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아세안, 변화의 현장을 가다- 베트남③

'코로나 끄떡없다' 베트남 경제정상화 이끄는 민관 주축 3인방 현지 인터뷰

'코로나 끄떡없다' 베트남 경제정상화 이끄는 민관 주축 3인방 현지 인터뷰

입력 2020.05.06 06:10 | 수정 2020.05.06 09:47

싣는 순서: 

① 하노이에서 한국인은 "다리 놓아주며 앞에 가는 사람"

② 현지 진출 韓기업 어느새 9000개...中 실패 거울 삼아야

③ '코로나 끄떡없다' 베트남 경제정상화 이끄는 민관 주축 3인방 현지 인터뷰


지난달 28일 늦은 저녁, 베트남 수도 하노이 국회 의사당. 베트남 국정 운영을 맡은 각 분야 국무의원들이 의사당 내 화상회의실로 조용히 모여 들었다. 총리부터 경제부 고위급 관리,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보건부 담당자까지 10여명이 회의실 자리를 두칸씩 띄워 앉은채 국무회의를 시작했다. 참가자 가운데 3분의 2 가량은 마스크를 쓴 채 보고를 이어갔다. 흔한 언론사 출입기자 한명 없이 시작한 회의는 내내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다음날 오전, 베트남 국영TV는 국무회의 장면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국가운영위원회 보고서를 뒤적이던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흡족한 표정을 지은 후 곧 엄숙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은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퇴치했습니다.”
전 세계 최초 코로나 종식 선언이었다. 행정수반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코로나 퇴치에 성공했다고 알린 것. 1월 22일 첫 확진자가 나온지 약 3개월 만이다. 베트남에서는 지난 16일 이후 12일 연속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때 마침 바로 다음날인 30일은 베트남전쟁 종전을 기념하는 ‘해방기념일’. 45주년 해방기념일이 코로나19와 맞붙은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된 셈이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국가다. 인구가 1억명에 근접하지만, 확진자 수는 270명에 그쳤다. 사망자는 없다. 
초기 입국 금지 단계에서 베트남 정부가 보여준 강경한 대응은 우리 나라와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베트남 정부가 보여준 결단력은 곧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공장을 일제히 멈춰 세워야 했지만, 오로지 베트남에서만큼은 계속 제품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 127개사 등 143개 기업 필수인력 340명을 예외적으로 우선 입국시키면서 쌓인 오해도 풀었다.
난세가 영웅을 키우듯, 위기는 큰 기업을 일군다. 베트남 경제를 이끄는 주요 기업들은 벌써 이번 사태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분위기다. 공급망을 다원화하려는 국가들의 탈(脫) 중국 현상이 빨라진 덕분이다.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한 베트남 정부 역시 곧장 경제 회생(回生)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토종 대기업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냥 주어진 과실이 아니다. 이들 기업은 코로나 같은 ‘사고’에 미리 대비해 혼란 속에서도 무사히 자리를 지켰다. 자본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외국 기업들이 무수히 많은 돈과 노하우를 베트남 시장 정복에 쏟아 붇는 가운데, 어떻게든 버티면서 얻어낸 성과다.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베트남 최고(最高) 기업 경영자들은 수십년간 이런 치명적인 위협에 맞서서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조선비즈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베트남 경제 정상화를 이끄는 민관 주축 3인방을 만나 코로나19와 싸울 기초 체력을 다진 비결을 물었다. 한국 매체와 최초로 인터뷰를 가진 이들은 베트남에 뿌리를 내리려는 한국 기업에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사로잡아라’,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라’, ‘단숨에 거침없이 몰아쳐라’라고 조언했다.
① 부바푸(Vũ Bá Phú) 베트남 무역진흥청장
▲부바푸 베트남 무역진흥청장 /그래픽=이민경
1980년대 이래 약 40년간 글로벌 불황은 4차례 있었다. 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초반, 2001년,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징후는 엇비슷했다. 경제 기반이 약한 국가 부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곧 세계적인 무역량 감소로 이어졌다.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같은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자본마저 한꺼번에 빠져 나가면서 2차 피해를 크게 입었다. 
