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26) “후추, 생강 넣은 막걸리 맛, 궁금하지 않나요?"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입력 2020.05.15 15:31 | 수정 2020.05.15 16:51

    작년에 생긴 ‘구름아 양조장', 후추, 생강 넣은 ‘만남의 장소' 막걸리 올 초 내놓아
    천도복숭아 넣은 약주 ‘사랑의 편지'도 없어서 못팔 정도로 매니아들에게 인기
    소규모 제조면허 취득...온라인 판매 안되는 대신, 다양한 재료 활용할 수 있어

    톡톡 튀는 젊은 감성으로 우리 술을 빚는 핫한 양조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양조장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규모 양조장 ‘구름아 양조장'. 여기서 만드는 막걸리 ‘만남의 장소'는 만들기도 전에 불티나게 예약주문이 쇄도한다. 구름아 양조장은 지역특산주 면허가 아닌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를 갖고 있어 온라인 판매는 하지 못한다. 대신, 인스타 계정으로 예약을 받아 개인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약 받기 시작하면 한시간만에 판매 물량이 품절된다고 한다.

    왜일까? 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서울 마포구 토정로 14길 16에 위치한 양조장을 찾아갔다. 양조장 간판도 없어 양조장 근처에서 한참을 헤매고서야 구름아 양조장의 ‘양조 3인방’ 이두재, 양유미, 소지섭 세 사람을 만났다.

    현재 이들은 모두 팀장 직함을 갖고 있으며 구름아 양조장의 김종호 대표는 강원도 철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업가. 김 대표는 재무적 투자자 역할을 하고 있어 술 빚기는 전적으로 세 사람의 30대 청년이 맡고 있다.

    구름아 양조장의 양조 3인방. 오른쪽부터 이두재, 양유미, 소지섭. /박순욱 기자
    이두재, 양유미 팀장 둘은 ‘곰세마리양조장’에서 서양의 꿀술인 미드(mead)를 같이 만든 경험이 있다. 구름아 양조장에 최근 새로 들어온 소지섭 팀장은 경기도 용인의 술샘 양조장 출신. 술샘의 증류주인 ‘미르’, 막걸리 ‘술 취한 원숭이', 약주 ‘감사' 개발에 참여했다. 양조 경력은 ‘전입 신참'인 소 팀장이 가장 많다.

    구름아 양조장은 작년 4월 설립됐으며, 작년 12월 첫 술로 약주 ‘사랑의 편지'를 내놓은데 이어 올 초에는 두번째 술인 ‘만남의 장소' 막걸리를 출시했다. 이 두가지 술은 이두재, 양유미 팀장 두 양조사의 작품이다. 현재 서울 프라자호텔 한식당 주옥(미슐랭 1스타)을 비롯해 10여군데 식당에서 ‘구름아 양조장’ 술을 취급하고 있다.

    생긴 지 겨우 일년된 신생 양조장인 구름아 양조장이 전통술 매니아들에게 각인된 것은 최근에 나온 막걸리 ‘만남의 장소’ 덕분이다. 우선, 술 이름부터 기존의 막걸리들과는 확연히 튄다. 이름을 지은 양유미 팀장은 "공항에 갔다가 ‘만남의 장소' 팻말을 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술 컨셉과 꼭같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만든 술이 사람과 사람을, 또 사람과 음식을, 사람과 시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램에서 ‘만남의 장소'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 술은 이름 만큼이나 술 재료나 맛도 남다르다. 쌀은 철원오대미를 쓴다. 삼양주 제조법으로 빚은 탁주다. 쌀범벅에 누룩을 넣어 두번 발효시키고, 고두밥을 한번 더 넣어 총 세번 발효를 거친다. 세번 담그는 삼양주는 드문 술이지만,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만남의 장소’가 특이하다는 것은 삼양주라서가 아니라, 세번째 발효 도중에 넣는 부재료 때문이다. 통후추와 생강, 그리고 레몬과 건포도도 조금 넣는다. 수제맥주 업계에서 발효가 마무리될 즈음에 쌉싸름한 향을 돋우기 위해 홉을 넣는 ‘드라이 호핑' 제조법과도 닮았다. 그래도 그렇지, 향신료 중에서도 맛이 센 편인 후추, 생강을 단맛이 특징인 막걸리 만드는데 넣다니?

