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돈의 중국 마케팅 (96) 한·중 양국에서 안녕(安寧)의 의미 <2>

조선비즈
  • 오강돈
    입력 2020.05.12 10:00

    ‘안(安)’ 글자가 들어간 지명, 변경에선 ‘안녕’·’진압’의 뜻 담은 경우 많고
    중원(中原)·관중(关中) 지역 지명에 들어갈 때는 ‘왕조·권력의 안정’ 기원하는 의미

    사회에 재난이 있거나 역병이 돌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늘상 해왔던 인사말 ‘안녕하세요’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그야말로 ‘그새 안녕하세요?’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인사말 안녕하세요의 ‘안녕(安寧)’의 의미는 대략 ‘몸이 건강(康∙강)하고 마음이 편안(寧∙녕)한 상태’를 뜻하므로 두 글자를 합쳐 ‘강녕(康寧)’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국에서 안녕이라는 말의 뜻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중국어로 ‘안녕(安宁)’이라 하면 ‘사회에 소요같은 사태가 없는 등 질서(秩序)가 안정(安定)적’이거나, ‘생활이 평온(平稳)하고 조용(宁静)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어의 안녕(安宁)과 비슷한 중국어 단어는 안정(安定), 온정(稳定) 등이 된다. 한국어의 ‘안녕(安寧)’을 중국어로 굳이 바꾸려면 평안(平安), 안호(安好) 정도가 비교적 가깝다 하겠다.

    그래서 중국 곳곳 땅이름(地名)과 행정구역의 유래를 들여다 보면 ‘안(安)’과 ‘녕(宁)’의 글자가 들어 있을 때 ‘그 지역의 질서(秩序)가 안정적이고, 권력에 골칫거리가 되지 않게 조용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지난 글에서는 중국 땅 이름 ‘녕하(宁夏)’, ‘서녕(西宁)’, ‘남녕(南宁)’, ‘요녕(辽宁)’, ‘녕국(宁国)’, ‘함녕(咸宁)’, ‘집녕(集宁)’, ‘제녕(济宁)’, ‘녕파(宁波)’, ‘강녕(江宁)’등 ‘녕(宁)’ 글자가 들어간 지명의 의미를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안(安)’ 글자가 들어간 지명에 대해 알아본다.

    현대 중국의 34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안휘’성은 화북(华北), 화동(华东), 화중(华中)등 3개 지역의 요충지인데 고래로 이곳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치열했고, 황산(黄山)같은 명산이 즐비하다. ‘안휘(安徽)’라는 행정구역은 청나라 때 ‘안경(安庆)’과 휘주(徽州)를 합쳐 생긴 것인데, 휘주의 이름이 ‘신안(新安)’이기도 했기 때문에 ‘안휘’에는 두 개의 ‘안(安)’ 관련 지역 의미가 들어 있는 셈이다.

    ‘신안(新安)’ 황산(黄山)의 명물 영객송(迎客松). 손님맞이 소나무라는 뜻이다.
    안휘성의 ‘안경(安庆)’은 송나라때 생긴 지명으로 ‘평안(平安)과 경사(吉庆)’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안경은 황산의 북쪽에 있으면서 장강(양자강)이 지나는 곳이기에 그 지리적 중요성이 크고 외침에 대비하기 좋은 땅이어서 청나라부터 중화민국 때까지 안휘성의 수도(首府∙수부)로 기능했다. 안경에서 장강을 타고 하류로 내려가면 바로 중국국민당 중화민국의 수도(首都)였던 남경(南京)이 나온다. 안경에 남경 방어선의 역할도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국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안휘성의 수도(首府)가 안경 북쪽의 합비(合肥)로 옮겨져, 안경과 남경의 중요성이 동시에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안휘성 합비 근처에는 ‘육안(六安)’이 있다. 고대 중국에 육(六) 부족이 이 땅에 있었는데, 한무제가 이 지역을 취하면서 ‘육의 땅(六地)’에서 영원히 모반이 일어나지 않고 ‘평안(平安)’하라는 의미로 ‘육안(六安)국’을 두었다고 전한다. 안경(安庆)의 서쪽에는 ‘영안’이 있다. ‘영원한 안녕’이라는 뜻의 ‘영안(永安)’ 지명은 훗날 ‘모두 안녕’ 의미의 ‘함녕(咸宁)’으로 바뀌었다.

