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가 기업의 'X맨'

조선비즈
  • 안소영 기자
    입력 2020.05.13 06:15

    "정부가 경쟁력을 키워주지는 못할망정, 가지고 있던 경쟁력까지 빼앗으려고 하네요."

    정부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한 지난 8일. 전력수급안을 본 기업 관계자 A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으로 꼽혔던 낮은 전기료까지 사라질 조짐이 보인 탓이다. 그는 "당장 미국이나 중국, 인도 정부는 기업에게 무기를 쥐여주는데 우리 정부는 돈이나 더 내라고 하고 있다"며 "기업을 화수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안에는 2034년까지 원전 9기, 석탄발전설비 19기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26.3%)도 원전(23.6%)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1kWh당 LNG 정산단가는 114.6원으로 원자력(60.7원), 유연탄(91.2원)보다 높아 전기료 인상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료 인상 부문을 거론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총괄분과위원회는 "이번 전력수급기본계획 논의 땐 전기료와 관련해 따로 검토하지 않았다"라며 "추후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력공급 안정성, 최대 전력 과소 예측, LNG 수입액 증가 등 훤히 보이는 문제에 대한 대안도 보이지 않았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이 비단 전기요금 인상뿐일까. 내년에 강화될 탄소배출권 정책도 마찬가지다. 탄소배출권 정책은 기업이 허용된 배출량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비용을 주고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는 제도다. 2015년 1월 시작된 탄소배출권 정책은 설비개선, 효율 증진 등이 적절하게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강행되고 있다.

    내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 3차계획기간이 시작되면 기업이 구매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은 기존보다 7%포인트 증가한 10%가 된다. 기업들의 수요보다 시장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뛰면서 부담도 크다. 국내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높은 탄소 배출권 가격, 적은 할당량이 원가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재조정을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유턴, 해외의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도 생존을 걱정하는 판에 떠난 기업들이 다시 한국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살기 좋은 지역에는 많은 사람이 이주해오기 마련’이라는 원칙을 기억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정부가 기업 성장의 ‘X맨(우리편을 가장한 적)’이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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