의제로 지금 환경을 해석하면 안 돼요.
‘언컨택트'는 오히려 상호 존중, 수평, 예의에 기반한 ‘만남'을 촉구해요. 상호작용에서 예의는 기본이고, 예의의 출발은 인권이잖아요. 예의의 출발을 나이나 권력으로 두고 ‘공경'을 강제하는 분들이 오히려 상호작용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거죠."
-다양한 사람을 접해야 감정조절 능력이 키워진다는 생각도 역시 편견일까요? 위험사회, 피로 사회에 이어 요즘엔 감정사회가 화두인데요.
"감정도 여러 가지죠. 풍부한 감정 표현도 있지만,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표현이 더 많아요. 명절 때 친척들이 자꾸 ‘결혼했냐, 취업했냐?' 물으면 피하잖아요. 반복적으로 감정을 상하게 하면, 그 만남은 줄여나가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친척, 선후배, 회사 모임 말고 취향 공동체를 찾는 거죠.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예의 갖춰서 접점을 늘리겠다는 거죠. 언컨택트 사회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가리겠다는 거예요. 나쁜 경험을 줄이고 좋은 경험을 더 쌓겠다는 거죠. 중요한 건 만남의 선택권이에요. 회식이 싫은 게 아니라 선택권이 없다는 걸 못 견디는 거니까. 예전엔 선택권이 없었고 지금은 선택권이 있어요."
-전통적인 톱다운 방식의 문화를 버리고 자발적으로 재조립한 느슨한 공동체에서 수평 문화를 즐기겠다는 건데, 그게 또 긱노동, 비혼, 저출산 문화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안전을 확보받던 인간이 ‘튼튼한 개인'으로 독립 선언을 한 셈인데요.
"맞습니다. 집단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던 취업, 결혼, 출산이 다 선택권 안으로 들어온 거죠. 세상에 제일 시시한 게 뭡니까? 결론을 아는 소설을 읽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성세대는 몇 살에 결혼하고 집 사고, 애 낳고… 이런 정답을 청년들에게 강요했어요.
그들이 멈추고 가만히 추적해 보니 "정해진 대로 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막상 행복해 보이지 않거든요. 거기서 ‘내 길은 내가 갈게'의 결단이 시작된 거예요. 변화는 ‘할지 말지’가 아니에요. 일단 시작된 변화는 기성세대도 긴 호흡으로 지켜봐야 해요."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긴 호흡으로 관찰하는 동안, 혹시 전염병이라는 변수는 감지가 안 됐나요?
"(담담하게)연구자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전염병은 당연한 순서였어요."
-어떤 신호가 잡혔죠?
"지난 100년간, 아니 20년간만 봐도 전염병이 더 자주 발생했어요. 광우병, 돼지 독감 등 가축 질병이 끊임없이 뉴스를 장식했어요. 사람도 가축도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으면 위험성이 증폭돼요. 한군데 문제 생기면 다 폐쇄해야죠.
90년대부터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면서 공장 네트워크가 가동됐잖아요. 생산 연결망만 촘촘해진 게 아니에요. 한 도시에서 어떤 스타일이 뜨면 순식간에 글로벌 트렌드로 유행이 퍼져요. 시간 차가 거의 없어요. 여행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도시 키우고 자연 파괴하면서 인간과 야생의 거리가 확 좁혀졌죠. 야생과의 거리 지키기를 무시한 건 인간이에요. 인간이 야생의 에어리어에 쳐들어간 거죠. 전염병의 7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인 건 아시죠?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바이러스는 계속 나올 거예요. 비대면으로의 변화는 필연이고요."
-경제 환경은 어떻게 변화될까요?
"위기 때 기업이 어디에 돈을 쓰는가를 보면 일자리의 방향을 알 수 있어요. 9·11 이후에는 금융사들이 백업시스템을 만드는 데 돈을 썼어요. 2008년 외환 위기 때는 IT에 돈을 썼죠. 지금은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돈을 써요.
당장 생산공장을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분산시키고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걸 알게 됐어요. 감염자 생기면 공장을 멈춰야 하니, 자동화 속도가 더 가속화돼요. 기업은 이미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생산, 물류 자동화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
-에어비앤비의 대규모 감원, 항공사 무급 휴가 등이 이어지고 있어요. 관광 산업의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가요?
"여행 산업은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어요. 그동안 관광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건 가격이 싸져서예요. 종사자의 헌신, 환경의 희생을 저당 잡아서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각종 검사로 국경의 장벽은 더 높아졌어요. 비행기가 배출하는 탄소 문제도 점점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요. 코로나 이전에 조사했는데, 많은 승객이 돈 더 내고라도 바이오 연료로 전환한 비행기를 타겠다고 했어요.
좌석 간격 넓히고, 바이오 연료 사용하면 당장 항공권값이 크게 올라요. 단체 깃발 드는 저가 여행 시장은 죽고, 부자 여행이 남겠죠. 싸게 누리면서 희생하고 파괴했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겁니다. 기후 변화가 그렇게 뼈아픈 거예요. 코로나가 편리함을 걷어내고 함께 오래 가는 과제를 내준 셈입니다."
-혼란과 위기 상황에서 더 성장한 기업도 있겠지요?