부바푸 베트남 무역진흥청장은 1994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에서 동아시아 외환위기 속칭 ‘IMF 사태’를 지켜보고, 2012년 벨기에 현지에서 유럽 금융위기를 목격했다. 그가 베트남 정부에서 무역 관련 프로모션을 총괄하는 무역진흥청 수장으로 올라선 2017년, 베트남 무역 수지는 19억달러 흑자였다. 이 숫자는 2018년 68억달러 흑자로 바뀌었다. 단 1년 만에 무역 수지가 3배 이상 뛴 셈이다. ‘잘하던 일’을 계속 잘하면서, 이전에 부족했던 부분을 정부 손을 빌어 살짝 고친 덕분이었다.
▲베트남 수출입 변화 추이 /그래픽=이민경
“2016년부터 시작한 베트남 10차 5개년 계획이 반환점을 돌면서 성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전에는 부족했던 상업 관련 인프라 시설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늘어났죠. 투자 환경이 좋아지니까 자연히 한국, 일본 같은 외국 기업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2010년 초반 베트남 북부는 인건비가 싸지만,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수도 하노이 인근조차 공업단지를 벗어나면 곧 길을 찾기 힘든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공업단지 근로자들은 제대로 포장이 되지 않아 흙탕물이 튀는 비포장 도로를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러나 ‘베트남판 새마을운동’ 5개년 계획 일환으로 공업단지 인근 물류 여건이 확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반듯한 도로로 물동량이 늘면서 수출입량은 급증했다. 혈관처럼 촘촘히 퍼진 도로망은 낙후했던 주변 도시에도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알다시피 베트남은 열대과일 천국이죠. 쌀농사도 3모작을 합니다. 이렇게 먹을 거리가 많이 나는데 이전에는 콜드 체인(저온 유통) 시스템이 부족해서 농산품을 가공 공장까지 실어나르기 어려웠습니다. 농산품을 수확해도 근처 도시 전통 시장에 팔거나, 대형 마트 바이어에게 넘길 수 밖에 없었죠.”
베트남 정부가 광범위한 제조업 육성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농업, 임업, 수산업 같은 1차 산업이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2018년 기준 베트남 국내총생산에서 1차 산업 비중은 14.57%에 달한다. 이들이 생산하는 질 좋은 농산품이 선진 물류 체계를 만나자 농가 수입은 부쩍 뛰기 시작했다. 
베트남 통계청(GSO)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무역흑자 규모는 99억달러로 최근 4년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코로나라는 악재를 맞았지만 총 교역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늘어난 1220억달러를 기록했다. 
부반푸 청장은 “제조업이 고용 창출에 효과적이라면, 1차 산업은 가공 후 부가가치가 높아 무역 수지에 큰 도움을 준다. 한국 롯데, 일본 애온, 태국 센트럴 그룹처럼 앞선 식품 가공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들이 베트남산(産) 농산품을 현지에서 가공해 자기 나라에 팔면서 농산품 수출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전에는 베트남산 농작물이 수출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던 베트남 기업들도 특용 작물까지 키우며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막판 부반푸 청장에게 베트남산 스마트폰, 베트남산 열대과일에 이은 ‘간판 상품’을 뽑아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해답이 한국 손에 달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슨 뜻인지 다시 되물으니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하노이에 한-베 디자인센터를 열었습니다. 이 장소에서 한국과 베트남 기업 모두가 디자인과 브랜딩(branding) 단계부터 차근차근 교류하길 바랍니다. 한국 제품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면 ‘가격은 조금 더 비싸도 좋다’는 이성과 ‘예쁘다, 멋있다’는 감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것처럼 베트남 제품이 한국 같은 큰 시장에서 팔리려면 그 수준에 맞춰야 하니까요.” '
② 타이흥(Thái Hương) TH그룹 회장·설립자
▲타이흥 TH그룹 회장·창업자 /그래픽=이민경
2008년 가을. 베이징 올림픽 열기가 막 가신 중국에서는 사상 최악의 식품 안전 사건이 터졌다. 소위 말하는 ‘멜라민 분유 사태’다. 독성 물질인 멜라민이 포함된 분유가 시중에 대량으로 팔리면서 중국에서는 영유아 최소 6명이 숨지고, 30만명이 신장결석 같은 후속 질병으로 입원했다. 당시 사건 주범이었던 중국 최대 분유업체 싼루그룹의 톈원화(田文華) 회장은 2009년 1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할 정도로 중국 사회 분노는 컸다. 
“베트남도 시끌시끌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서 수입한 분유를 사용해 만든 멸균 우유만 마셨어요. 100% 원유를 사용한 신선 우유가 좋은 건 알았지만, 젖소를 키울 목장도 없고 시장에 내놔도 과연 팔릴까 싶었죠.”
