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의 최일선에 서있는 질병관리본부를 ‘청’(廳)으로 승격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관리에 있어 질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강, 위기 발생 시 효과적인 방역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방역 1등 국가’ 구상이다.
정부조직체계에서 특정 기관의 ‘청’ 승격은 관련 사안에 대한 독자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또 청장은 중앙행정기관의 수장으로 소속 공무원에 대한 인사·지휘·감독권을 갖는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지위가 바뀌면 감염병 발생 상황에서 관리·통제에 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타 기관의 간섭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복지부 장관의 업무 중 하나인 ‘감염병 및 각종 질병에 관한 방역·조사·검역·시험·연구·장기이식관리’에 관한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별도 기관이다. 질병관리본부장은 보건복지부의 명을 받아 소관 업무를 관할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2016년 1월부터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지위가 올랐다. 그러나 인사·예산권은 여전히 보건복지부에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여러 감염병 연구나 역학조사관 인력 확충 등 방역대책을 세우는데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의료계 등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으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있어서도 외국인의 입국 제한 시기나 범위 등에 대한 판단은 보건복지부가 주축이 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주도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질본의 권한이 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에서 우리 질본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가 지난 2월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최고 수준인 3단계 ‘경고’로 격상하는데 외교부나 국무부와의 협의 없이 독자 결정을 내린 것과 달랐던 것이다.
향후 질병관리청에 어떤 권한이 부여될지는 국회에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또 지금처럼 보건복지부 소속 외청으로 할 것이냐, 국무총리 산하의 독립청이 될 것이냐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에서의 청장 직위는 현재 본부장과 동일한 차관급이다. 그러나 조직은 1본부장 체제에서 1청장·1차장 체제로 확대된다. 여기에 정부는 현재 전국 6개 권역에 질병관리청의 지역본부를 설치하고, 검역사무소도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그리고 있다. 역학조사관이 부족해 지방자치단체의 힘을 빌려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질병관리청 체제에선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질병관리본부의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질본의 청 승격에 다소 우려를 표했다. 위기 발생 시 보건당국(보건복지부)과 방역당국(질병관리청)이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질본의 청 승격 시) 긍정적인 면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면서도 "청으로 분리·독립했을 때 감염병 위기가 오면 보건당국과 방역당국의 유기적인 협조가 저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 총괄조정관은 "실제로 식약처도 부처 내에 같이 있을 때는 소통과 업무 협력이 용이했지만 분리 후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청 승격과 관련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말을 아꼈다. 정 본부장은 "관련 법(정부조직법) 개정이나 조직 보강을 하면서 정부와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며 "질본의 청 승격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질본은 현재 코로나 19 극복과 대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