"아마존, 페이스북은 다 매출이 올랐죠. IT업계가 유리한 건 당연하지만, 산업 전반에 IT화가 더 가속화됐어요. 특히 캐나다의 쇼핑몰 구축 서비스 ‘쇼피파이’가 시가 총액 최고치를 경신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신생 기업이 순식간에 삼성전자를 잇는 2위로 성장한 거죠. 지금은 플랫폼 기업의 황금기예요. 동네 쌀가게 아저씨도 맘만 먹으면 온라인으로 전국에 쌀을 팔 수 있는 시대죠.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먼저 변화한 기업이 열매를 땄어요. 던킨도너츠는 던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커피 브랜드가 됐어요. 도넛이 안 팔리니까 재빠르게 몸을 바꿨죠. 작년부터 스마트 오더로 드라이브 스루를 했는데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가장 먼저 준비해서 이미 1년 치 고객 데이터가 쌓였어요. 그 차이가 굉장히 커요."
-비대면 욕구의 흐름에서 일본의 ‘침묵’ 서비스 택시와 화장품 매장의 ‘혼자 볼게요' 바구니도 인상적이더군요. 코로나 시기에 물류와 배송 시장도 폭증했는데, 부작용은 없습니까?
"확실히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줄었어요. 얼굴 안 봐도 새벽에 문 앞에 물건이 와있으니까요. 배송 시장이 커지고 택배 노동자가 많아지면 비용은 상승해요. 그게 정상이죠. 뼈 빠지게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하면서 임금 인상 얘긴 쏙 빼면 그게 무례죠. 전 세계에서 한국이 택배비가 가장 쌉니다. 곧 적정 가격으로 상승할 거예요."
-공연이나 강연 등 콘텐츠 시장의 변화도 크겠지요?
"얼마 전 SM에서 온라인으로 슈퍼M 'Beyond LIVE' 콘서트를 했어요. 3만 원 티켓값을 치르고 7만 5천 명의 유료 관객이 등판했어요. 관객을 화면에 배경으로 띄우고 인터랙티브를 구현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경험치에 갇혀 있는 동안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어요. 공연 라이브는 실황으로 팔고, 이후 녹화 콘텐츠도 유료로 팔 수 있어요.
몇몇 행사에서는 기자 회견도 홀로그램으로 했어요. 영화 ‘킹스맨;골든서클'의 홀로그램 회의가 현실이 됐어요. 강연 시장도 몸살을 앓고 있어요. 기업 스트리밍 강연은 꼭 필요한 콘텐츠만 선별해요. 교양은 직원들이 각자 쌓으라는 거죠. 전체 시장은 죽었지만 기준은 더 엄격해졌어요.
대학과 교회는 온라인 강연으로 더 ‘수평화'가 진행됐죠. 오프라인에선 높은 단상에서 이야기하면 10년 전 노트로 강의해도 대충 참아줬지만, 이젠 아닙니다. 등록금 돌려달라고 해요. 온라인에선 숨을 틈이 없어요. 실력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요. 쉴새 없이 메시지를 줘야 하니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죠. 결국 실력 있는 자가 이겨요."
-소비자 입장에서 경험의 질과 빈도도 달라지겠군요.
"접촉을 줄인다고 경험이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줄이고 경험의 질을 극대화하려는 거죠. 뉴욕 출장 여러 번 갔다면, 이젠 한 번으로 이슈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대체 가능해요. 유명 변호사와 더 쉽게 상담받고, 셀러브러티와 더 가깝게 접속하죠. 온라인을 자주 경험할수록 오프라인은 더 활성화돼요. 경험 시장은 좀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지가 되는 겁니다."
-진정성의 문제는 없을까요?
"만난다고 진정성이 확인될까요? 태도 문제는 사회 문제예요. 내 눈앞에 있고 없고로 분별 못 해요. 선악과 진위의 행태는 온이냐 오프냐가 아니에요. 진짜는 그냥 진짜고, 가짜는 가짜예요."
-언컨택트 시대의 가장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환상적인 풍경은 투명하고 공정한 관계로 신뢰를 구축하는 거예요. 쓸데없는 데 낭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시간을 써서 자아 성취한 개인들이 많아지는 거고요. 각자 기준에 따라 컨택트와 언컨택트를 자율적으로 관리하면서요.
TV에서 여행 프로 자꾸 보면 가고 싶잖아요. 가령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직접 눈으로 보고, 몇몇 미술관은 또 시간 줄여서 온라인으로 즐기면 돼요. 과잉 접촉 사회에서는 상사가 일 잘하는 후배는 모른 체하고, 직계 후배 몰고 다니며 사내정치를 했잖아요. 그런 ‘라인'에 연연해 줄 안 서도 되니, 언컨택트 사회는 더 실용적이고 안전해요."
-마지막으로 보통 사람들은 ‘비대면 사회’를 맞아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이 변화가 당황스러운 분들은 사실 일반인입니다. 기업은 다 알고 있었어요. 코로나가 또 올 수도, 더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것도요. 당장은 어색하고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이 흐름을 빨리 따라가야 해요. 사회적 욕망은 과잉 컨택트가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해 왔어요. 5년 10년, 20년 단위로, 더 나은 욕망을 찾아 사회는 확확 변해요. 더 괜찮은 사회를 향해서요. 핵심은 하나예요. 변화를 받아들이세요. 기업이든 사람이든 먼저 대비하는 자가 열매를 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