베트남 하노이 구시가지, 고풍스런 프랑스 식민지풍 건물들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집무실 문을 열자 타이흥 TH그룹 회장은 깔끔하게 정리된 갈색 원목 책상에 앉아 소매를 걷어올린 채 꺾은선 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서류 뭉치를 뒤적이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아직 상표가 붙지 않은 플라스틱 음료병들 여럿과 여러 현장 사진을 묶어놓은 스크랩북이 보였다. 그는 꽤 피곤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고선 “곧 출시할 쌀 우유(rice milk)인데 맛을 보겠느냐”고 권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품목별 우유 소비량 비교 /그래픽=이민경
타이흥 회장은 논란의 여지없이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기업인이다.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는 2015년과 2016년 잇달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CEO 50인’ 명단에 타이흥 회장 이름을 올리며 “베트남 유업(乳業)계를 뒤바꾸러 온 승부사”라고 설명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 
2009년 TH그룹을 시작하기 전까지 타이흥 회장은 식품 관련 업계서 일해본 적이 없다. 본래 공무원으로 국영 기업에서 재정 업무를 오래도록 맡다가, 1994년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박아(BacA)은행을 세운 이력이 전부다. 자수성가한 재력가였던 그가 2009년 별안간 ‘베트남에서 멸균 우유 말고, 신선 우유를 팔겠다’고 나서자 주변에서는 ‘시장 1위인 국영기업 비나밀크에 곧 밀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타이흥 회장은 “분유가 섞이지 않은 진짜 우유임을 강조하면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유만 사용한 우유와 분유를 섞은 우유는 맛에서도 차이가 커 소비자 사이에서 ‘TH 제품은 품질이 좋다’는 인식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마침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베트남에서도 먹거리 안전과 건강을 생각한 소비 의식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선뜻 1.5배 가격을 내고 친환경을 강조한 TH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갔다. 2008년 베트남 유제품 시장에서 8% 수준에 그쳤던 신선 우유 소비 비중은 2018년 39%로 5배 가까이 뛰었다. 
이 시장을 선점한 TH그룹은 지금은 5만 마리가 넘는 젖소를 사육하는 대형 유업체로 성장했다. 여전히 신선 우유 시장에서만큼은 유업계 1위이자 베트남 시가총액 1위 기업인 ‘공룡’ 비나밀크를 멀찌감치 앞선다. 2018년 매출은 약 3억달러(3700억원). 발효유, 치즈 같은 가공 제품 부문에서도 점유율을 높이며 비나밀크 뒤를 바짝 쫓는 모양새다.
신선 우유 제조로 출발했지만 2013년부터는 발효유, 치즈, 건강 음료, 식물성 대체 우유, 건강 기능식품까지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줄줄이 히트 상품을 내놓고 있다. 타이흥 회장은 이 경영 전략을 ‘과대 확장(overextension)’이란 개념에 빗대 설명했다. 기업이 현재 능력 범위에서 벗어났다 싶을 만큼 광범위하게 활동을 추진하면서 내부 구성원들을 창조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은행 일을 하면서 시장에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살아남는 기업을 보면 핵심 제품이 정체기에 빠질 무렵, 과감하게 새로운 제품을 밀어붙여 내놓으면서 위기를 극복하더군요.”
타이흥 회장은 다만 “제품군이 다양해질지 언정, 이 과정에서 기업 정체성을 흐리는 오판(誤判)은 내리지 말라”며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단순히 제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제품이 가진 의미와 관점, 철학까지 함께 구매한다. 베트남 신선 우유 시장에서 TH 제품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경쟁사보다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깨끗함’, ‘친환경’ 같은 TH그룹이 지닌 상징성에 기꺼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모든 브랜드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소비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H그룹은 지난 10년간 그 어떤 서양 기업과 붙여놔도 밀리지 않는 ‘프리미엄 유제품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뭉칫돈을 풀어왔다.
신선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열량이 높은 에너지 사료 조합을 연구하는 이스라엘 기업 에이피밀크(Afimilk)와, 젖소 몸 상태를 착유(搾乳)에 최적화하기 위해 뉴질랜드 기업 토털리벳(Totally VET)과 손 잡았다. 농장에서 발생하는 유기성 잔존물을 수집하고 퇴비로 처리하는 솔루션은 일본 썬어스(Sun Earth)와, 농장에서 발생하는 폐수 관리는 네덜란드 기업 아쿠아(Aqua)와 의기투합했다. 
2017년에는 러시아에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해 젖소 농장과 우유 가공 복합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하며 해외 진출의 신호탄을 쐈다. 베트남 기업으론 역대 최대 규모 투자액이다. 