    안휘성의 명산 황산(黄山) 근처를 휘주(徽州) 또는 ‘신안(新安)’이라 불렀다. 이 지역에 백월(百越)의 거병이 잦았는데, 중앙 권력이 이곳을 진압한 후 ‘새롭게 안정을 찾으라(新立安定∙신립 안정)’는 의미로 지명을 ‘신안(新安)’으로 삼은 것이다. 또 신안 부근에는 ‘임안(临安)’, ‘순안(顺安)’, ‘안길(安吉)’ 등 안(安)이 들어가는 지명이 유독 많다. 지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의 34개 행정구역중 하나인 귀주(贵州)성 역시 묘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고, 옛부터 중원(中原)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민족의 땅이었다. 이 지역에도 ‘안녕(安宁)’, ‘진압(镇)’ 등의 뜻이 담긴 지명들이 많다. ‘안순(安顺)’, ‘보안(普安)’, ‘진녕(镇宁)’, ‘진서(镇西)’ 등이다. 귀주성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비슷한 지명들이 더 나온다. 운남성의 ‘안녕(安宁)’은 당나라때, 해남도의 ‘정안(定安)’은 원나라때 정해진 땅 이름들이다.

    귀주성 ‘안순(安顺)’ 지역.
    변경 지역과는 다르게, 중국의 중원(中原)이나 관중(关中) 지역 지명에 ‘안(安)’이 들어갈 때는 ‘왕조(王朝)와 권력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미에 더 가깝다 하겠다. 중원(中原) 하남성 ‘안양(安阳)’은 중국인들이 고대 은허(殷墟) 유산으로 보존하고, 갑골문, 주역 등의 기원이라고 아끼는 곳이다. 안양 고성의 고대 이름은 동양(东阳)이었는데, 춘추전국 시대 위나라가 이땅을 차지하고 지명을 ‘녕신중(宁新中)’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진(秦)나라가 통일 위업을 달성한 후 이전 지명 동양(东阳)에서 양(阳)이라는 글자를 따오고, 녕신중(宁新中)에서 ‘녕(宁)’의 의미를 ‘안(安)’으로 바꿔 둘을 한데 묶어 ‘안양(安阳)’이라 하였다.

    관중(关中) 지역 ‘장안(长安)’은 13개의 왕조가 수도로 정한 도읍이다. 원래 이름은 호경, 함양이었다. 한(汉) 나라가 이곳에 수도를 두고 이름을 장안으로 바꾸었다. ‘장안’은 한서(汉书)에 등장하는 ‘장치 구안(长治久安)’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태평성대로 오래 다스리고(长治∙장치)’, ‘사회 질서가 오래 안정적인(久安∙구안)’의 뜻을 합쳤다. 명나라가 수도를 남경으로 정한 후에는 장안을 ‘서안(西安)’이라 하였다. 장안(长安) 남쪽의 ‘안강(安康)’도 ‘안녕(安宁)’과 ‘건강(康泰∙강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안양 북쪽의 ‘안평(安平)’, 그리고 남경 남쪽의 ‘안진(安镇)’ 등도 ‘안정’의 뜻이다.

    장안과 같은 관중(关中) 지역의 연주(延州)는 청나라때 ‘안(安)’ 의미를 고려하여 ‘연안(延安)’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나중에 연안은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국공내전때 중국공산당이 장정(长征) 끝에 자리잡은 혁명 근거지가 된다. 사천성의 야주(雅州) 땅이름 역시 ‘안(安)’의 의미를 고려하여 ‘야안(雅安)’으로 바뀌었다.

    중원(中原)의 ‘안양(安阳)’은 갑골문이 발견된 곳이다. ‘안양’에 있는 ‘중국 문자 박물관(中国文字博物馆)’ 광장 맨 앞에 ‘자(字)’ 글자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강소성의 ‘회안(淮安)’은 ‘제녕(济宁)’, ‘녕파(宁波)’, ‘강녕(江宁)’처럼 ‘자연 재해로부터의 안녕’을 기원한 지명이다. 회수(淮水)는 장강(양자강), 황하, 제수와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수로(四渎)’였는데 현재는 장강과 황하를 잇는 남북 운하 이외에는 그 자취를 찾기 어려워졌다.

    흑룡강의 ‘흥안(兴安)령(岭)’, 내몽고의 ‘흥안(兴安)맹(盟)’ 등 만주와 시베리아 사이에 남아있는 땅 이름 같은 경우, 지명에 포함된 ‘안(安)’의 의미가 강하다기 보다는 만주어로 구릉지대를 뜻하는 ‘싱안’을 한자어 ‘흥안(兴安∙싱안)’으로 옮긴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하겠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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