    구름아 양조장의 간판 상품인 ‘만남의 장소’ 막걸리. 라벨 그림은 금동미륵보살반가유상에서 따왔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구름아 양조장 제공
    후추, 생강을 넣었다고 하지만, 후추, 생강 향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이두재 팀장은 "한모금 마셔보면 후추 향을 느끼기 보다는 로즈마리 같은 허브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정도"라며 "이 술을 두어잔 마시면 목이 따뜻해지는 느낌인데, 이는 생강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쌀 이외 부재료가 특이한 것은 첫작품 ‘사랑의 편지'도 마찬가지다. 멥쌀과 찹쌀을 많이 넣었지만, 이번엔 부재료로 천도복숭아를 넣었다. 덕분에 달콤상큼한 향이 입 안에서 오랫동안 머문다. ‘한모금 마셨더니 제철 천도복숭아를 한입 베어먹은 것 같았다'는 후기도 여럿 있다. 가격이 4만원대로 비싼 편인데도, 재고가 없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양유미 팀장이 말하는 ‘사랑의 편지’ 맛은 이랬다. "새콤달콤한 복숭아 타르트로 시작해, 쌉싸름하면서도 단맛이 느껴지는 쌀의 맛으로 마무리한다."

    맑은 술 ‘사랑의 편지'는 ‘시간이 돈'인 양조업계에서 보기 드문 ‘슬로우 푸드’다. 부재료인 천도복숭아를 넣고, 그 고형물들이 천천히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맑은 술만을 걸러냈다. 여과기를 사용하지 않고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맑은 부분만 떠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 빚었다는 것이다. 구름아 양조장측은 "산미가 적당히 있어 식전주로 특히 잘 어울리지만, 가장 맛있게 마시는 요령은 음식과 함께 마시는 식중주로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 약주와 비슷한14도다.

    구름아 양조장의 첫 상품인 ‘사랑의 편지’. 천도복숭아를 넣었다. /구름아 양조장 제공
    ‘사랑의 편지’는 제철과일인 천도복숭아를 넣기 때문에 연중 생산은 어렵다. 천도복숭아가 많이 나오는 6~7월경에만 빚을 수 있다. 소지섭 팀장은 "올해도 6월에 빚어 9월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름아 양조장이 만드는 사랑의 편지, 만남의 장소 같은 술들은 기존의 막걸리나 프리미엄탁주와도 구분이 된다. 인공감미료 같은 화학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는다는 점이나 가격 면에서는 1000원대 막걸리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리미엄탁주가 쌀, 누룩, 물 이외에 일체의 부재료를 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후추, 생강을 넣은 ‘만남의 장소’를 프리미엄탁주라는 카테고리에 넣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서 구름아 양조장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술을 막걸리, 탁주 아닌 ‘쌀술'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막걸리 하면 장수막걸리처럼 탄산이 강하고, 인공감미료로 맛을 낸 술이란 뉘앙스가 있다. 또, 탁주는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뜻이 강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술은 이 양쪽의 카테고리 둘 다 속하게 하고 싶지 않다. 특히, 막 걸러 마시는 술, 막걸리의 부정적인 편견 없이 새로운 술처럼 음미해달라는 의미에서 ‘쌀술'로 불러주었으면 한다. 소비자들이 이 술의 주 원료인 쌀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미에 더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의미도 있다. 또, 탁주가 무슨 술인지, 전통술을 즐겨 드시는 분들은 잘 알지만 무슨 재료로 만든 술인지 모르는 분들도 꽤 있다. 또, 탁주 하면 좀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쌀술 하면 쌀로 만든 술이란 걸 금방 알지 않겠나? 쌀로 만든 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편한 이름이 ‘쌀술'이라고 생각한다."(양유미 팀장)

    구름아 양조장 직원들이 발효조 청소를 하고 있다. /구름아 양조장 제공
    "막걸리, 탁주의 메인 재료인 쌀에 좀 더 주목해서 술을 빚는다는 의미도 있다. 또, 우리가 만드는 술만 쌀술로 불러 달라는게 아니라 쌀로 만든 모든 술을 앞으로는 쌀술로 부르면 어떨까 하는 바램도 있다."(소지섭 팀장)

    ‘만남의 장소’를 맛봤다. 막걸리 특유의 단맛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굉장히 드라이한 술이란 생각도 들었다. 후추, 생강 향이 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향신료의 일종인 후추와 생강을 넣었기 때문에 기름진 고기나 생선과도 잘 어울린다"는 설명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우선, 향이 복합적이다보니, 같이 먹는 음식 자체의 맛을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음식을 치켜세우기엔 술 자체의 개성이 너무 강한 것일까?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향이 강해 음식과의 페어링이 어렵지 않나?

    "술 개발 단계에서부터 음식궁합을 고민한다. 술 만들 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세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음식과 페어링이 잘 돼야 한다. 둘째, 술을 음식 없이 단독으로 마셨을 때도 무난해야 한다. 셋째는 한 사람이 한병 이상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질리지 않아야 한다. 한병 이상 마신다는 것은, 마시는데 알코올 도수를 비롯해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늘 이 세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술을 만든다. 실제로 우리 술을 마셔본 고객들은 대부분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이번에는 뭐랑 같이 마셨는데 좋았어요.’, ‘젤라또 아이스크림과도 만남의 장소가 잘 어울렸어요.’ 이런 피드백들이 많다." (이두재 팀장)

    왜 후추, 생강을 넣었나?