과감한 투자는 곧 결실로 돌아왔다. 지난해 가을 TH그룹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중국 유제품 통관·유통 심사 기준을 통과했다. 멜라민 분유 사태를 겪으며 태동한 기업이 문 연 지 꼭 10년 만에 14억 인구를 상대로 프리미엄 유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장에 발을 디딘 것.
“저는 브랜드 이름에 영혼이나 어떤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십여년 내내 한 일도 TH라는 브랜드에 ‘진짜 자연에서 온 우유(truly natural)’이라는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 싶으니 이제 경영 현안은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타이흥 회장은 “시간이 지나서 힘이 든다 싶으면 제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손은 여전히 두툼한 서류뭉치를 뒤적이는 중이었다.  
③ 쯔엉지아빈(Trương Gia Bình) FPT그룹 회장·설립자
▲쯔엉지아빈 FPT 회장·창업자 /그래픽=이민경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에서 동쪽으로 차를 차고 30분. 빼곡한 오토바이 행렬이 눈에 띄게 뜸해지면 돌연 기하학적인 건물이 띄엄띄엄 들어선 장면을 볼 수 있다. 도심을 끼고 흐르는 강과 그 위에 놓인 다리도, 수수깡처럼 길게 포개진 식민지풍 건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수천명은 너끈히 누울 법한 널찍한 잔디밭에 드문드문 솟은 건물들만 나타난다. 하노이 도심에서 찾아보기 쉬운 베트남 전통 밀집모자를 쓴 할머니, 앉은뱅이 의자를 놓고 수다를 떠는 중년 아저씨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초등학교 체육복을 떠올리는 간결한 차림의 학생, 후드티와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베트남의 ‘판교’로 불리는 호아락하이테크단지(HHTP)는 낯설다. 익히 눈에 익은 베트남 모습과 거리가 멀다. 흔히 베트남을 상징하는 단어가 '기회의 땅'이라면 이 지역을 표현하는 단어는 ‘기회를 만들어낼 첨단 기술 인력의 요람’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혁신을 향해 뒤늦게 발걸음을 뗐지만, 2017년 프로젝트 수립 후 불과 3년 만에 독자적인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터를 서둘러 마련했다. 한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일본 니덱닛산테크노(Nidec Nissan Techno), ‘베트남의 삼성’ 빈그룹(Vingroup), 국영통신사 비엣텔(Viettel) 같은 국내외 유력 기업들은 이미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 베트남 ICT 서비스 보급률. /그래픽=이민경
베트남 최대 ICT 기업으로 꼽히는 FPT는 조금 달랐다. 본사는 하노이 도심에 두고, 대신 핵심 자회사인 FPT소프트웨어와 인재양성시설인 FPT대학(FPT university)을 호아락 단지 안에 붙여 놨다. 
FPT대학은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기업이 설립한 대학이다. 실리콘밸리 ‘애플대학’처럼 간단한 사내 연수시설이 아니라, 교육 과정을 인가받은 정식 사립대학교를 세운 것. 매년 영국 교육평가 기관 QS가 진행하는 대학평가에서 베트남 내 인가받은 132개 전체 대학 가운데 상위 20위권을 웃돌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캠퍼스에 들어서면 활엽수로 둘러 쌓인 대형 운동장과 베트남 최대 규모 학생 실내 체육관, 대형 극장이 리조트 건물처럼 둘러싼다. 재학생은 총 4만4000명. 매년 졸업생만 1만명 넘게 쏟아져 나온다.2018년 우리나라 정보공학과, 전자통신공학과 등 550개 ICT 관련 학과 졸업생이 1만6494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 학교에서만 국내 연간 ICT 분야 배출 인력 절반 이상이 매년 새로 나오는 셈이다. 이들 가운데 98%는 졸업 후 3개월 내로 직장을 잡는다. 
“IT업계에서 기회는 순식간에 열렸다가 금새 닫힙니다. 기술 변화하는 가운데 기회의 구멍을 통과하려면 단숨에 거침없이 밀어붙여야 하죠. 1999년에 이 학교를 세운 것도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ICT·SW(소프트웨어)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하고, 학생들은 모두 일본어나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워야 하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지만 숙식비는 전부 FPT가 부담합니다.”    
집무실에서 만난 쯔엉지아빈 FPT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조용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마치 학자 같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렇다 할 제스처나 몸짓 한번 없이 꼿꼿한 자세로 말을 이어갔다.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끊어 말하는 품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학생들에 쏟는 비용을 ‘지출’이 아닌 ‘투자’라고 말했다.
 
