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파이프라인 상위 10대 제약사 모두 코로나 전쟁에 참전
기존 약 재활용⋅경쟁사와 공동개발 진행… 각개전투서 협업으로
주식 사거나 거액 투자하기도…독점 판매권 인수 조건 내걸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약 개발을 추진중인 10대 제약사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선점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평균 10년이 걸리는 개발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줄이기 위해 자가면역치료제 등 기존에 개발했던 약을 코로나19 치료제 적용시키거나 여러 회사가 전례없이 동시에 협업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둘러싸고 길리어드의 에볼라 출혈열 치료물질 ‘렘데시비르’, 애브비의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 일본 후지필름 자회사인 도야마(富山)화학이 개발한 항바이러스제 ‘아비간’이 유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발 경쟁이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간 단축하자"…기존 약 재활용하고 임상시험 공동 진행하는 세계 제약사
미국의 연구개발(R&D) 정보제공업체 파마프로젝트(Pharmaprojects)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 R&D 파이프라인 규모 상위사 10개 기업(2019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모두 코로나19와 관련된 사업 계획을 진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식은 △기존 개발된 약을 재활용하거나 △2개 회사 이상 공동 개발을 진행하거나 △인수 및 투자를 통한 판매권 획득 등이었다.
파이프라인 규모로 전세계 1위인 스위스의 노바티스(Novartis)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사이토카인 폭풍 증세를 보이는 코로나19 환자에게 자가면역치료제인 일라리스를 적용하기 위한 임상3상 시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결과는 올해 늦여름쯤 나올 예정이다.
노바티스에 따르면 이번 임상시험은 코로나19 환자들에서 사이토카인 물질 중 ‘IL-1β’가 증가했다는 실험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일라리스가 ‘IL-1β’를 억제해 사이토카인 염증반응을 겪는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관련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파이프라인 기준 전세계 2위인 일본 제약사 다케다(Takeda)도 지난 3월 혈액유래 의약품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계획을 밝혔다. 다케다는 지난해 1월 아일랜드 제약회사인 샤이어를 6조2000억엔에 인수했다. 샤이어는 알부민제제, 면역글로불린제제 등 혈액유래 의약품의 개발노하우를 갖고 있다.
세계 3위인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도 지난달 30일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낸다고 밝히고 이르면 올해 9월쯤 임상시험을 예정하고 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J&J는 백신 개발을 위해 미 보건복지부생명의학연구개발국(BARDA)과 파트너십을 맺고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한 바 있다. 9월부터 시작되는 임상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1년 초쯤 미 당국의 신속 승인을 받아 긴급 상황에서 백신을 환자에게 실제로 투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위인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Plc)는 자사가 개발한 항암제 칼퀸스(Calquence)를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하겠다고 지난 달 14일 밝혔다. 이 항암제는 미국 등 전세계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비롯한 혈액암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는 제품이다. BTK단백질이 염증반응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조절하는 원리다.
◇ 두 회사끼리 힘 합쳐 백신 개발하기도
글로벌 제약사끼리 백신 개발을 위해 손 잡는 사례도 있다. 사노피(파이프라인 기준 세계 5위)와 GSK(7위)는 두 회사의 기술을 합쳐 코로나19 항원보강제 백신 개발에 협력하는 내용의 협약서를 체결했다고 지난달 14일 밝혔다.
사노피는 재조합 DNA 기술에 기반한 S-단백질 코로나19 항원을 제공한다. 이 기술은 코로나19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과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생산한다. GSK는 여기에 자사의 항원보강제 기술을 제공하게 된다. 항원보강제는 1회 도즈 당 필요한 백신 단백질의 양을 줄여 더 많은 백신 도즈를 생산한다.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항원을 항원보강제와 결합하는 것은 백신 기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항원보강제는 일부 백신에 첨가돼 면역 반응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백신만 사용하는 경우보다 효과적이고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사는 올해 하반기에 1상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며,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승인신청을 하게 될 경우 2021년 하반기까지 백신 공급을 위해 필요한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미 제약사 화이자도 독일 바이오엔테크, 중국 푸싱약업(復星藥業)과 공동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 후보의 미국 내 임상시험을 이달초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지난달 말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5억 달러(약 6100억원)를 투자하고 양산 역량을 확충하는 데 추가로 1억50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들이 만들 백신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된다. mRNA는 DNA가 보내는 신호를 체세포에 전달해 특정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화이자는 이르면 6월쯤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목표대로라면 화이자는 올해 가을에 응급용 백신을 우선적으로 생산하고 연말까지 백신의 일반 사용을 위한 허가를 받게 된다.
◇ 치료제 개발 협력 위해 기업 주식 인수하기도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10위)는 중국의 바이오텍 상하이준스 바이오사이언스(Shanghai Junshi Biosciences)와 코로나19 치료용 항체 연구 협력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신주를 인수했다.
6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일라이릴리는 중화 항체 방식의 코로나19 치료제 ‘JS016’ 개발을 위해 상하이준스에 3억 3000만 달러를 단계적으로 투자하고 홍콩에 상장된 상하이준스 신주 7500만달러 어치를 인수하기로 했다. 일라이릴리의 중화권(중국 본토·홍콩·마카오·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개발, 생산 및 판매 독점권도 갖는 조건이다. 대중화권 라이센스는 상하이준스가 보유한다.
중화 항체는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을 인지하고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항체다. 항원을 이용해 인체에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백신과 달리 인체 세포와 바이러스의 결합을 차단하기 위해 항체 중화 치료제를 직접 주사한다.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후보 백신이 전(前)임상시험 단계부터 출시까지 과정을 완료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7년이고, 성공률은 6%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말 기준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00개 이상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진행 중이며 최소 8개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