    "술 개발은 작년 초 시작했다. 후추, 생강을 비롯해 다양한 부재료로 술을 빚어봤다. 사과, 계피, 단호박을 넣은 술도 만들었다. 하나의 부재료를 넣기도 했지만, 두개, 세개 섞어서 넣기도 했다. 그런데, 후추와 생강을 넣었을 때 정말 맛있고, 음식인 고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향신료이니까. 음식과 페어링이 좋겠다고 여겼다.

    후발주자니까, 뭔가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쌀 자체로 차별화는 어렵다고 보고, 남들 안넣는 부재료를 넣어보자고 생각했다. 삼양주인 만남의 장소 경우, 세번째 발효 때 후추와 생강을 넣었다. 수제맥주의 드라이호핑과 유사한 방법을 쓴 것이다. 향신료를 넣은 셈이니, 고기나 기름진 생선과도 페어링이 잘된다. 음식의 맛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별 음식 없이 술만 마셔도 손색이 없다."(양유미 팀장)

    발효가 끝난 막걸리 ‘만남의 장소'를 병에 담기 전 발효조에 담겨 있는 모습. /구름아 양조장 제공
    구름아 양조장은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이기 때문에 인터넷 판매는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재료 사용에는 제약이 없다. 반면에,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으면 인터넷 판매가 가능하고 세제 감면 혜택도 있지만, 재료를 쓰는데는 제약이 있다. 면허를 받은 해당 지역에서 난 농산물만 사용할 수 있다. 지역특산주 면허의 취지가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 중인 신제품은?

    "구체적인 얘기는 영업비밀이라 할 수 없고, 여름을 겨냥한 신제품을 개발, 내놓을 예정이다. ‘맥주 덕후들의 성지’로 유명한 수제맥주 업체 ‘서울집시' 와 협업한 신상품도 준비 중이다."(양유미 팀장)

    구름아 양조장 직원들이 밤 늦은 시각에 술을 빚고 있다. /구름아 양조장 제공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지 않은 이유는?

    "우선, 우리 양조장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면 그 지방 특산물을 마음껏 쓸 수 있을테지만, 서울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구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으면, 양조장에 인접한 구의 특산물만 술 재료로 쓸 수 있다. 서울은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이기는 하지만, 실제 생산되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양조장을 할거면 부재료를 다양하게 쓸 수 있는 소규모 제조 면허가 지역특산주 면허보다 더 낫다고 보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이두재 팀장)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박순욱의 술기행] (27) “수제맥주, 쌉싸름하면서도 단맛 나야 잘 팔려”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25) “맥주, 와인 같기도 한 막걸리, 한번 맛보세요"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24) “공기 통하는 옹기에서 숙성한 화요는 쓴맛 없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23)”식초 넣어 만든 별산막걸리, 최고상 받았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22)대한민국주류대상 최고상 받은 스퀴즈브루어리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21)대한민국주류대상 최고상 받은 산머루와인 ‘비원퓨어'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20) “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만든 과하주, 이제 사계절 즐겨요.”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19) “좋은 술은 정직한 재료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만들어야”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18) 전통주점 인기 1위 술은 ‘탄산 막걸리’인 이화백주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17) “세종대왕께 진상한다는 정성으로 술을 빚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16) “전통누룩 제대로 쓰지 않은 술은 우리 술 아니죠"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⑮ “누룩 냄새 안나는 '한국형 사케' 새로 만들었어요" 박순욱 선임기자
    故배상면 회장의 마지막 역작… 딸이 이어받아 우리술 대상 박순욱 선임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⑬좋은술 이예령 대표 “조선시대 탁주는 벌컥벌컥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박순욱 기자
    세계 최고 와인 평론가에 '100점' 받은 와인의 정체 박순욱 선임기자
    감미료 없어 숙취 없는 이 막걸리… 목넘김도 비단결 같네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⑩삼해소주가 김택상 명인 “10년 이상 숙성시킨 위스키보다 부드럽다"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⑨우리술 박성기 대표 “즐기기 위해 마시는 술로 막걸리 만한게 있나요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⑧바이올리니스트가 만든 '황매 매실주' 맛은 어떨까?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⑦정준하의 새로운 무한도전, ‘전통주 소믈리에’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⑥30대 청년 넷, 서울쌀로 '무감미료 막걸리' 만들다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⑤전국 최대 전통주점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 “전통술의 박물관 역할하고 싶어요"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④논산, 평택의 명품 막걸리 주조 현장을 가다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 ③9년만에 매출 100배 키운 지평주조 박순욱 기자
    '카스:테라' 전쟁 시작… 테라, 39일만에 100만 상자 팔렸다 박순욱 기자
    [박순욱의 술기행]① "佛에 수출한 한국 스파클링 와인 아세요" 박순욱 기자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