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책 정치화 멈추고, 이념보다 실력 중시해야”

입력 2020.05.21 06:10

[이코노미조선]
지상 대담 오정근 한국금융 ICT융합학회 회장, 우석훈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리더십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리던 포퓰리즘 정부는 방역 실패로 입지가 흔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전문 지식 부족, 여론을 의식한 지나친 낙관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태도로 국가를 위기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대중형 리더를 대체할 글로벌 리더십은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형 리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차이잉원 대만 총통,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전문성을 앞세운 방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포퓰리즘의 세계화가 코로나19로 주춤할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지, 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 ‘이코노미조선’이 제347호 커버스토리에서 정리했다. [편집자주]

포퓰리즘도 엘리트주의도 경계
소통의 리더십 중요해질 것
국가 채무 심각 vs 문제없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 학·석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 한국금융 ICT융합학회
올해 4월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긴급재난지원금을 들고나와 포퓰리즘 논란이 일었다. 여당(진보) 측에서 ‘4인 가구당 100만원 지급’으로 포문을 열자 애초 긴급재난지원금에 비판적 입장이었던 야당(보수)도 금액을 달리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야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지난해 말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모든 경제 이슈를 집어삼켰다. 포스트 코로나(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에는 과연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이코노미조선’은 오정근 한국금융 ICT융합학회 회장, 우석훈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와 지상 대담을 했다. 오 회장은 우파, 우 대표는 중도 좌파를 각각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오 회장은 직접 만났고 우 대표는 이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우려되는 국가 채무와 재정 건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를 밝혔지만,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또 극단적인 엘리트주의도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를 어떻게 봤나.

오정근 "야당에 경제 정책 철학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재직 시절 선택적 복지(무상급식 반대)를 내걸고 정치적 승부를 건 후 결국 자리에서 내려왔다. ‘보편적 복지는 나의 철학이 아니다’라고 용감하게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총선에서 여당이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다 준다고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언을 하니 야당은 50만원 준다며 따라갔다. 당 지도부의 상황 인식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됐다. 문제가 심각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리쇼어링(reshoring·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들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우석훈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라는 개념이 귀환하는 중인 것 같다. 방역은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로 이뤄진다. 한동안 시장이 모든 것을 할 거라고 했는데, 전격적으로 국가가 돌아왔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가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정치다. 정치의 중요성 역시 강해졌다. 진보냐 보수냐, 이런 기존의 기준이 아니라 방역을 얼마나 잘하느냐, 이런 기준에 의해서 정치가 움직여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시대에 한국 정치는 아직 제대로 적응을 못 하는 것도 같다. 이는 여전히 실력보다 이념이 중시되고 있다는 의미다."

우석훈. 연세대 경제학 학사, 프랑스 파리 제10대학 경제학 박사,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성공회대 외래 교수,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88만원 세대’ 공동 저자 / 내가 꿈꾸는 나라
앞으로 어떤 경제 정책 철학이 필요한가.

오정근 "우파(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좌파(진보)는 분배를 중시한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진보 정권하에서 일자리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분배도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를 공부했지만, 진보의 경제 정책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성장이 분배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을 옥좨서는 일자리 창출은 요원하다."

우석훈 "신속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심으로 보자. 지난 몇 달간 코로나19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열심히 하자’고만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난지원금 절반을 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두 주자’고 했다. 결국 길고 긴 논쟁 끝에 이재명 도지사가 하자는 대로 결정됐다. 일상적인 경우라면 박원순 서울시장 방식이 선택될 가능성이 컸겠지만, 지금은 좀 특수한 시기다. 평소에 신속성과 투명성, 행정력 등을 내재한 사람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다."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생각은.

오정근 "둘 다 정답은 아니다. 엘리트주의는 절대 선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보자. 분명 엘리트지만 알고 보니 정의와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대의 민주주의가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적당한 자격을 갖춘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줬다. 일부 엘리트 또는 일반 대중에게 맡겨두지 않고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대의 의원들이 판단하게 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절충안이 필요하다."

우석훈 "엘리트 중심적인 리더십은 지금처럼 극도의 혼돈과 공포가 있는 시기에는 주목받기 어렵고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방역 과정에서 지역경제의 최전선 단위인 ‘로컬’의 약진이 있었다. 지역별로 리더십의 차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뉴질랜드에서는 국경 봉쇄 등 매우 강력한 봉쇄를 했는데, 아무도 이걸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얘기가 자연히 많아지게 됐다. 결국 전문가의 조언을 충분히 듣고 대중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사람이 유능해 보일 것이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정근 "한국의 국가 채무는 위험한 수준이다. 한국은 ‘국가재정법’에 의거해 국가가 직접 갚아야 할 국채만을 빚으로 본다. 이를 국가 채무(government liability)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이 국가 빚을 보는 기준은 한국과 다르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통화기금(IMF) 재정 통계를 기준으로 빚을 산정해 이를 국가 부채(government debt)라고 한다. 공공기관 부채 중에서 국가의 기능을 하면서 지게 된 부채는 국가 부채로 간주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과 군인 연금 장기충당금도 마찬가지다. 이 기준에 의해 개인적으로 계산해보니까 한국은 이미 국가 부채 비율이 110%를 넘었다. 미국은 100%가 넘으면 예산통제법이 발동해 상하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재정 지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제동 장치가 없다."

우석훈 "한국은 당분간 재정 적자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막대한 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질 관광 같은 산업, 좋아질 미래형 산업 그리고 별 상관 없이 단기적 위기만 벗어나면 되는 산업 등 범주 구분과 분석 그리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논의가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필요한 경제 리더십은.

오정근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시대에는 민주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는 리더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통합적 리더십도 중요하다. 이념 논쟁만 해서는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경제 정책의 경우 거시경제 전문가가 중용돼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석훈 "방역 관련 기구와 경제 관련 기구의 유능성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최근 한국에서의 경제 논의다. 개방적이고 소통 중심적인 방역 당국과 상명하복, 폐쇄성 그리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구시대적 경제 관료가 너무 비교된다. 정책은 결국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수단이 이념이 됐고 그걸 수호하는 게 경제라는 이상한 개념이 자리 잡았다. 계속 이래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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