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에 사는 A씨는 최근 ‘재난기본소득’으로 받은 지역화폐로 결제를 시도했다가 씁쓸한 뒷맛을 봤다. 한 전통시장에서 두부 한 모를 사면서 지역화폐를 내민 그에게 점원이 평소 가격보다 훨씬 비싼 4500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두부 한모의 평균 가격은 3000원. 점원은 지역화폐로 결제하려는 A씨에게 지난달보다 50%나 높은 가격을 요구한 셈이다.
A씨는 이후에도 방문하는 가게마다 재난지원금을 쓰려다 퇴짜를 맞았다. 지역화폐를 안 받는 가게도 있었고, 수수료를 현금으로 따로 내야 한다는 곳도 있었다. A씨는 이같은 경험을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지역 상인들을 도와주러 갔다가 괜히 기분만 상하고 왔다"고 했다.
각 지자체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지역 상권을 살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을 돕자는 취지로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이를 빌미로 일부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는 불만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난지원금을 등록주소지 내에서만 쓰도록 한 점을 악용해 며칠 사이 가격을 큰 폭으로 올려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되면 이같은 부정행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재난기본소득을 나눠준 경기도의 경우 ‘바가지’ 사례를 토로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 등은 주민등록상 주소지 내 중소상공인 매장에서 쓸 수 있는데, 이런 가게들이 가격을 며칠 새 올려받는다는 것이다.
경기 용인시 맘카페 한 이용자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마트에 가서 쌀을 사려고 했더니 20㎏ 한 포대가 현금가보다 2만5000원 비쌌다"며 "재난지원금으로 전기밥솥을 사려 발품을 팔아 간신히 판매처를 찾았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반품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경기 안산시 주민 B씨도 "동네 마트에서 삼겹살 한 근을 사려다 가격 때문에 깜짝 놀랐다"며 "평소 가격보다 8000원이나 비쌌다. 고기는 안 사야겠다"는 내용의 글을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처럼 지역화폐 사용을 이유로 추가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거래를 거부하는 행위는 여신전문금융법상 ‘사용자 차별 행위’에 해당된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신용카드 가맹점이 신용카드 사용자를 차별하면 가맹 취소 대상이 된다. 관계자와 업주는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에 처해질 수 있다.
피해사례를 고발하는 글은 잇따라 올라오고 있지만, 상인들은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수원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우리 시장은 오히려 지역화폐 사용 촉진을 위해 5% 할인행사에 나섰다"며 "만에 하나라도 바가지 사례가 포착되면 상인회 차원에서 경고 등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안양의 한 전통시장 상인회 관계자도 "시장에서 재난지원금 바가지 때문에 문제된 적은 아직 없다"며 "오히려 동네 마트 물가가 더 올랐다"고 선을 그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결국 지자체가 나서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때 가격을 올려받는 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현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수료나 추가 금전을 받으면 지역화폐 가맹 자격을 박탈하겠다"며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에 지역화폐 바가지 조사업무를 맡기고, 확인되는 업체는 가맹 제한, 형사처벌하고 시·군과 합동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도 다음주부터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 단속이나 계도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아직은 지자체 차원에서 단속하고 있지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후에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경우 합동 단속을 벌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