▲글로벌 서비스 로케이션 지수 순위 변화 /그래픽=이민경
“기업에는 인적 자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이 많이 있습니다. 인적 자산은 공식 회계보고서엔 반영이 안 되지만, FPT처럼 인력이 중요한 ICT 기업은 인재 교육에 과감히 돈을 써야죠. 그래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외국에 취업하기보다 FPT에 취업해 FPT 소속으로 해외 지사로 나가기를 선호해 뿌듯합니다.”
1988년 쯔엉지아빈 회장은 러시아 로모노소프 모스크바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다른 엔지니어들과 의기투합해 FPT를 세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4400억원. 베트남 IT 기업 가운데 매출 기준 1위다. 1988년 13명이던 직원 수는 지난해 3만6000명으로 늘었다. 베트남 대표 주가지수인 호치민 거래소 VN지수 상위 30개 리스트(VN30)에도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주 업무는 전문 인력을 기반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업무 관련 각종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인도 인포시스나 위프로 같은 ‘글로벌 해결사’를 자청한다고 보면 된다. 에어버스, 알리안츠, AT&T, 듀폰, 제너럴일렉트릭,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같은 포춘 글로벌 500 기업 가운데 100여개 기업이 FPT와 아웃소싱 계약을 맺었다. FPT 직원이 되면 세계 최고 회사들과 돌아가면서 일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에도 2016년 지사를 세웠다. 한화, 신한은행이 FPT와 손을 잡았다. 
창업 30여년간 쌓은 업적 덕에 쯔엉지아빈 회장은 ‘베트남의 빌 게이츠’라는 칭호를 얻었다. 지난 9일에는 베트남을 넘어 일본 재계 목소리를 대변해온 게이단렌(経団連)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 IT 기업 가운데 게이단렌에 들어간 기업은 FPT가 처음이다. 2005년 일본에 진출한 이후 일본 전역에 12개 사무소를 설치하고 1500명이 넘는 현지 인력을 고용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일본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IT 기업 중에서 FPT만큼 현지 인력을 많이 고용한 기업은 없다. 
쯔엉지아빈 회장은 “몇년 후에는 한국이 일본과 미국 다음 가는 아웃소싱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자동차, 소비재, 전자제품 관련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바로 며칠전에도 전 세계에 글로벌 체인을 둔 한국 소비재 기업과 수백만 달러 단위 전자 상거래 플랫폼 설계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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